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

데미안, 아브락사스

by spiral 2020. 2. 8.

20여년 전 읽은 [데미안]을 다시 보고 있으면, 20세기 초반의 소설들이 그런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언어가 과도하게 추상적이고 사색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죄의식에 빠진 한 인간의 정신사를 다루는 이야기인만큼 신체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가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스티븐 디덜러스를 생각해보라. 어린 시절 그에게 기독교는 죄의식을 심어주는 공포의 원천과 같았다. 당시 소설의 분위기가 그랬다. 사실 [데미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거의 상징주의적 언어를 사용한다. 아래 유명한 구절에서 보듯, 싱클레어에게 '새'는 자연도감에 나오는 새가 아니다. '새'는 '아브락사스'라는 '신'을 향해 날아오른다. 마찬가지로 '새'가 깨고 나오는 '알'은 '새'의 부화를 돕는 단백질 덩어리가 아니다. '알'은 '세계'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같은 작품의 유미주의적 언어와 비교해보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상징주의는 소설의 언어로서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고 느낀다. 칼 융의 저작이 소설과 양립할 수 없다고 느끼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물론 20세기 초 모더니즘에 상징주의적 경향이 없었던 건 아니다. 예이츠가 그랬고, T.S. 엘리엇의 [황무지]에도 그런 뉘앙스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이 소설인 것은 아니었다. 

*아래 한국어 번역은 내가 한 것이다. 독일어에서 옮긴 것이라 다소 오역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주인공 이름의 독일어 발음은 '싱클레어'보다는 '진클레어'에 가깝다. 오래전부터 사람들 사이에 '싱클레어'라고 알려져 이제는 '싱클레어'라고 표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경이라 나도 '싱클레어'라고 표기했다.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 '휘스 히딩크'가 '거스 히딩크'라고 영어식으로 불리는 것과 같은 일이라 할 만하다.

--

쪽지를 만지작거리다 생각 없이 펼쳐보았다. 그 안에는 일련의 단어가 쓰여져있었다. 글자에 눈길을 주었다. 한 단어가 눈에 들어 들어왔고, 나는 놀라서 쪽지를 읽어보았다. 읽는 동안 내 심장이 큰 추위에 노출된 것처럼 운명에 전율하며 수축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그 알은 세계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한다. 그 새는 신에게로 날아오른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삭스다."

반복해서 이 글귀를 읽은 후 깊은 사색에 빠져들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건 데미안에게서 온 답장이었다. 나와 그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새에 관해 알리가 없었다. 그가 내 그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는 이해했고, 내가 그 그림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어떻게 맞아떨어졌단 말인가? 그리고--무엇보다 이 부분이 나를 괴롭혔다--대체 아브락사스는 뭐란 말인가? 나로서는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는 단어였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라니!

헤르만 헤세, [데미안: 에밀 싱클레어의 청년기 이야기]

 

Ich spielte mit dem Papier, entfaltete es gedankenlos und fand einige Worte darein geschrieben. Ich warf einen Blick darauf, blieb an einem Wort hängen, erschrak und las, während mein Herz sich vor Schicksal wie in großer Kälte zusammenzog:

„Der Vogel kä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ß eine Welt zerstö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ßt Abraxas.“

Ich versank nach dem mehrmaligen Lesen dieser Zeilen in tiefes Nachsinnen. Es war kein Zweifel möglich, es war Antwort von Demian. Niemand konnte von dem Vogel wissen, als ich und er. Er hatte mein Bild bekommen. Er hatte verstanden und half mir deuten. Aber wie hing alles zusammen? Und — das plagte mich vor allem — was hieß Abraxas? Ich hatte das Wort nie gehört oder gelesen. „Der Gott heißt Abraxas!“

Hermann Hesse. Demian: Die Geschichte von Emil Sinclairs Jugen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