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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소네트 1"

by spiral 2021. 4. 21.

셰익스피어는 흔히 극작가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시도 썼다. 역병의 진원지로 여겨져 극장--글로브 극장(the Globe Theatre)--이 폐쇄되어서 돈벌이가 어려워졌을 때 쓴 것이다. 영국에 가본 사람은 관광 삼아 글로브 극장에 가봤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지금 서 있는 글로브 극장은 17세기에 청교도 혁명 시기에 폐쇄되었다가 뒤늦게 1997년에 새로 지어진 모조품에 불과하다. 위치도 원래와는 다른 곳에 지어졌다. 우리식으로 치면 민속촌 정도로 지어진 셈이다. 말이 나온 김에 글로브 극장 이야기를 조금 해보자. 지금이야 글로브가 무슨 고상한 시설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셰익스피어 시대에 극장은 만악의 근원으로 여겨졌다.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바글거려 역병이 퍼져나가는 진원지로 여겨졌다. 그뿐 아니라 젊은이들을 일터에서 꼬셔내는 유흥장 역할을 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글로브 극장에 내실이 있어서 사실상 매춘이 행해졌다는 데 있었다. 요즘식으로 치면 글로브 극장은 극장과 나이트클럽과 모텔이 하나로 연결된 구조였던 셈이다. 청교도 혁명이 일어났을 때 청교도들이 극장을 폐쇄해버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이야기를 좀 해보자. 사실 소네트 연작만 가지고 셰익스피어를 영문학 역사상 최고의 문학가 중 하나로 여기기는 어렵다. 깨나 신선한 내용들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예컨대, 소네트 연작의 문을 여는 아래 시는 남성 화자가 어여쁜 남자에게 말을 거는 구조로 되어있다. 물론 이는 아래 시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나 연작 내 다른 부분들을 통해 명확히 추론이 가능한 부분이다.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는 셰익스피어 혹은 시적 화자가 동성애자였다는 뜻이 아니다. 시적 정황을 보면 오히려 여자여야할 사람이 왜 남자의 성기를 달고 있어서 날 힘들게 하느냐고 한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자가 이런 반응을 보일리가 없다. (물론, 당대에 극장 공연과 동성애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한 예로, 셰익스피어 시기 연극에서 여성 역할을 한 것은 아직 변성기가 찾아오지 않은 남자 아이들이었다. 도덕주의자들은 이 때문에 연극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봤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극장이 대표적인 에로티시즘의 장소였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예쁜 남자는 단순히 예쁜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여자와 다를 바 없는 외모를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가능성은 다양하다. 개인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의 성기를 둘 다 가진 인물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본다. 물론, 이는 학계의 정설이 아니다.

각설하고, 셰익스피어 소네트의 특징은 생명의 증감에 관심이 많다는 데 있다. 거의 생물학적이다. 이는 소네트 전통으로 볼 때 대단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왜냐하면 기존 소네트 사랑시 전통이란 것이 사실상 '궁정연애'(courtly love)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궁정연애가 무엇이던가. 쉽게 말해서, 기사도 사랑을 뜻한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육체적 접촉이 없는 플라톤적 사랑의 표본 말이다. 접촉이 없다는 것은 섹스가 없다는 뜻이다. 소네트가 대부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루게 된 맥락이 이로부터 왔다고 보면 된다. 셰익스피어가 소네트 연작을 가지고 한 짓이 사실 깨나 충격적인 일이었던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시작부터 생명의 증가를 욕망한다고 선언하고 있지 않은가. 아래 시의 주제는 단순하다. '예쁜 남자야, 빨리 가서 여자랑 섹스해서 너를 닮은 예쁜 애를 낳아, 그게 인류에 봉사하는 길이야'가 이야기의 전부다. 플라토닉 러브에 기반한 고상한 소네트가 졸지에 '섹스 시'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학자들은 아래 시를 포함하여 셰익스피어 연작 내 한 부류의 시를 '생식 시'(procreation poetry)라 칭한다. '섹스 시'를 좀 고상하게 표현한 말이다.

섹스를 노래하는 시의 등장, 이게 바로 그 위대하다는 '르네상스' 시기의 정체다. 고상한 관념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섹스를 하고 번식한다. 생물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게 영국에서 휴머니즘이 시작한 방식이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를 거치게 되면 휴머니즘의 국면은 인권 등에 대한 관념적 형태를 띠게 되며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적어도 16세기의 모습은 아래와 같았다. 물론, 셰익스피어 소네트 연작에는 섹스 말고 다른 흥미로운 주제가 많이 있다. 그러니 그를 섹스광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면 안된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섹스는 정말 생물학적인 번식을 위한 섹스를 뜻한다. 젊은 현대인들이 쉽게 빠져드는, 셰익스피어가 말하는 번식의 의무를 잊은 채 진행되는, 원나잇 엑스터시를 추구하기 위한 게 아니다. 셰익스피어가 말하는 것을 요즘식으로 바꾸어 말하면, 오히려 '젊음에 도취되어 섹스만 줄기차게 하지 말고 출산율을 높이세요, 그게 세상에 봉사하는 방법이에요'에 가깝다. 

* 아래 한국어 번역은 내가 한 것이다.

From fairest creatures we desire increase,
That thereby beauty's rose might never die,
But as the riper should by time decease,
His tender heir might bear his memory;
But thou, contracted to thine own bright eyes,
Feed'st thy light's flame with self-substantial fuel,
Making a famine where abundance lies,
Theyself thy foe, to thy sweet self too cruel.
Thou that art now the world's fresh ornament
And only herald to the gaudy spring,
Within thine own bud buriest thy content
And, tender churl, mak'st waste in niggarding.
Pity the world, or else this glutton be,
To eat the world's due, by the grave and thee.
가장 어여쁜 피조물로부터 우리는 생명의 증가를 갈망해,
그리하여 아름다움이 지닌 장미가 결코 시들지 않도록 말이야,
추수꾼이 시간의 흐름을 불러들여 생명을 감소시키게 될 때,
그의 보드라운 자손들이 그의 기억을 품을 수 있도록 말이지;
그러나 당신은 당신만의 빛나는 두 눈으로 쪼그라든 채
자기 만족적인 연료로 당신의 눈빛이 내는 불꽃을 먹여살리고 있어,
풍요가 있는 곳에 기근을 만들며,
당신 자신을 당신의 적으로 만들며, 당신의 달콤한 자아에게 너무도 잔인하게도.
지금은 세계의 신선한 장식물인 당신
홀로 화려한 봄을 알리는 당신,
당신 자신만의 꽃봉오리에 당신의 만족을 묻으며,
젠틀한 시골뜨기인 당신, 재산을 축적하고 있지만 낭비만 할 뿐이구만.
세상을 가엽게 여겨, 그렇지 않으면 식충이가 되고 말 것이야,
세상에게 남겨진 몫을 혼자 다 먹어치우고는 무덤에 혼자 남을 것이야.

Shakespeare, "Sonne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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