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302 루시드폴, "노래할게" 노래한다는 것은 내 목으로 다른 이가 노래하는 것을 뜻한다. 말이란 것 자체가 그렇다. 말은 말하지 못하는 자를 대신하여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말은 언제나 비현실적인 것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에 비해 현실적인 언어는 대부분 개인의 이익을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채색되어있다. 그러한 언어를 내놓게 될 때면, 말이란 것이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목소리가 큰 자들을 주의해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예컨대, 가짜뉴스의 언어는, 상식과 달리, 비현실적 언어에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그들의 언어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혹은, 현실적이 되고자한다. 보다 정확히는, 유사현실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렇게 현실을 장악하고자 한다. 현실을 자기 뜻대로 .. 2021. 1. 17. 히피는 집시였다, [나무]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피규어(figure)를, 의미 혹은 서사의 차원에서, 감상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색과 선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아무 것도 없는 바탕 위에 그어진 선이 전하는 질감과 색채 그 자체가 주는 감흥은 그 어떤 것보다 더 강렬하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떠올려보라. 그 안에서 피규어는 색과 선의 층위로 물러난다. 사람과 같은 형상 속에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색과 선이 있다. 음악에 대해서도 비슷한 말을 해볼 수 있다. 침묵을 배경으로 그어지는 진동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현상이다. '없지 않으며 있다' 혹은 '없음이 있다'는 느낌은 그 순간 찾아온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장르적 사고의 문제이지 않다. 음악은 장르 이전에 위치한다. 소리의 형성 자체를 .. 2021. 1. 2. 백건우, "Schumann: Kinderszenen Op. 15 VII. Träumerei" 피아노 음악이 듣고 싶을 때 딱히 특정한 곡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어떤 곡이 되었든 그저 백건우가 연주한 곡을 들으면 된다. 그게 한 가지 방법이다. 2020. 12. 14. 태윤, "여기에" '쾌적하다'는 말을 하기에 적절한 곡이다. 분명 비평적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곡은 아니다. 사실 많은 경우 '기분 좋다'고 느껴지는 곡과 '훌륭한' 곡은 일치하지 않는다. 어째서 그럴까? 쾌적한 곡은 음악을 그저 삶의 한 부분으로서 여길 때에만 중요하다. 음악이 삶의 규형을 잡는 데 필요한 요소들 중의 하나로서 복무한다는 뜻이다. 그러한 곡은, 예컨대, 입에 맞는 음식, 마음에 드는 옷, 좋은 풍경, 유쾌한 사람들과 같은 요소들과 동일선상에 있다. 여기서 음악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 청자의 삶을 지탱하는 한 가지 배경 요소로서 상대적으로만 중요하다. 말하자면, 음악은 집을 짓는 데 필요한 여러 재로 중 한 가지 재료와 같다. 없으면 허전하지만 그렇다고 없다고 해서 문제되는 그런 요소라고 하긴 어렵다. .. 2020. 11. 9. 원슈타인, "It's Me!" 아래 원슈타인의 곡은 자이언티가 2011년에 출사표를 내듯 발표했던 "클릭미"라는 곡에 비견할 만하다. 원슈타인의 곡도 보란듯 '나야!'라고 주장하는 곡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두 곡을 비교해보면 9년 만에 음악적 트렌트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 2011년에 자이언티는 세련되게 자신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가사의 내용부터 온통 자신의 이른바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의 독특성을 직접 주장하고자 했다. 그에 비해 아래 곡에서 원슈타인이 취하는 출발점은 '마네킨'이고 심지어 '엄마가 골라준 것 같은 카라티'다. 개성이라고는 없는 것들, 표준적 스타일의 정수들이 그의 출발점이다. 그는 그의 평범한 배경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평범하지 않은 .. 2020. 11. 2. [슬기로운 의사생활] 혹은 "넌 따뜻해" 아래 곡은 2020년에 발표된 신곡이지만, 들을 때면, 새로움이 아니라, 지나간 추억이 생각난다. 곡의 구성과 진행 그리고 정서가 전형적으로 1990년대적이라 그렇다. 그럴 때면 마치 내가 '오래된 것'(the old)이라도 된 듯이 느낀다. 사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의 구성 자체가 그렇다. 마흔의 나이에 이른, 낡아빠진, 5명의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해당 드라마는 오래된 것에 관한 이야기이지 않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마흔의 나이를 먹은, 중년의 초입에 이른,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기 시작한 인물들을 닳을대로 닳은 사회 속에서 구태의연하게 승진이나 금품수수나 권력을 둘러싼 암투 등에 빠지지 않은 채 살아가도록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해당 질문을 중심으로 드라마의 .. 2020. 10. 21. Ludovico Einaudi, "Elegy for the Arctic" 지난 2016년 북극해에 위치한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제도(Svalbard)에서 행해진 연주다.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 무너져내리는 빙하의 모습과 소리에 과연 한낱 인간의 연주가 저곳에서 시작될 수나 있을 것인지 두려운 마음을 자아낸다. 이 두려움이 아래 연주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기후변화와 함께 지금 이 시간에도 빙하는 녹아내리고 있다. 오늘날 음악은 더 이상 문명화된 인간의 왜소한 감정에 대해 노래할 여유가 없다. 오늘날 우리가 느껴야할 감정은 보다 더 비인간적 혹은 생태계적이어야한다. 21세기에 예술은 바로 이 비인간적 물질성 속에서 발견된다. 참고로, 루도비코 에인아우디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다. 2020. 10. 18. BTS, 케이팝, 미래의 남성과 욕망하는 여성, 그리고 새로운 보수 BTS에 대해 이야기해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BTS가 지금까지 내 관심사가 된 적이 없으며 딱히 그러할 이유가 없다고 여겨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는 'BTS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 음악 비평의 대상으로서 그들에 대해 내가 느끼는 어떤 거리감과 관련이 있다는 말과 같다. BTS가 내 주된 관심사가 아닌 이유는 단순하다. 주류 음악을 음악 자체로서 논하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 아니라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제는 한국인 입장에서 볼 때 BTS의 음악은 정확히 '주류 음악'에 속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인이 보기에 지금 BTS는, 손흥민 등과 더불어, '해외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한국의 기특한 젊은이'이지 않던가? 사실 BTS는 단순한 음악가.. 2020. 10. 7. 위댄스, "그저 하고 싶다는" 올해의 트랙으로 꼽고 싶다. 멋진 곡이고, 멋진 비디오다. 특히 뮤직비디오는 열망이란 것의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다. 날고자 하는 열망를 품기도 어렵지만, "크고 작은 폭발"이 병에 모아지듯 품게 된 열망을 구현해보고자 할 때 보통의 사람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란 제한적이다. 예컨대, 다른 사람이 소유한 기체를 훔쳐서라도 날지 않는다면 평생 한번 날아볼 방도가 없는 현실이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조건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렇게 실현된 열망은 현실이란 이름으로 다스려지게 된다.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것도, 해본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안니다. 곡이 말하듯, "잘 될지," "맛이 있을지는" "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좌절의 경험이거나, 아니면 보복의 경험일 확률이 더 .. 2020. 10. 2. 이전 1 ··· 16 17 18 19 20 21 22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