본문 바로가기

39

카프카적인 '카프카적인'(Kafkresque)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싶다면 아래 구절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의 중편, "변신"(Die Verwandlung)에서 가져왔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대단히 물리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벌레로 변한 뒤 그레고르가 새롭게 얻게 된 신체를 어떻게 경험하는지 체감해볼 수 있다. 그 생생함에 벌레 몸의 고통이 전이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더불어 벌레 몸이 축축하게 내뿜는 점액질의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카프카의 신체 묘사에는 상징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다. 말 그대로의 신체가 끈적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읽고 있기에 고통스럽다. 헤르만 헤세가 묘사하는 아브락사스라 불리는 새와 비교해보면 카프카적인 신체가 얼마나 낯선 것인지 알.. 2022. 5. 4.
'해초를 닮은 드레스' 찰스 디킨스가 그려내는 매력적인 인물은 흥미롭게도 대부분 조연들이다. 주연이라고 해도 그가 그려내는 인물은 19세기 사실주의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비주류 조연과 깊은 연관을 지닌다. [리틀도릿]의 에이미가 대표적이다. 에이미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에이미 자신이 지닌 내면성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옆을 지키는 메기다. 아래 메기에 대한 묘사를 보라. 마음 아플 정도로 현실적이면서도 동시에 동화적이다. 에이미는 그런 메기와 늘 함께한다. 이는 샬롯 브론테가 그려내는 주인공이 지닌 독립적 성질과 정반대다. 브론테의 경우 주인공이 지닌 주관성을 인물의 핵심 요소라 여기기 때문이다. 디킨스는 여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사실 디킨즈의 인물들이 사랑스러운 이유가 이로부터 나온다. 브론테가 그려내는 .. 2022. 2. 23.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악' 밀로스 포먼 감독의 1984년작 [아마데우스]의 핵심을 이루는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곡을 묘사하는 장면일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살리에리가 내놓는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감상기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내내 끊임없이 모차르트의 음악에 매료된 그의 모습이 묘사된다. 그리고 그의 음악 감상기가 펼쳐져나온다. 시쳇말로 하자면, [아마데우스]는 살리에리의 '팬심'에 관한 영화다. 그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모차르트의 곡이 지닌 아름다움이 체감되어 느껴진다. 그의 설명 없이 해당 곡을 듣는다면 결코 느끼지 못할 아름다움이다. 사실 이 영화는 의외로 살리에리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겉으로는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관한 영화인 것 같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은 살리에리의 음악적 식견이 없이는.. 2022. 2. 9.
"어메이징 그레이스" 아래는 존 뉴턴(John Newton)의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라는 찬송가의 가사다. 어려서부터 들었고 워낙 곡조가 좋기에 기억하는 곡이다. 특히 그리스의 가수 나나 무스꾸리(Nana Mouskouri)가 불렀던 판본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무스꾸리가 들려주었던 은총의 느낌이 정작 교회에서 실제로 찬송가로 불려졌을 때는 전혀 찾아오지 않더라는 데 있었다. 어째서 그랬던 걸까? 아마도 그 이유가 찬송가의 한국어 번역에 있지 싶다. 사실 한국어 찬송가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은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같은 곡이라고 할 수 없다. 아래 가사 번역을 비교해보라. 첫 번째 것은 영어 원문에서 내가 직접 번역한 것이고, 두 번째 것은 공인 찬송가 판본이다. 한국어 찬.. 2021. 5. 31.
셰익스피어, "소네트 1" 셰익스피어는 흔히 극작가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시도 썼다. 역병의 진원지로 여겨져 극장--글로브 극장(the Globe Theatre)--이 폐쇄되어서 돈벌이가 어려워졌을 때 쓴 것이다. 영국에 가본 사람은 관광 삼아 글로브 극장에 가봤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서 있는 글로브 극장은 17세기에 청교도 혁명 시기에 폐쇄되었다가 뒤늦게 1997년에 새로 지어진 모조품에 불과하다. 위치도 원래와는 다른 곳에 지어졌다. 우리식으로 치면 민속촌 정도로 지어진 셈이다. 말이 나온 김에 글로브 극장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지금이야 글로브가 무슨 고상한 시설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셰익스피어 시대에 극장은 만악의 근원으로 여겨졌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바글거려 역병이 퍼져나가는 진원지로 여겨졌다. 그뿐 아니라 젊은이들.. 2021. 4. 21.
다윈, [종의 기원] 중에서 아래 문장을 보면 알겠지만 다윈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문장을 읽는 맛이 있다. 문장에 대한 욕심이 느껴진다. 문필가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사실 17-8세기 서구에서 근대적 의미의 자연과학이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과학자들은 학계에서 소수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인문학 전통 속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학설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기존 인문학자들이 사용하는 사고 방식과 언어를 사용하여 그들을 이해시키지 못하면 학문으로서 인정받지 못할 위험에 처해있었다. 기본적으로 그러한 분위기 및 전통 속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서구에서는 과학자들도 기본적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예컨대, 전공을 막론하고 대학에서 필수 교양으로 문학 수업을 듣도록.. 2021. 4. 9.
파스칼, [팡세] 중에서 파스칼의 [팡세]에 실린 구절의 하나다. 영문 번역은 옥스포드 월드 클래식판에서 가져온 것이고, 한국어 번역은 내가 한 것이다. 프랑스어 원문과 영어 번역을 비교해보면 프랑스어 원문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일이 아주 수월하게 거의 직역 수준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프랑스어나 영어 번역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가늠을 할 수 없게 된다. 예컨대, 한국어 직역은 이런 식이 된다: '주어진 기쁨의 거짓 느낌과 부재한 기쁨의 공허에 대한 우리의 무지가 변덕을 일으킨다.' 여기서 서구의 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물론, 17세기 프랑스 원문의 문체를 거의 그대로 살린 아래 영어 번역의 문체 또한 딱히 현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근래에는 .. 2021. 4. 3.
"재림"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Y. B. Yeats)의 "재림"(The Second Coming)이라는 시의 첫번째 연이다. 1919년에 쓰여졌다. 20세기 초반 유럽의 지성사적 분위기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가늠하게 해주는 시다. 세계 1차 대전이 터지고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던 시절이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19세기에 만연했던 과학적 진보에 기반한 사회 개선 따위의 꿈들이 전부 헛된 꿈과 같이 무너지고 있었다. 19세기식 유럽 문명 자체가 사망선고를 받고 있었다. 이 암울함이 20세기 초 유럽 모더니즘의 한 가지 바탕이다. 서구의 문명은 이미 이때 한계에 봉착했었다. 적어도 문학가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정치-사회-경제적으로는 팽창을 계속했다. 전세계가 서구식 삶을 .. 2021. 3. 23.
데미안, 아브락사스 20여년 전 읽은 [데미안]을 다시 보고 있으면, 20세기 초반의 소설들이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언어가 과도하게 추상적이고 사색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죄의식에 빠진 한 인간의 정신사를 다루는 이야기인만큼 신체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스티븐 디덜러스를 생각해보라. 어린 시절 그에게 기독교는 죄의식을 심어주는 공포의 원천과 같았다. 당시 소설의 분위기가 그랬다. 사실 [데미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거의 상징주의적 언어를 사용한다. 아래 유명한 구절에서 보듯, 싱클레어에게 '새'는 자연도감에 나오는 새가 아니다. '새'는 '아브락사스'라는 '신'을 향해 날아오른다. 마찬가지로 '새'가 깨고 나오는 '알'은 '새'의 부.. 2020.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