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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U!, "Hallogallo" 영미권에 비해 독일은 록음악의 나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해외에서 생각하는 독일 팝음악의 기본 인상은 전자음악에 있다. 그것도 실험적인 전자음악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는 1960년대 말 시작된 크라우트록으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전후 독일 내에서 크라우트록은 주류 음악이 아니었다. 주류 음악은 '슐라거'라 불리는 '이지 리스닝'류의 음악이었다. 크라우트록은 인디 음악과 같다.) 크라우트록도 록이기는 하다. 1960년대 영미권 록음악의 영향을 받은 게 맞다. 그러나 그 모습은 좀 다르다. 아래 노이의 곡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1960년대 영미권 사이키델리아가 독일식으로 번역되면 최면술적 비트 기반 음악으로 변하게 된다. 이를 '모터릭 비트'라 한다. 기계 모터의 그 모터가 맞다. 이 기계적 리듬은 사.. 2025. 8. 22.
Elvis Presley, "Hound Dog" 엘비스 프레슬리는 흔히 록앤롤의 왕이라 불린다. 이 칭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맥락을 좀 봐야한다. 아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그는 지금 보아도 놀라운 '끼'를 보여준다. 1956년에 모두가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와 관중을 들어다 놓았다 하고 또 몸을 저렇게 과감하게 놀리는 백인 청년의 모습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는 거의 충격적인 일이었다. 10대들은 열광했지만 나머지 세대는 그에게서 천박함의 극치를 발견했다. 언론이 그에게 붙인 별명이 "엘비스 '펠비스' 프레슬리"였다는 점이 이를 잘 보여준다. '펠비스'는 '골반'을 뜻한다. 골반을 하도 흔들어댄다고 해서 붙인 별명이다. 물론 '골반 흔들기'는 섹스 행위를 연상케 한다. 사실 '록 앤 롤'이라는 말 자체가 성 행위시 일어나는 동작을 .. 2025. 8. 15.
Muddy Waters, "Mannish Boy" 머디 워터스의 음악을 듣는 순간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 듣는 곡인데도 말이다. 어째서 그럴까? 록 음악을 기반으로 팝을 들어온 사람만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록에 관심이 없으면 잘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데이빗 보위가 여러차례 지적했듯 록 음악의 뿌리에는 흑인 음악, 즉 리듬 앤 블루즈가 있다. 록에 익숙한 사람 입장에서 머디 워터스를 들으면 그의 음악에 록의 원형적 감수성이 진하게 흐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심지어는 '이게 진짜구나'라는 느낌까지 받게 된다. 리듬과 블루즈가 없는 음악은 록이라고 할 수 없다. 아래 "매니시 보이"는 1977년도 녹음이다. 최초 녹음은 1955년에 이루어졌었다. --Hard Again (1977) 2025. 8. 8.
Jimi Hendrix, "Machine Gun, Live at Filmore East, 1970" 2019년에 발매된 지미 핸드릭스의 라이브 공연 녹음이다. 1970년 필모어 이스트에서 있었던 공연 녹음을 담은 박스셋으로 알고 있다. 1970년이면 핸드릭스가 죽기 얼마 전이다. 녹음 상태가 아주 훌륭하다. 연주 또한 훌륭하다. 백인 록이 흑인 리듬앤블루스 전통으로부터 이미 상당 부분 분기되어 나오고 있었던 1960년대 말 1970년경을 기준으로 핸드릭스의 음악은 그 둘 사이의 관계를 멋지게 포착해내는 징검다리와 같다. 사실 리듬앤블루스가 빠진 록은 김빠진 맥주와 같다.--Hendrix: Songs for Groovy Children, The Filmore East Concerts (2019) 2025. 7. 31.
Pearl Jam, Pinkpop 1992 펄잼의 공연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아닐까 싶다. 1992년 에디 베더의 모습은 거의 광기에 차 있다. 그는 마치 지금 이 무대가 자신의 유일한 무대이며 더 이상은 기회가 없을 듯이 노래를 부른다. 지금 이 무대에 오름으로써 원하던 모든 것이 달성되었다는 듯이 노래를 부른다. 간절함의 표현이라고 말하기엔 형식 파괴적 힘이 느껴지고, 형식이 없다고 말하기엔 물이 흐르듯 노래가 쏟아져나온다. 육체적 감정과 리듬이 의미의 형태로 승화가 되지 않은 채 쏟아져나온다. 그렇다고 혼돈의 상태로 빠지는 것까지는 아니다. 되어짐(becoming)과 됨(being)의 경계선상에 있는 모습이다. 1993년 그래미 하드록 공연 부분 상을 받았을 때 에디 베더가 남긴 수상 소감도 같은 맥락 속에 있다. 그는 '우린 그저 긴장감 .. 2025. 7. 17.
Robert Glasper, "Enoch's Meditation" 방학이 되어서 좋은 것은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길거리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길거리에 나가면 늘 우발적인 방식으로 낯선 이들이 품은 증오의 흔적들과 조우하게 된다. 다른 한편, 익명의 사람들도 문제지만 반익명의 사람들, 아는 사람이지만 크게 가깝지는 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방학이 되면 이런 것도 최소화된다. 건강을 회복한다는 것은 우연적 요소와 조우하는 것을 피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발적 조우는 세계-내-존재로서 살아가며 얻게 되는 피드백과 같다. 많은 경우 피드백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자주 피드백을 받게 되면 오히려 건강을 상하게 된다. 예컨대, 방학 때는 피드백으로부터 자유로워야한다. 방학 중에는 사람을 만나는 일, 전화를 하는 일.. 2025. 7. 4.
<이 별에 필요한> 혹은 이별에 필요한 한지원 감독의 2025년작 에 활기를 부여하는 것은 플롯이 아니다. 밝혀질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남녀간 연애 이야기다. 근래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사용하는 요소인 동성애 인물 코드도 없다. 거친 여자 주인공의 힙함이 느껴지는 작품도 아니다. 을 생각해보라. 은 고전적인 남녀간 연애물이다. 그렇다고 딱히 독특한 혹은 문제적 인물들이 벌이는 연애물도 아니다. 일견 보면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격의 인물들이다. 예컨대, 제이는 레트로 전자기기 수리공으로 일하는 청년이다. 주목할 만한 직업은 아니다. 여자친구를 대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스위트'하다. 모난 구석이라고는 없는 어딘지 비현실적으로 '착한 남자' 같은 모습이다. 연애의 모범 답안 같은 비현실성을 상연한다.. 2025. 6. 7.
인터넷 부족주의 혹은 '젊은이'의 정치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가치가 없는 '40대 대통령 후보'라는 자의 언행은 끔찍하다. 그는 반지성과 혐오의 아이콘이다. 20대라면 치기의 발로라고 못본척 넘어갈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이 40을 먹고 한 나라의 대통령 선거에 나온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부도덕성과 폭력성을 지적한다고 해서 그를 지지하는 자들이 딱히 그에게서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사실은 애당초 그가 도덕과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지지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그들이 보기에 세상은 타락한 곳이다. 세상이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곳, 사기가 횡행하는 곳이라면, 내가 해야할 일은 똑같이 세상을 사기쳐서 등쳐먹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그들의 마음에 쏙 드.. 2025. 5. 31.
사우론의 입,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사우론의 입이란 인물은 감독판에만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에서 가장 끔찍한 악당으로 기억한다. 사우론의 입은 사우론의 대변인이다. 얼굴에서 맨 모습이 드러난 부분은 입 밖에 없다. 나머지는 전부 금속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존재다. 그러나 유일하게 드러난 부분인 입 부위는 썩어가는 살점의 느낌을 낸다. 원래는 열릴 수 없으나 무엇인가에 의해 찢어진 모습의 입이 말을 하기 위해 한번 열리면 금속으로 싸인 이빨이 드러난다. 금속성의 이빨이 그 자신의 살점을 찢으며 말을 하는 식이라 보면 된다. 눈이 없기에 스스로 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사우론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을 뿐이다. 그가 내뱉는 생각과 감정은 살인자의 언어와 같다. 모든 희망을 앗아가는 언어, 듣는 사람을 살해하.. 2025. 5.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