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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적인

by spiral 2022. 5. 4.

'카프카적인'(Kafkresque)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싶다면 아래 구절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의 중편, "변신"(Die Verwandlung)에서 가져왔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대단히 물리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벌레로 변한 뒤 그레고르가 새롭게 얻게 된 신체를 어떻게 경험하는지 체감해볼 수 있다. 그 생생함에 벌레 몸의 고통이 전이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더불어 벌레 몸이 축축하게 내뿜는 점액질의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카프카의 신체 묘사에는 상징적인 구석이 하나도 없다. 말 그대로의 신체가 끈적하게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읽고 있기에 고통스럽다. 헤르만 헤세가 묘사하는 아브락사스라 불리는 새와 비교해보면 카프카적인 신체가 얼마나 낯선 것인지 알 수 있다. 헤세의 새는 신체를 지닌 새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새는 알을 깨고 나오는 자아의 상징과 같다. 그에 비해 카프카의 신체 속에 자아라 할 만한 게 있다면 그것은 병든 신체에 깃든 신음하는 자아와 같다. 사실 아직 자아라고 할 수도 없는 단계다. 물질 덩어리가 주변 사물과 부딛치며 최초로 '센세이션'이라 할 만한 것을 산출해내는 단계에 불과하다. 내 생각에 카프카적 신체가 영화사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점차 파리로 변해가는 인간을 묘사한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1986년작 [파리](The Fly)가 대표적이다. 에일리언과 인간이 뒤섞인 생명체를 그려내는 장-피에르 쥬네의 1997년작[에일리언 4](Alien Resurrection)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근래의 예로는 외계인으로 변해가는 인간을 묘사한 닐 블롬켐프 감독의 2009년작 [디스트릭트 9]이 있기도 하다. 회화의 영역으로 가면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려낸 신체를 떠올려볼 수도 있다. 이들 카프카의 후예들에게서 보듯 카프카적인 신체는 특정한 형태의 벌레로 변신을 했다는 데 방점이 찍혀져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신체가 자아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증식하는 방식을 점액질 고통 속에서 경험하는 데 있다.

* 아래 한국어 번역은 내가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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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르는 안락의자의 도움을 받아 문을 향해 그 자신의 몸을 밀었다. 그리고는 거기서 의자를 놓은 후, 문을 향해 몸을 던졌다. 문에 기대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작은 다리에 달린 공과 같이 둥근 부위에서 점성이 있는 물질이 나왔다). 그리고는 잠시 거기서 멈추어 쉬었다. 그후 그는 입으로 자물쇠에 꽂힌 열쇠를 돌리고자 애를 썼다.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이빨이라 할 것이 없는 듯했다. 그래서야 어떻게 열쇠를 쥘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에게는 대신 아주 힘센 턱이 있었다. 턱 덕분에 그는 열쇠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는 그가 그의 몸에 상해를 가하고 있다는 명백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갈색 액체가 그의 입에서 나와 열쇠 위로 흐른 후 방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Gregor pushed himself slowly towards the door, with the help of the easy chair, let go of it there, threw himself against the door, held himself upright against it (the balls of his tiny limbs had a little sticky stuff on them), and rested there momentarily from his exertion. Then he made an effort to turn the key in the lock with his mouth. Unfortunately it seemed that he had no real teeth. How then was he to grab hold of the key? But to make up for that his jaws were naturally very strong; with their help he managed to get the key really moving, and he did not notice that he was obviously inflicting some damage on himself, for a brown fluid came out of his mouth, flowed over the key, and dripped onto the floor. (17-8)

The Metamorpho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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