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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Zimmer, [Dune OST] 근래 한스 짐머의 OST는 음악적이기보다 음향효과에 더 가깝다. 내가 최근 그의 작업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 어떤 음악보다 들을 만하다. 내 관심사는 인간 심리의 음악적 형성 이전에 시공간의 형태로 작동하는 소리를 고찰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새로운 시공간 자체를 창출해야한다. 물론 이는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예컨대, 칸트에게 있어 시공간은 이미 인간 직관의 형식을 이룬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존재와 사고가 인간의 형태로 상응하기 이전의 원초적 센세이션을 생각해볼 수 있기도 한 게 사실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미 주어진 현실의 비근한 시공간 속에 머물며 한낱 특정한 아이덴티티를 지닌 인간으로서 소박하게 노래나 부르는 형태의 음악은 흥미롭지 못하다. 이는 뉴턴의 고.. 2022. 9. 28.
Jon Hopkins, "Tayos Caves, Ecuador i" 근래 난 음악을 즐겨 듣지 못한다. 다만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사실 갈수록 음악은 내게 너무 과하게 느껴진다. 설탕 범벅을 하여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자극적 음식을 먹는 것 같이 느낀다. (물론 추억으로, 과거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생각날 때가 있듯, 자극적인 1990년대 록 음악을 듣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다. 조금 다른 맥락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은 어떠한가? 좋은 곡이지만 지금의 내겐 너무 과하다고 느껴진다.) 그럴 때면 음악이 천천히 멈추어지며, 아주 길게 늘어진 테이브를 들을 때처럼, 단 하나의 음표 속에 영원히 머물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더 나아가, 하나의 음조차도 아닌 것, 음표보다 작은 것 속에 머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존 케이지가 써낸 4분 33초의 침묵.. 2022. 9. 21.
Eels, "Susan's House" 1996년경 아래 일즈의 "Susan's House"라는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어딘지 으스스하다고 느꼈다. 동시에 기묘하게 매력적이라 느꼈다. '아름다운 괴물'이라는 형용모순적인 앨범의 제목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곡의 하나다. 사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대조시키는 능력이 일즈 음악의 특징이다. "Rags to Rags"나 "Last Stop: This Town" 같은 곡의 들어보면 알겠지만 1990년대 그런지 록의 영향을 받은 디스토션 잔뜩 걸린 후렴구 리프를 사용하면서도 정작 그 어떤 소리도 지르지 않는 게 일즈의 특징이다. '그런지 빼기 신경질적 반응'이라고나 할까. 소리를 지르기는커녕 너무도 차분하게 가사를 읊조린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멜로디를 배경으로 말이다. 그 자신이 그런지의 후예인 동시에 .. 2022. 9. 18.
PREP, "Years Don't Lie" PREP is a British quartet, much loved by Koreans who have affinity for the genre 'city pop.' (As far as I've figured out, they visited Korea to give a gig as early as back in 2018.) Their eponymous album, PREP, provides moments of interest to me too, although sometimes (to be honest, many times), say, when it comes to the first track, it turns out to be lackluster. But in general the album can b.. 2022. 9. 7.
이자람 아래 영상은 2008년에 제작됐다. 만으로 이자람의 나이 29세 때다. 영상의 후반부에서는 이자람과의 인터뷰가 길게 이어진다. 어린 시절 어떠한 부모 밑에서 어떻게 교육받고 자라왔는지, 어떻게 해서 판소리를 시작하게 됐는지, 그리고 이자람 자신이 생각하는 판소리란 무엇인지 등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인터뷰를 통해 그의 공연을 보면서 느꼈던 지점들이 그 자신이 정확히 인지하고 의도한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이자람 공연의 특징은 스토리텔러로서의 접근에 있다. 그는 단순히 판소리라는 장르의 기교를 최고 수준으로 체득한 사람이 아니다. 그가 추구하는 최종 지점은 18-9세기 판소리의 내러티브 속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여 그들의 삶을 동시대인 21세기에 되살려내는 것이다. 사실 판소리에 대한 이러.. 2022. 8. 31.
MMCA x 정재형 국립현대미술관은 적어도 상업성의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국가가 운영하는 예술 전시공간이기 때문이다. 돈에 발목 잡히지 않을 때, 혹은 인기의 눈치를 보지 않을 때 예술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아래 영상을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싶다. 그렇다고 그렇게 심각하거나 실험적이거나 한 것도 아니니 예술이 뭐 대단히 이상하거나 그럴싸한 것이란 말은 아니다. 티비를 틀었을 때 아무 곳에서나 들려오는 음악 양식이 아니란 정도의 의미다. (그나저나 정재형은 피아노 건반 좌우로 긁는 거 너무 자주 사용하는 거 같다.) -- Performed on June 15, 2022 at MMCA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2022. 8. 24.
수학, 허준이, 가죽 없는 소, 좀비 박사학위 논문과 같이 단일한 주제 의식을 긴 시간 동안 탐구할 것을 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겪게 되는 문제의 하나는 사람이 편협해진다는 데 있다. '학문적 엄밀성'이 요구하는 것이 사실 알고 보면 현실에서 동떨어진 채 추구되는 '편협한 정합성'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편협한 정합성을 비판하는 것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과 같이 규범에 대한 비판이 그 자체 '혁신'이라 불리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에는 말이다. 그러니 유행을 거스르며 '삶의 지혜'를 뒤집는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는 오늘날 퍼지고 있는 '반지성주의'의 한 가지 판본이 '지적 정합성'을 거부하며 '삶의 지혜'를 직접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감수성에서 발견되.. 2022. 7. 27.
Spiritualized, "Ladies and Gentlemen . . ." 생물학자들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새끼들이 귀여운 이유를 생존전략의 일종으로 설명한다. 귀엽지 않으면 누가 그들의 칭얼거림을 받아줄 것이란 말인가? 생각해보라. 새끼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사실 100% 남에게 의지해야하는 상황은 대단히 위험하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명확해진다.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10가지 중 1-2가지는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도와줘야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나를 노예로 만드는 것과 같은 상황의 끔찍함에 도망을 가고 싶을 것이다. 100% 남에게 의지하려고 하면 역할에 따른 도우미가 10명은 있어야할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내 의지에 복종하는 팔과 다리를 지닌 사람은 그 자신의 노예를 신체라는 이름으로 지니고 있는 셈이다... 2022. 7. 8.
클래식과 팝,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멸종위기종 발표된지 27년이 지난 오아시스의 "샴페인 슈퍼노바"를 들으며 세쳇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렴 노래는 이런 거지'라고 느낀다. 그리고는 내가 결코 크게 공감할 수 없었던 내 선배 세대의 슈퍼스타들을 떠올린다. 솔직히 난 비틀즈가 그렇게 좋다고 느낀 적 없다. 그들의 음악과 내 영혼이 공명한 적 단 한번도 없다. 내 앞 세대의 곡을 진정 내것으로 들으려면 재즈나 클래식으로 가야했다. 내가 듣는 클래식 음악은 18세기까지 거슬러간다. 바하가 대표적이다. 오래된 음악이지만 난 내 영혼이 바하와 상당 부분 공명하는 것을 느낀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클래식 음악은 동시대 연주자에 의해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조성진에 이어 임윤찬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정서를 생각해보.. 2022.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