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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종의 기원] 중에서

by spiral 2021. 4. 9.

아래 문장을 보면 알겠지만 다윈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다. 문장을 읽는 맛이 있다. 문장에 대한 욕심이 느껴진다. 문필가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사실 17-8세기 서구에서 근대적 의미의 자연과학이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 과학자들은 학계에서 소수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존의 인문학 전통 속에서 자신들의 새로운 학설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기존 인문학자들이 사용하는 사고 방식과 언어를 사용하여 그들을 이해시키지 못하면 학문으로서 인정받지 못할 위험에 처해있었다. 기본적으로 그러한 분위기 및 전통 속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서구에서는 과학자들도 기본적으로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어야 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 예컨대, 전공을 막론하고 대학에서 필수 교양으로 문학 수업을 듣도록 하는 정책이 그 한 예다. 물론, 서구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수준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지난 학기 만난 한 20대 초반 이공계 전공생은 문학의 문자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다. 난 그가 보여준, 인문적 글쓰기의 기본을 갖추지 않은 채, 황당무계하게 단순히 양적 과학의 언어로 문학을 재단하려는 자세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과학 밖에 알지 못하는 이공계생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동일하게 있다는 뜻이다. 요점은 적어도 높은 수준에 오른 과학자들은 결코 그런 식으로 앎과 지식의 문제에 접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래 다윈이 좋은 예다. 사실 그의 글쓰기는 심지어 정치경제학 분야에서 저술 활동을 한 맬서스보다 낫다. 맬서스의 글을 읽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아직 생각이 완벽히 정리되어 있지 않으며 그 결과 글의 전개가 무엇인가 조잡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맬서스의 [인구론] 또한, 정치경제학이라는 영역이 당시 그러했듯, 당대 새롭게 부상하던 경험론적 세계관에 기반한 과학으로서 의도되었다는 점에서 전혀 전통적인 학문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정치경제학은, 예컨대, 전통적 신학 등이 지니고 있었던 학문적 고상함과는 거리가 먼, 기존의 학설에 도전하는, 패기로 가득찬, 젊은, 그렇기에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은, 학문이었다. [인구론]의 통찰에 기반한 [종의 기원]이 출간되었을 때 당대 팽배했던 신학적 세계관과 충돌하며 해당 서적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게 되었던 맥락을 생각해보라. [인구론]은 이미 그 서막과 같은 것이었다. 기존의 세계관으로 보기에 더럽고 추잡한 육체적 세계의 모습을 학문적으로 포착해내고자 한 결과가 '정치경제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다윈의 언어는, 맬서스의 것보다, 훨씬 수려하다. 심지어 무엇인가 선지자가 새로운 세계의 비전을 포착해 보여주고자 하는 느낌마저 있다. 물론, 맬서스가 30대 초의 나이에 [인구론]을 출판했던 것에 비해,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충분히 가다듬은 후 50살이 되는 해에 출판했다는 차이도 고려해야할 것이다. 

* 안타깝게도 아래 내 한글 번역은 다윈의 문체가 주는 느낌을 담아내지 못한다. 그저 의미론적 참고의 대상일 뿐이다.

Still less do we know of the mutal relations of the innumerable inhabitants of the world during the many past geological epochs in its history. Although much remains obscrue, and will long remain obscure, I can entertain no doubt, after the most deliberate study and dispassionate judgment of which I am capable, that the view which most naturalists entertain, and which I formerly entertained--namely, that each species has been independently created--is erroneous. I am fully convinced that species are not immutable; but that those belonging to what are called the same genera are lineal descendants of some other and generally extinct species, in the same manner as the acknowledged varieties of any one species are the descendants of that species. Furthermore, i am convinced that Natural Selection has been the main but not exclusive means of modification.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지난 많은 지질학적 시대 동안 세계 안에 거주해온 셀 수 없이 많은 생물들 사이의 상호 관계에 대해 많이 알지 못한다. 비록 많은 것이 불분명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신중하게 연구하고 공정하게 판단한 결과 다음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게 되었다. 즉, 대부분의 박물학자들이 품고 있는 관점이자 내가 이전에 품었던 관점--달리 말하면, 각각의 종이 독립적으로 생성되었다는 관점--이 틀렸다는 것이 그것이다. 난 종들이 불변하는 것이 아님을 완전히 확신한다. 난 동일 속(genus)에 속하는 종들은 사멸한 다른 종의 직계 후손이라고 확신한다. 이는 어느 한 종의 알려진 품종(variety)이 그 종의 후손인 것과 동일한 방식을 따른다. 게다가 난 자연선택이 변이의 유일한 방식은 아니지만 주된 방식이라고 확신한다.

Darwin, On the Origin of Spec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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