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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rum, <Under Tangled Silence> 수업이 끝나고 나가려는데 학생 두 명이 기다리고 있다가 초콜릿을 들이밀었다. 스승의 날이라서 준비했다 한다. 딱히 '스승'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 없어서 약간 당혹스러웠다. '스승과 제자'라 하면 훨씬 더 깊은 배려 속에서 삶의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그보다는 훨씬 더 기술적인 측면이 더 강한지라 그 말이 쑥스럽게 느껴졌다. 마음을 전달하고자 했다는 것, 그게 그저 고마웠다. 이 친구들은 음대 학생들이다. 학급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학생들은 아니다. 그래도 종종 와서 이것저것 물어오는 등 수업에 성의를 다한다. 누군가는 성적을 잘 받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마음이 하나도 없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2025. 5. 17.
Jefre Cantu-Ledesma, [Gift Songs] 전부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문학 전공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적지 않은 수의 학생들이 암묵적으로 지니고 있는 학습 방법에 이질감을 느끼게 된다. 이들은 공부에 있어 기본적으로 기계적으로 학습해야할 개념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모습이다. 암기식 교육은 하찮은 것, 비인문적인 것, 가치 없는 것이라고 느낀다. 반대로 개념적 사고를 트레이닝하지 않고 직접 상상력의 세계에 직관적으로 뛰어드는 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안다. 그게 인문학인 줄 안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문학을 공부하는 것을 손쉽게 '구라'를 늘어놓는 것 정도로 여기는 면이 있다. 이들에게서는 수업 중 나온 개념을 공부도 하지 않은 채 답을 쓸 수 있을 것이라 믿는 어리석음과 오만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교실에서 토론식 수업을 진행할 때면 강의.. 2025. 4. 27.
Barker, [Stochastic Drift] 비트가 강한, 클럽 플로어에서 춤추기 위해 틀 법한 전자음악을 듣는 일은 고역이다. 인위적으로 욕망을 자극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소리는 시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전자음악은 클리세 가득한 팝송보다 의외로 훨씬 인간적이다. 아래 앨범이 한 예다. 올해 나온 앨범 중 단연 주목할 만하다.--Stochastic Drift (2025)Stochastic Drift by Barker 2025. 4. 12.
Keith Jarrett, "I Fall in Love Too Easily / the Fire within" Definitely, Keith Jarrett trio at its best. --At the Blue Note (1995) 2025. 3. 29.
모임 별, "호수" 모임 별의 2024년작 [우리 개]에서 주목할 만한 곡은 "호수"다. 이 곡을 들으며 어쩌면 황소윤의 합류는 모임 별에게 다시 한번 20대의 영혼을 가져다주는 일과 같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곡은 물론이고 앨범 전반적으로 기존 모임 별의 특징이 완전히 생기를 얻었다. 동시에 황소윤 특유의 기타 솔로가 곡을 마무리한다. 난 언제나 황소윤의 곡에서 기타 솔로가 더 강조되기를 바래왔었다. 그 모습을 전자음을 기반으로 한 모임 별에게서 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성공적인 조합이다. 록적인 기타솔로와 전자음악적 요소 모두가 감정을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랑의 감정을 생각해보자. 사랑은 모임 별의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감정의 하나다. 늘 기저에는 사랑이 .. 2025. 2. 27.
Toe, "Two Moons" 난 실험적 음악을 좋아한다. 그러나 무작정 실험적이기보다 실험성과 감각적 달콤함이 서로 경쟁하는 음악을 좋아한다. 아래 토의 음악이 좋은 사례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음악을 누가 싫어할 수 있느냐고 느낀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아래와 같은 음악을 듣고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주관성의 문제다. 반면 이 주관성을 바탕으로 형이상학을 재구성하는 것이 미학이다. 미학이 보편성과 목적론에 대한 논의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미학은 감정에서 시작하지만 감정의 형이상학적 프로그램으로 끝난다. 예컨대, 아래 음악을 들으며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폐허로 느껴지던 세계 전체가 완전히 하나의 의미론적 중심을 얻으며 재구성되는 듯이 느낀다면 그건 음악을 미적으로 .. 2025. 2. 20.
김오키, "You've Got to Have a Flower on Your Mind" 김오키의 음악은 전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실험적으로 들린다. 그의 음악을 실험적 대중음악이라 칭해보고 싶다. 참신한 대중음악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내 기준에서 그의 음악은 훌륭한 대중음악의 표본과 같다. --[스피릿 선발대] (2019) 2025. 2. 12.
Jon Hopkins, Ritual 서로 동의하지 않는 견해를 나누는 대화를 나누고 나면 그 느낌이 마치 뇌를 독성이 있는 물질에 담근 것 같다. 생각은 분명 물리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특정 생각은 특정 물리적 출력을 만들어내는 컴퓨터의 특정 프로그램과 같다. 미학적 음악은 그렇게 가동된 컴퓨터의 명령어를 제거하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과 같다. 미학은 감정을 다루는 프로그램으로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아래는 2024년에 나온 홉킨스의 최근작이다. 내가 그의 음악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속에서 벗어난 소리 자체를 탐구하는 음악가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미학적이라서 듣는다. 미학은 형이상학의 다른 말이다. 속된 소리들이 싫다. 쓰레기 같은 생각과 언어들로 이루어진 현실을 반영하는 게 음악이라면 난 음악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은 .. 2025. 2. 5.
Keith Jarrett, Gary Peacock, Paul Motian "How Long Has Been Going On" 인간의 지능은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주 자주 생존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리하여 거꾸로 생존하지 못하게 된다. 생태계 내에서 일어나는 사실관계에 기반한 정보를 충분히 많이 얻어야 생존에 필요한 판단을 할 수 있다. 문제는 현실이 감당할 수 없을 때 찾아온다. 현실이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단계에 이를 때 인간은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는 환상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한다. 그러나 생존의 환상을 만들어내게 되면 해당 개체 및 집단은 물리적으로 생존에 실패하게 된다. 지난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주장을 하는 극우 유튜버들과 윤석열의 사고방식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총선.. 2025.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