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음반학: 새로운 과거와 지겨운 현재 때때로 새로운 곡을 듣기 위해서는 과거로 되돌아가야한다. 미래의 씨앗은 종종 과거 속에서 발견된다. 아래 곡은 55년 전에 발표되었다. 그러나 웬만한 요즘 곡보다 새롭게 들린다. 음반의 시대가 도래하여 좋은 점은 언제든 지겨운 현재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있다. 음반이 가져다준 한 가지 축복은 구태여 동시대 속에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데 있다. 동시대 차트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요즘 사람들이 무엇을 듣던 좋아하던 알게 뭐란 말인가.사실 사고의 영역에서 동일한 축복은 이미 5천 년 전에 일어났다. 문자가 그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문자 기록물이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중세 말에서 르네상스에 이르는 시기까지 기다려야하기는 했다. 인쇄술이 보편화되어야 만들어진 문자 기록물이 널리 퍼질 수 있게 .. 2026. 1. 24. <피지컬>: 폭력과 스포츠 사이에서 넷플릭스의 시리즈를 최근 시즌부터 옛 것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봤다. 힘센 자들이 몸 자랑하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지금까지 보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의외로 가장 최근작이자 시즌3인 는 상당히 건전했다. 완성도도 높았다. 최고의 신체를 지닌 자들이 내보이는 능력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했다. 동시에 그들이 한계에 이르며 조바심내는 모습은 동정심마저 일으켰다. 보는 사람 입장에 공감이 작동했다.반면 시즌2는 시즌3와 느낌이 다르다. 시즌3는 처음부터 팀 대결에 기초한 덕분에 팀원들 사이에 유대, 배려, 존경이 배경에 있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작동하는 곳에 상스러움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그러나 시즌2는 달랐다. 시즌2는 개인의 생존을 걸고 벌이는, 2010년대 초부터 유행하.. 2025. 12. 22. 시카고 일렉트릭 블루즈 우리가 알고 있는 1970년대 하드록의 먼 조상의 하나는 머디 워터스, 하울링 울프, 윌리 딕슨 등으로 대표되는 시카고 일렉트릭 블루즈다. 20세기 초반 델타 블루즈는 원래 어쿠스틱 기타 기반이었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일렉트릭 기타 자체가 없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일렉트릭 기타는 1930년대가 되어야 처음 나오게 된다. (깁슨 레스 폴 기타로 유명한 레스 폴은 1930년대 일렉 기타 기술 발전에 공헌한 사람 중 하나다.) 그것도 단순히 빅밴드 내에서 관악기나 드럼 소리에 묻히지 않기 위해 기타의 소리를 더 키울 방 도로 고안된 것에 불과했다.이는 델타 블루즈 시절 블루즈가 밴드 음악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쿠스틱 기타 하나 연주하며 노래하는 솔로로 이루어진 게 원조 블루즈의 모습이다. 이 경.. 2025. 9. 12. 사람과 음악 사람과 음악은 동일한 영역, 정서적 만족감이라는 영역을 두고 경쟁한다. 예를 들면, 난 종종 사람보다 음악이 더 좋다고 느낀다. 음악을 듣고 있을 때면 구태여 사람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지 않아도 될 듯이 느낀다. 여기에는 심지어 장점도 있다. 사람의 따뜻함은 젊은 시절이 지나면 사라진다. 중년 이후, 특히 노년에 이르기까지 본성이 따뜻하게 유지되는 사람이 있다면, 난 그 혹은 그녀를 사랑할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잘 없다. 나이가 들어서도 따뜻함을 이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늘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이 첫번째 방법이다. 두번째는 마음이 병들지 않도록 늘 음악을 주변에 두고 살아가는 것이다. 사실 사람과 달리 음악은 나이가 들지 않는다. 변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그대로.. 2025. 8. 29. <이 별에 필요한> 혹은 이별에 필요한 한지원 감독의 2025년작 에 활기를 부여하는 것은 플롯이 아니다. 밝혀질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남녀간 연애 이야기다. 근래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사용하는 요소인 동성애 인물 코드도 없다. 거친 여자 주인공의 힙함이 느껴지는 작품도 아니다. 을 생각해보라. 은 고전적인 남녀간 연애물이다. 그렇다고 딱히 독특한 혹은 문제적 인물들이 벌이는 연애물도 아니다. 일견 보면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격의 인물들이다. 예컨대, 제이는 레트로 전자기기 수리공으로 일하는 청년이다. 주목할 만한 직업은 아니다. 여자친구를 대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스위트'하다. 모난 구석이라고는 없는 어딘지 비현실적으로 '착한 남자' 같은 모습이다. 연애의 모범 답안 같은 비현실성을 상연한다.. 2025. 6. 7. 인터넷 부족주의 혹은 '젊은이'의 정치 그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가치가 없는 '40대 대통령 후보'라는 자의 언행은 끔찍하다. 그는 반지성과 혐오의 아이콘이다. 20대라면 치기의 발로라고 못본척 넘어갈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이 40을 먹고 한 나라의 대통령 선거에 나온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부도덕성과 폭력성을 지적한다고 해서 그를 지지하는 자들이 딱히 그에게서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사실은 애당초 그가 도덕과 아무 관계가 없기 때문에 지지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적절하다. 그들이 보기에 세상은 타락한 곳이다. 세상이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곳, 사기가 횡행하는 곳이라면, 내가 해야할 일은 똑같이 세상을 사기쳐서 등쳐먹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그들의 마음에 쏙 드.. 2025. 5. 31.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보내는 작별인사 같은 작품이다. 작품 속 큰할아버지는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이 투사된 인물과 같다. 악의가 없는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평생 순수한 블록을 찾고자 했고 그렇게 찾은 조각들로 쌓아올린 탑은 그의 작품들과 같다. 그는 마히토가 그의 계승자가 되었으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젊은 세대는 자신만의 삶을 진창으로부터 다시 세우고자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일구어낸 세계는 계승자 없이 무너져내린다. 아름다움의 계승과 진보가 아닌 제자리 걸음과 같은 반복을 택한 결과다. 어리석음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이치이기도 하다. 반복 속에 차이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그러나 이를 미적인 것에 대한 평가절하로 보아서는 안된다. 미적인 것은 꼭 필요하다. 주인공인 마히토가 자신이.. 2025. 3. 15. 사카모토, 마지막 황제, 중국 아래 음악에는 두 가지가 공존한다. 황제의 화려함을 대변하는 웅장한 메인 테마와 황제의 초라한 퇴장을 예견하는 듯한 멜랑콜리한 도입부와 간주. 아마 이 둘의 대비가 이 음악을 들을 만하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이 음악으로 류이치 사카모토가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음악을 일본인이 맡았다는 것이 당대 서구 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1980년대 동양은 사실상 일본을 통하지 않고서는 서구인들 사이에 각인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당시 동양에는 일본의 경쟁자가 없었다. 문화적으로 홍콩이 다소간 주목을 받을 수 있을 뿐이었다. 반면 2020년대 서구에서 그 위상을 누리는 것은 한국이다. 지금이라면 동양 관련 이미지를.. 2025. 1. 30. 섹슈얼한 클래식 음악 유튜브에서 조성진의 연주를 클릭하면 댓글란에서 독특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조성진의 연주를 올리는 것은 영문으로 된 도이치그라모폰의 채널이다. 해당 채널은 다른 많은 연주자들의 영상을 올린다. 조성진만을 위한 채널이 아니다. 그러나 유독 조성진의 연주에는 한국인이 다는 댓글이 80-90퍼센트를 차지한다. 도이치그라모폰 채널이 제공하는 다른 외국인 연주자의 영상에서 한국어 댓글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째서 그들은 외국인 연주자의 영상에는 댓글을 달지 않는 것일까?영어에 익숙치 않아서라는 답은 불충분하다. 한국어로 달아도 충분한 일이기 때문이다. 혹은 번역기를 써도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난 다소 기이한 인상을 받는다. 그들의 댓글 문화에 따르자면 그들 사이에서는 오직 조성진만이 들을 만한.. 2025. 1. 19.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