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301 Jon Hopkins, "Sit Around the Fire" 작년 말 홉킨스의 새 앨범이 나왔다. 지난 앨범에서 이미 예상할 수 있었듯 이번 앨범은 보다 명확하게 명상적이 되었다. 거의 신플라톤주의적이다. 난 홉킨스의 작업이 21세기에 전자 음악 일반이 나아가는 한 가지 방향을 매우 잘 보여준다고 여긴다. 전자 음악은 인간 세상을 떠나는 방법, 즉, 인간적이지 않은 세상의 감정을 느끼는 방법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사실 난 음악이 세속적 희노애락의 감정에 가까워질 때 이미 어디서 들어본 감정을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라 여기는 편이다. 21세기에 음악을 만드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을 그려보기 위함이다. 여기에 현실 도피의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다. 사실 근래 세상에서 벌어지는 반목과 갈등을 보고 있으면 너무 피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친취.. 2022. 1. 11. 듀스, "다투고 난 뒤" 90년대의 소리다. 불완전한 시대였다. 열등감 또한 가득했다. 그러나 그렇기에 부족함을 온몸으로 채우고자 했던 시대였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기억된다. 1990년대의 소리는 온몸으로, 내 몸 안 세포의 밑바닥으로부터 느낄 수 있다. 내가 먹고자란 소리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는 음식만 먹지 않는다. 몸은 소리를 먹으며 자란다. 성장기에는 음악이 영양소다. (또한 이미지가, 냄새가, 촉감이 양양소다.) 소리가 성장하는 세포질을 감싸며 적신다. 세포는 소리를 흡수한다. 성장기가 지난 뒤 소멸하는 신체 속에서 음악이 신체 없는 기관으로 작동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맥락 때문이다. 기억은 음악적이다. 음악은 신체 없는 기관을 깨운다. 죽었던 자가 다시 깨어나듯. 바로 이 죽은 자의 깨어남이 지나간 시대가 시간을 .. 2022. 1. 5. Keith Jarrett, "Part VIII" 2016년,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있었던 공연 녹음이다. 2016년이면 키스 자렛 트리오가 해산하고 2년이 지난 시점이다. 트리오의 일원이었던 게리 피콕은 2020년에 죽었다. 키스 자렛은 2018년 뇌졸증을 두 번 겪은 후 몸의 왼편이 마비되었다.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다니고 오른손을 쓸 수 있을 정도로는 회복되었으나 여전히 왼손은 사용하지 못한다. 오른손으로 곡을 연주해보고자 했지만 곡을 기억하지 못해 연주할 수 없었다고 한다. 2020년 있었던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더 이상 피아니스트라고 느끼지 않는다는 진술을 남긴 것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다. 더 이상 그의 연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앞으로 그가 과거에 남긴 연주들이 간간히 더 발매가 되긴 할 것이다. 그러나 새 연주는 더.. 2021. 12. 29. Silvestrov, "The Messenger (For Piano Solo)" 분석적 인간은 그 자신의 날카로움을 명상적 음악을 통해 다스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게 내가 아래 실베스트로프의 음악을 경험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난 아래 음악을 자기 전에 곤두선 신경을 다스리기 위해 참선을 행하듯 듣는다. 훌륭한 음악이다. -- Helene Grimaud, piano 2021. 12. 22. 테크노 봉건주의, 명품, 주술, 영성 최근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담론의 하나는 '테크노 봉건주의'(technofeudalism) 혹은 '디지털 봉건주의'(digital feudalism)다. 이는 근래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자본주의가 진화해가는 방향을 묘사하기 위한 용어다. '테크노 봉건주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지금 봉건주의의 형태로 진화 혹은 퇴화하고 있다. 요점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조차 무너뜨리지 못한 자본주의를 자본주의 자신이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는 데 있다. 여기서 자본주의가 사실 그 자체로 대단히 혁명적인 기능을 수행하며 등장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자본주의는 중세 봉건주의를 무너뜨리며 중산층 자본가들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정치체제의 경제적 바탕으로 여겨졌다. 바로 이 혁명적 배경 덕.. 2021. 11. 22. '요즘 어디서 뭐 하고 놀아?' 아래 링크된 인터뷰는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첫째로, 20대 중반의 청년 스타트업 사업가를 대려다놓고 나이가 훨씬 더 많아 보이는 인터뷰어가 아주 진지하게 '요즘 10대나 20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놀아요?'라는 질문을 '나도 좀 알고 혹은 끼고 싶은데'라는 태도로 던지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역사상 10대나 20대가 그들이 지닌 놀이 문화 때문에 이렇게 진지한 대접을 받았던 시대가 과연 있었던가? 어른들이 아이들 노는 데 이토록 끼고 싶어했던 시대가 있었던가? 물론 이는 과장된 이야기다. 왜냐하면 아이들 노는 데 관심을 보이는 어른들의 의도가 실은 전혀 아이들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은 '너희들 노는 걸로 큰 돈을 버는 게 가능하다던데, 어디 나를 위한 자리는 없겠니?'에 가깝기 때문이다. .. 2021. 11. 3. [기생충], [오징어 게임], 상징, 알레고리 [오징어 게임]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을 보면 왜 미국의 작품은 늘 젠더와 인종에 대해서만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자본주의와 계급의 문제가 너무도 자명하게 작동하고 있는데 왜 모든 것을 개인의 정체성 문제로 환원시키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늘 똑같은 이야기 밖에 없고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지 않냐는 것이다. 이러한 댓글을 보고 있으면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것이 30-40년 전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화 비평가들이 줄기차게 해왔던 이야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에 대한 비판은 1990년대에 마르크스주의 비평의 중심 과제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당시 그러한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은 엘리트 문화 비평가뿐이었다. 미국에.. 2021. 10. 27. 믿음에 구워먹는 고기 혹은 록음악 몇 가지 사실들: 난 가공식품은 먹지 않는다. 이 말은 내가 가공식품을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난 가공식품을 자연식품보다 좋아한다. 맛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듯한 맛이다. 천상의 맛이라고나 할까. 식품첨가물의 맛은 '맛의 이데아'라고 할 만하다. 기존에 '미원'이라 불렸던, 그러나 한때 MSG라는 화학적 이름으로 다시 명명되며 사람들 사이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던, 식품첨가물의 그 센세이셔널했던 맛의 기억을 떠올려보라. 그러나 천상의 맛에는 대가가 따른다. 가공식품에 들어가기 마련인 온갖 식품첨가물이 몸에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난 가공식품이 지닌 천상의 맛이 그것이 내 몸에 들어와 일으키는 염증과 바꿀 만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잘 안 먹는다. 물론, MSG로 .. 2021. 9. 3. 선적 시간에서 비선적 시간으로 푸른새벽이 내놓은 가장 완성도 높은 앨범은 2006년작 [보옴이 오면]이다. 당대 주류 음악계가 촌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보옴이 오면]과 같은 앨범이, 주류 음악계가 아니라, 인디 음악계를 통해 나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인디 음악은 주류 음악보다 훨씬 더 완성도 높으나 다만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인 음악을 뜻했다. 근래 인디 음악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보라. 인디 음악은 출세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음악과 같이 여겨진다. 카더가든이라는 가수가, 이미 충분히 높은 완성도의 음악을 하고 있었음에도, 인디음악가로서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한 채 '출세하겠다'는 일념하에 주류 음악 경연에 출연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인디 음악은 음악 자체의 잠재.. 2021. 6. 15.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 3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