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한다는 것은 내 목으로 다른 이가 노래하는 것을 뜻한다. 말이란 것 자체가 그렇다. 말은 말하지 못하는 자를 대신하여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말은 언제나 비현실적인 것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그에 비해 현실적인 언어는 대부분 개인의 이익을 위해 특정한 방식으로 채색되어있다. 그러한 언어를 내놓게 될 때면, 말이란 것이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목소리가 큰 자들을 주의해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예컨대, 가짜뉴스의 언어는, 상식과 달리, 비현실적 언어에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그들의 언어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혹은, 현실적이 되고자한다. 보다 정확히는, 유사현실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렇게 현실을 장악하고자 한다. 현실을 자기 뜻대로 뒤틀어 채색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언어는 가증스럽다. 애당초 압 밖에 내어지지 말았어야 했을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 밖에 나오지 말아야할 언어가 더 큰 목소리로 들려오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현실'이 작동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진실된 언어는 현실적 언어일 수 없다. 진실된 언어는, 오히려, 말이 없는 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비현실적 언어다. 비슷한 맥락에서 아래 루시드폴의 곡은 들을 만하다. 어째서 그러한가? 음악은, 혹은, 예술은, 말이 없는 것에 말을 부여하고자 하는 자의 비현실적 제스처와 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술 일반이 지닌 '개연성'은 '가짜'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비현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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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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