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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과 이데올로기: 정수민의 [네오리버럴리즘] 다른 여타의 사회-문화적 담론에 비할 때 음악이 누리는 특권이 있다면 그것은 음악은 언어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음악은 언어의 매개 없이 청자의 신체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각도 언어를 건너뛸 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사물에는 명시적으로 이름이 쓰여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볼 때 해당 사물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예컨대, 도시에서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것들이 인간이 부여한 형상에 따라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건축물을 하나 보면, 그것이 학교인지, 주거용인지, 가게인지, 교회인지 기타등등인지 구분을 할 수 있다. 명시적으로 '명찰'이 달려있지 않다뿐이지 무엇인가를 볼 때 사실.. 2020. 9. 23.
CHS, "땡볕" 아래 곡을 듣고 있으면 어째서 10대 시절 내가 택했던 신체적 경험이, 음식이 아니라, 음악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한 예로 난 음악을 들을 때면 항상 촉각적이라 느꼈다. 온몸이 만져지는 감각적 만족이 내가 음악 속에서 첫째로 찾고자 했던 바였다. 사실, 많은 다양한 층위가 있지만, 무엇보다 음악은 생리학적 경험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음악이 경쟁하는 것은, 언어의 매개를 관통해야하는 문학이 아니라, 음식이다. 음악은 생각보다 훨씬 더 신체에 직접 작용한다. 음악은 약물과 같다. 약에 빠진 사람이 식음을 전폐하고도 살아갈 수 있듯, 음악에 빠진 사람 또한 식음을 전폐한 채 살아갈 수 있다. 그러한 이유로, 과도한 식탐을 조절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첫째로는 '인슐린 저항성'을 낮추고자 해야할 것이나.. 2020. 9. 21.
Quinn_(쿠인), "난빤스만입고도멋진생각을해" 이 증오스러운 뮤직비디오의 압권은 저 섬세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떨리는 허벅지의 살을 확인하는 순간 찾아온다. 보컬의 지위를 흉내내고 있는 자--사실 실제 보컬은 녹색티를 입은 자다--가 '빤스만 입고' 의자에 앉아서 기계적이고 단조로운 리듬에 맞추어 다리를 쿵짝거릴 때마다 부끄러움도 모른 채 흔들거리는 저 속살, 저 허벅지의 살을 보라. '빤스만 입는다'는 의미의 핵심은 바로 저 통제 불가능한 신체의 흔들림을 드러내는 데 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 수 있다. 신체를 완벽히 통제하고자 하는 '아이돌 군무'의 주술을 푸는 특효약이 있다면 아래의 곡과 같지 않겠는가? 이제 신체는 자기 멋대로 움직이고, 덜렁거리고, 기타등등을 한다. 이런 것을 '의식'에 대비하여 '무의식'이라 부른다. 다시 말하면, .. 2020. 9. 18.
노이즈가든, 윤병주, 봉준호 헤비한 록 음악이 듣고 싶을 때 첫번째로 떠올리게 되는 밴드는, 그 어떤 쟁쟁한 영미권의 록밴드가 아닌, 한국의 노이즈가든(noizegarden)이다. 이미 오래전에 해체되고 지금은 없는 밴드다. 1990년대적 이야기다. 이는 BTS가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을 달성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 된 시대의, 당당함으로 무장한, 한국적 감수성을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1990년대에 한국의 일개 록밴드가 만들어낸 음악이 그 모든 쟁쟁한 영미권의 록밴드의 음반을 따돌리고 헤비 록사운드의 정석으로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은 말그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의 도약은 여기 이 불가능성 속에서만 가능하다: 봉준호 감독이 2020년에 이룬 것과 동일한 일.. 2020. 7. 19.
인디 음악, 존속의 형식, 윤지영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인디 음악에 마음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404나 쾅프로그램 정도가 관심을 두고 들은 마지막 한국 인디 음악가였지 싶다. 스치며 들을 때는 전반적으로 수준급의 팝 성향 인디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옛날보다 많이 늘었다는 인상을 받았더랬다. 우효란 음악가의 "민들레"가 한 예다. 잘 만들어진 곡이다. 전반적으로 그의 곡들은 듣기 좋다. 대체로 달콤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음악 안에서 마음이 머물 곳을 발견하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 근본적으로 나와 다른 세상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가끔 옆에서 바라볼 수는 있겠지만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되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근래 들려온 팝 성향의 곡에 대한 내 전반적 인상이 그러했다. 팬시한 식당에 가서 팬시한 음식을 맛있.. 2020. 6. 22.
뉴트로의 시공간, 음악, 박문치, 아프로퓨처리즘 박문치의 음악은 기존의 대중음악--특히 2010년대 대중음악--과는 다른 이해법을 요구한다. 여기서 그를 이해하고자 할 때 반드시 참고야야할 곡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박문치 인트로"다. 무엇보다 박문치의 음악이 기반하고 있는 시공간 개념을 보여주는 곡이기에 언급할 가치가 있다. 여기서 박문치가 흔히 '뉴트로 장인'으로 소개된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뉴트로'는 한국의 21세기가 '시공간을 어떻게 이해하여 다룰 것이냐?"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택한 용어와 같다. 과거의 사회과학적 용어를 이용해서 말해보자: '뉴트로'는 직선적 '진보의 시간'이라 여겨졌던 시공간 개념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 여전히 적용될 수 있는지를 묻는 암호명과 같다. 뉴트로의 시공간과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던져지는 질문은 다.. 2020. 6. 19.
[떠돌이 까치]: '깡'의 전사(pre-history), 설까치와 최엄지 비의 등장 이전 '깡'의 '전사'(pre-history)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1987년 제작된 [떠돌이 까치]라는 작품을 볼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은 지금 보기에 낯설다. 오늘날 보기 어려워진 마초적 남성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어있기 때문이다. 일단, 외모에서부터 다르다. 설까치의 외모는 전혀 '예쁘지' 않다. 그는 10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돌 그룹 남자 멤버들이 보여주는 '귀엽고 예쁜' 면모라고는 지니고 있지 않다. 혹은, 설까치는 오늘날 웹툰에서 묘사되는 10대 남성 캐릭터의 미모를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 거칠기 짝이 없는 까치집과 같은 머리와 외모를 한 그는 오직 '예쁜 엄지'에게 반하도록 설정되어있다. 거꾸로 말하면, 설까치의 외모를 보고서, 그것이 남자가 되.. 2020. 6. 13.
민수의 혼란, 김오키의 혼돈, 비의 '깡,' 그리고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민수라는 가수가 있다. "민수는 혼란하다"라는 곡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른바 '민수의 혼란'을 김오키가 추구하는 우연성, 즉 '김오키의 혼돈'과 비교해보자. 아래 공연 영상에서 보듯 '민수의 혼란'은 인간적이다. 무엇보다 20대 초반의 남녀관계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즉, 민수의 고민은 내가 정말 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혼란은 사람 중심이다. '내'가 있고, '나'는 '너'를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나'도 모르는 답을 '너'에게 묻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겠는 날 너에게 물어." 관건은 '나'라고 불리는 인간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더 이상 사람으로서의 '나'와 동일하지 않다. 여기서 '나'는 사람(.. 2020. 6. 11.
비, "깡" 내가 사는 곳엔 몸집이 거대한 칠면조들이 떼로 몰려다닌다. 그들 중 수컷은 위기에 처하면 불현듯 화려하기 짝이 없는 깃털을 부채 펼치듯 펼쳐 자신의 거대함을 과시한다. 이들이 깃털을 부채 펼치듯 펼치는 경우가 하나 더 있다. 짝짓기를 할 때다. '월드스타 비'의 "깡"이라는 곡의 안무를 보며 공작새 혹은 칠면조의 부채처럼 펼쳐진 깃털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과장되게 공중으로 손과 발을 뻣어대는 동작들을 보라. 화려하고 또 화려하며, 강력하고 또 강력하다. 아래 안무는 젠더화된 남성의 행동거지를 완벽히 구현하는 표본과 같다. 일로와이로의 일로와 비교해보라. 비에 비하면, 일로는 깃털이 아니라 '솜털' 밖에 없는 '애송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물론, 오늘날 '깃털'이 작동하는 방식은 예전 같지 않다.. 2020.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