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307 배비지: 컴퓨터의 아버지 혹은 철 없는 아이 분석학회(the Analytical Society)의 설립자로 알려진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라는 19세기 영국의 수학자에 대해 좀 이야기해보자. 요점은 당시 수학자가 단순히 수학만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보는 데 있다. 뉴턴 이후 수학이 '물리학의 언어'가 되었다는 점을 기억하라. 수학으로 물리 현상을 이해하게 되면 물리적 현실에 개입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배비지가 발명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이와 조금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그는 애디슨처럼 발명품을 많이 만들었다. 그의 발명품 중에는 기차 앞으로 달려드는 소를 잡기 위한 장치도 있었다. 이는 그가 순수수학만 한 것이 아니라 응용 수학자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물론 배비지의 분석학회는 수학의 영역에서 영국의 전통인 뉴턴의 미분법을 버리고.. 2022. 11. 9. 도올, 안병무, 민중신학, 유학, 그리고 자연과학 도올은 기독교 관련 강연을 할 때 가장 빛이 난다. 이는 그의 철학적 궤적이 서구 기독교 신학에서 시작해서 자신의 한국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의 동양철학 독해는 의외로 순수하게 동양적이지 않다. 그가 동양철학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알게 모르게 서양철학에 대한 자의식이 전제되어있다. 그가 지닌 서양철학에 대한 자의식은, 아래 강연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안병무나 정약용이 했던 고민과 궤를 같이 한다. 어째서 그가 기회만 되면 강연 중에 '서양철학은 구라'라고 끊임없이 '까는지' 생각해보라. 이는 조선시대 기독교와 조우한 유학의 운명이 그러했듯 정약용 시대에 이미 시작된 자의식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조선에서 순수한 의미의 동양철학을 하는 것이 이미 18.. 2022. 10. 26. 뮤직 큐레이터와 음악다방 DJ (feat. 괴테, 박찬욱) 유튜브가 음악을 듣는 주된 창구의 하나가 되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직종(?)은 '뮤직 큐레이터'다. 뮤직 큐레이터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전에 오늘날 유행하는 작명법에 대해 좀 이야기해보자. 한 예로, 근래 새 직종은 거의 영어로 칭해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래야 그럴싸해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입장에 영어는 단절을 의미한다. 전통과의 단절 말이다. 20세기 이전에 한국인 입장에 영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언어였다. 적어도 20세기 초까지 한국인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영어는 없었다. 영어로 새 직종을 묘사하게 되면 마치 전례 없던 직종이 생긴 것 같이 느끼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인에게 영어는 맥락에서 벗어난 형이상학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생물학자라면 좀 다른 생각을 할 것이다. 생.. 2022. 10. 19. 자기계발, 주디스 버틀러, 공짜 유튜브에는 별의별 영상이 다 있다. 최근에는 '자기계발'이라는 키워드를 제목으로 단 영상에 주디스 버틀러의 사진이 덧붙여진 것을 하나 봤다. 세상에, 주디스 버틀러와 자기계발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언제부터 버틀러가 자기계발 담론가가 된 거지? 궁금해서 클릭해봤다. 시작은 이상하게도 돈 안들이고 자기계발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기계발, 버틀러, 공짜, 대체 이 키워드의 조합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놀랍게도 이 모든 키워드는 연결됐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계발에 필요한 요소가 교양인데, 교양인이 되기 위해선 여러 석학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고, 주디스 버틀러는 세계적 석학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공짜' 요소는 어디에 있느냐? 석학들의 강의를 EBS에서 시리즈로 기획을 해서.. 2022. 10. 12. 쓰레시 메탈과 쇼츠 쓰레시 메탈 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대곡'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 아래 메탈리카의 [로드](Load)를 예로 들면 거의 10분에 육박하는 "The Outlaw Torn"이나 8분이 넘어가는 "Bleeding Me"가 대표적이다. 앨범 전체 길이도 80분에 달한다. 메탈리카의 가장 야심작이라 할 수 있는 1988년작 [앤저스티스포올](. . . And Justice for All)에는 6분 이상되는 곡이 3곡, 7분 이상되는 곡이 2곡, 9분 이상되는 곡이 2곡이나 된다. 길이에 있어 메탈의 정서는 가히 서사시적이다. 세계 전체에 대한 조망을 해보이겠다는 야심이 메탈의 세계관이라 말해볼 수 있다. 메탈 음악은 서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예컨대, 2-3분 짜리 발라드 사랑 노래를 쓰레시 메탈.. 2022. 10. 5. Hans Zimmer, [Dune OST] 근래 한스 짐머의 OST는 음악적이기보다 음향효과에 더 가깝다. 내가 최근 그의 작업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 어떤 음악보다 들을 만하다. 내 관심사는 인간 심리의 음악적 형성 이전에 시공간의 형태로 작동하는 소리를 고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새로운 시공간 자체를 창출해야한다. 물론 이는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예컨대, 칸트에게 있어 시공간은 이미 인간 직관의 형식을 이룬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존재와 사고가 인간의 형태로 상응하기 이전의 원초적 센세이션을 생각해볼 수 있기도 한 게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미 주어진 현실의 비근한 시공간 속에 머물며 한낱 특정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인간으로서 소박하게 노래나 부르는 형태의 음악은 흥미롭지 못하다. 이는 뉴턴의 고.. 2022. 9. 28. Jon Hopkins, "Tayos Caves, Ecuador i" 근래 난 음악을 즐겨 듣지 못한다. 다만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사실 갈수록 음악은 내게 너무 과하게 느껴진다. 설탕 범벅을 하여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자극적 음식을 먹는 것 같이 느낀다. (물론 추억으로, 과거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생각날 때가 있듯, 자극적인 1990년대 록 음악을 듣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조금 다른 맥락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은 어떠한가? 좋은 곡이지만 지금의 내겐 너무 과하다고 느껴진다.) 그럴 때면 음악이 천천히 멈추어지며, 아주 길게 늘어진 테이브를 들을 때처럼, 단 하나의 음표 속에 영원히 머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더 나아가, 하나의 음조차도 아닌 것, 음표보다 작은 것 속에 머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존 케이지가 써낸 4분 33초의 침묵.. 2022. 9. 21. Eels, "Susan's House" 1996년경 아래 일즈의 "Susan's House"라는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어딘지 으스스하다고 느꼈다. 동시에 기묘하게 매력적이라 느꼈다. '아름다운 괴물'이라는 형용모순적인 앨범의 제목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곡의 하나다. 사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대조시키는 능력이 일즈 음악의 특징이다. "Rags to Rags"나 "Last Stop: This Town" 같은 곡의 들어보면 알겠지만 1990년대 그런지 록의 영향을 받은 디스토션 잔뜩 걸린 후렴구 리프를 사용하면서도 정작 그 어떤 소리도 지르지 않는 게 일즈의 특징이다. '그런지 빼기 신경질적 반응'이라고나 할까. 소리를 지르기는커녕 너무도 차분하게 가사를 읊조린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멜로디를 배경으로 말이다. 그 자신이 그런지의 후예인 동시에 .. 2022. 9. 18. PREP, "Years Don't Lie" PREP is a British quartet, much loved by Koreans who have affinity for the genre 'city pop.' (As far as I've figured out, they visited Korea to give a gig as early as back in 2018.) Their eponymous album, PREP, provides moments of interest to me too, although sometimes (to be honest, many times), say, when it comes to the first track, it turns out to be lackluster. But in general the album can b.. 2022. 9. 7. 이전 1 ··· 9 10 11 12 13 14 15 ··· 3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