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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팡세] 중에서

by spiral 2021. 4. 3.

파스칼의 [팡세]에 실린 구절의 하나다. 영문 번역은 옥스포드 월드 클래식판에서 가져온 것이고, 한국어 번역은 내가 한 것이다. 프랑스어 원문과 영어 번역을 비교해보면 프랑스어 원문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일이 아주 수월하게 거의 직역 수준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프랑스어나 영어 번역을 한국어로 직역하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가늠을 할 수 없게 된다. 예컨대, 한국어 직역은 이런 식이 된다: '주어진 기쁨의 거짓 느낌과 부재한 기쁨의 공허에 대한 우리의 무지가 변덕을 일으킨다.' 여기서 서구의 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물론, 17세기 프랑스 원문의 문체를 거의 그대로 살린 아래 영어 번역의 문체 또한 딱히 현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근래에는 영어 모국어 사용자들도 인간적 관점의 느낌이 없는 추상적 명사구를 활용해 의미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려 하지는 않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즉, 근래 영어는, 예컨대 19세기 영어 등에 비할 때, 직설적-구어적이 된 면이 있다. 차이는 아래와 같은 문장의 경우 독자 입자에 생각을 요하게 된다는 데 있다. 이쯤에서 '팡세'(pensée)라는 말이 '사색' 혹은 '금언' 등을 의미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독자들로 하여금 잠시 시간을 들여 명상을 하도록 만드는 구절을 제공하는 책이 [팡세]인 셈이다. (추측컨대, pensée라는 프랑스 단어가 영어로 유입된 배경에 파스칼의 [팡세]가 있지 않았겠는가 싶다. 왜냐하면 프랑스어 pensée는 금언이나 명상록이라는 뜻이기 이전에 생각이나 관념, 정신 작용 일반을 뜻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영어에서 pensée는 '명상적 금언,' 즉, '아포리즘'이라는 의미만 지니고 있다. 이는 과거 영국 사람들이 [팡세]의 번역본을 영어로 읽고 '팡세'는 '명상적 금언을 뜻하는 것인가 보다'라고 여기게 된 결과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손쉬운 이해를 허락치 않는 고풍스러운 문장 형식은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도록 만들려는 [팡세]의 목적에 잘 맞는다고 말해볼 수 있다. 사실 아래 금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오직 명상적이 될 때에만 얻어지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와 거리를 취할 때 나오게 되는 명상의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아래 문구에서 인간 주어는 찾아볼 수 없다. 인간의 흔적은 오직 'le' 혹은 'our'라는 형태로만 살짝 덧붙여져 있다. 이는 감정적 인간과 거리를 취하고자 하는 것이 아래 금언의 자세와 잘 어울린다.

Le sentiment de la fausseté des plaisirs présents, et l'ignorance de la vanité des plaisirs absents, causent l'inconstance.
The feeling of the inauthenticity of present pleasures and our ignorance of the emptiness of absent pleasures causes inconstancy. 
기쁨이 주어졌을 때는 그것이 거짓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고, 기쁨이 주어지지 않았을 때는 그 부재하는 기쁨이 공허한 것임을 알지 못하기에 변덕이 발생하게 된다.

"비참함"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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