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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카겔, "Kyo181" 곡의 중반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야 곡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형국이다. 곡에 대한 메타코멘터리가 곡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다. 사실 이러한 구성은 오늘날 TV 프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예컨대, 언제부터인가 PD가 자신이 기획하는 프로그램 내부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의 개입이 프로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식이 되었다. 김태호나 나영석이 대표적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현실은 그 자체로 항상 현실초월적 요소를 그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과거 신과 같은 지위에 있었던 PD들이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할 수도 있다. 제작자는 더 이상 절대적 위치에 있지 않다. 김태호와 유재석의 관계를 보라. 유재석은 김태호의 틀 안에 묶인 자신의 신세에 한탄하며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동시에 김태호의 지시를 .. 2021. 3. 18.
바흐, 뉴에이지, 우주의 중간에서 아마도 바흐(J. S. Bach)가 만든 음악의 정반대에 뉴에이지 음악이 있지 싶다. 뉴에이지 음악은, 수학적-구조적이라기보다,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 전통의 시발점에는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가 있다. 신플라톤주의의 요점은 프쉬케(psychē)와 소마(sōma), 즉, 정신과 몸 사이의 단절을 상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신플라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주관과 대비되는 의미의 객관적 음악 구조물이란 것은 애당초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이 경우 수학적 구조는 불분명한 경계를 지닌 신체에 직접 연결된다. 그 결과, 예컨대, 아래 하루카 나카무라(Haruka Nakamura)의 음악에서 보듯, 음들의 연결은 딱히 분명한 시작점과 종결점을 지닌 형태로 발전되지 않는다. 시중.. 2021. 3. 9.
용산기지와 '미제' 대중문화 아래 다큐를 보면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환상적 이미지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체감하여 이해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에 퍼진 '미국물' 혹은 '미국풍'의 진원지는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거대한 미국인들의 섬 용산 미군기지였다. 미군방송인 AFKN을 포함하여 미군기지로부터 흘러나오는 '미제' 물건들 및 '미제' 음악 및 '미제' 문화들을 생각해보라. 부대찌개와 같은 미군과 관련된 한국식 문화를 포함해서 말이다. 바로 미군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미국을 '별나라'와 같은 곳으로 여기기 만든 원동력이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 한국의 20세기가 나아간 방향은 별세계 미군기지 내에 특권적으로 한정되어있었던 주거 및 삶의 방식, 그에 결부된 문화 등을 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군.. 2021. 3. 6.
Nostalgia Drive 2 요즘 난 음악을 듣고 싶지 않다. 음악에 속하고 싶다고 느낀다. 음악이 내가 머무는 공간이기를 원한다. 공기 중 파동으로 흡수되고 싶다. 그러다 누군가의 고막을 건드리게 될 때 그 순간 다시 형체를 얻게 되기를 희망한다. 공기 중을 떠도는 물리적 현상이 인간의 내면으로 구체화되는 현상, 그것이 음악적 사건이 일어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2021. 2. 28.
데이트리퍼, "갈색종이" 2004년에 발표된 앨범이나 개인적으로는 약 10년 전에 즐겨들었다. 당시 난 매일 같이 밤 11시 경 야외에서 4Km를 뛰었는데 내게는 이 앨범보다 더 완벽한 사운드트랙도 없었다. 달릴 때 만들어지는 호흡의 원초적 리듬과 아래 앨범이 제공하는 리듬이 일치한다고 느낀 덕분이었다. 사실 만들어진듯 만들어지지 않은 리듬이야말로 [브라운페이퍼]의 매력이다. 숨을 헐떡이는, 아직 완전히 가공되지 않은, 전자음악과 같은 소리를 들려준다. 음악이라기보다는 사물이 내는 날것의 소리를 조합하여 리듬과 비트를 산출해낸 모습이다. 여러 공구를 담는 상자가 있듯 자질구레한 소리를 마치 잡다한 물건처럼 담아낸 상자가 하나 있다면 아마 아래 앨범과 같은 모습일 것이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어디에 쓰는 공구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 2021. 2. 10.
오열, "강강" 노래를 하는 마음가짐이 마치 돌부처와 같다. 혹은,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노래를 부른다. 때때로 판소리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같이 보이기도 한다. 오열이라는 친구의 노래하는 마음은 오늘날 20대 사이에서 횡행하는 정신 건강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고 있다. 정신병에 시달리는 도시인의 정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보다 전통적인 삶의 기운이 느껴진다. 땅에 발을 딛고 서있는 자의 건강함과 굳건함이 전혀져온다. 듣고 나면 한풀이 혹은 살풀이라도 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인상적이다. 2021. 2. 5.
Dogleg, "Kawasaki Backflip" 미국 중하류층 백인의 전형적 감수성을 보여주는 곡이다. 쉽게 말해서, '이게 미국이다'(This is America)풍 곡이다. 사실 10대 시절 내 이어폰에서 늘상 울리던 소리는 이런 것들이었다. 특히 1990년대 말 혹은 2000년대 초 경에 흔하게 들을 수 있었던 정서다. 아래 뮤직비디오에서 보듯 1990년대에 나온 밴드이고 그 당시 촬영한 영상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그래서 매력적이다. 거라지에서 시작하는 영상의 시작부를 보라. 가히 선언적이다. 미국인들에게 있어 인생의 모든 것은 거라지 안에 다 있다. 흔히 미국적 창의성의 산실이 거라지라고들 하지 않던가? 거라지는 단순히 자동차나 고치는 곳이지 않다. 혹은, 거라지에서는 가구와 같은 생활 용품만 만들어져나오지 않.. 2021. 2. 3.
록 음악에서 BTS로, 혹은, 프론티어 정신에서 정신 건강으로 스매싱 펌킨스의 1995년작 [멜론콜리](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라는 앨범을 듣고 있으면, 백인 남성이 이끄는 미국 대중문화의 마지막 전성기는 1990년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멜론콜리]의 매력은 앨범 특유의 남성적 포부로부터 기인한다. 2시간이 넘는 길이를 지닌 더블 앨범이라는 사실을 보라. 이미 길이에 있어서 역사에 남을 '대작'을 만들고 말겠다는 패기가 느껴진다. 내용면에서는 해당 앨범이 록 음악의 폭력성을 최대치로 담아내는 동시에 정반대의 서정성마저도 그 어느 팝음악 앨범보다도 더 섬세하게 담아내고자 한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처음 세 곡만 들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즉, 앨범과 동일한 제목을 하고 있는 첫 번째 건반 연.. 2021. 1. 25.
루시드폴, "노래할게" 노래한다는 것은 내 목으로 다른 이가 노래하는 것을 뜻한다. 말이란 것 자체가 그렇다. 말은 말하지 못하는 자를 대신하여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말은 언제나 비현실적인 것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에 비해 현실적인 언어는 대부분 개인의 이익을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채색되어있다. 그러한 언어를 내놓게 될 때면, 말이란 것이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목소리가 큰 자들을 주의해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예컨대, 가짜뉴스의 언어는, 상식과 달리, 비현실적 언어에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그들의 언어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혹은, 현실적이 되고자한다. 보다 정확히는, 유사현실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렇게 현실을 장악하고자 한다. 현실을 자기 뜻대로 .. 2021. 1.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