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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 Hopkins, "Sit Around the Fire"

by spiral 2022. 1. 11.

작년 말 홉킨스의 새 앨범이 나왔다. 지난 앨범에서 이미 예상할 수 있었듯 이번 앨범은 보다 명확하게 명상적이 되었다. 거의 신플라톤주의적이다. 난 홉킨스의 작업이 21세기에 전자 음악 일반이 나아가는 한 가지 방향을 매우 잘 보여준다고 여긴다. 전자 음악은 인간 세상을 떠나는 방법, 즉, 인간적이지 않은 세상의 감정을 느끼는 방법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사실 난 음악이 세속적 희노애락의 감정에 가까워질 때 이미 어디서 들어본 감정을 되풀이 하고 있을 뿐이라 여기는 편이다. 21세기에 음악을 만드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저 세상을 그려보기 위함이다. 여기에 현실 도피의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다. 사실 근래 세상에서 벌어지는 반목과 갈등을 보고 있으면 너무 피곤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가장 친취적 사유가 다시금 우주에서 발견되고 있기도 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빅테크 기업들은 엄청난 수의 인공 위성을 쏘아올리고 있다. 여러 회사가 대기권 밖에서 머무는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이에 공명하는 음악적 현상의 한 예가 홉킨스라 말해본다면 어떠할 것인가?

* 그러나 우주를 꿈꾸지만 인간 세상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예컨대, 평소 먹지 않던 미국식 피칸 파이를 먹게 된다. 초콜렛 피칸 파이를 먹는 일은 우주의 진공 속에 머무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몰래 인간 세상에 내려가 범죄를 저지르는 것과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비유하자면 초콜렛색으로 물든 콘시럽으로 범벅이 된 피칸 파이를 먹는 일은 연쇄 살인범과 같이 참혹한 살인 행위를 저지르며 쾌락을 느끼는 일과 별로 다르지 않다. 혹은 땡중이 산사를 벗어나 도박을 하고 도박에서 딴 돈으로 미슐랭 스타 식당에 가서 허겁지겁 육식을 하고 여자를 하나 꼬셔서 혼외 자식을 얻는 것이 이와 비슷한 일이지 않을까?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혼이 나갈 정도로, 강렬하게 달다. 내 몸의 세포가 그 독성에 하나 둘 죽어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마약에 빠진 사람처럼 마지막 한 부스러기까지 다 먹는다. 마치 칼로 몸을 그어가며 쾌락을 느끼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이게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의 처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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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for Psychedelic Therapy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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