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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종 음악원 다큐멘터리 전문가들이 국가의 충분한 지원을 받게 될 때, 그리하여 자기 분야의 일만 신경쓰면 되게 될 때, 어떤 성과가 나오게 되는지 그 한 사례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찾을 수 있지 싶다. 인간이 모이는 모든 곳이 그렇듯 아래 영상에서 보여주지 않은 학교 내부의 정치적 기류와 같은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아래 영상 속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생각과 언어만큼은 저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노력을 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아래 영상만 놓고 보면 아래 학교는 오직 예술이라는 목표 하나를 가지고 세대와 세대를 잇고자 하고 있다. 계승할 만한 전통이란 그렇듯 순수한 목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집단을 이끌 때 만들어져나올 수 있다. 볼 만한 다큐다. 심지어 영감과 열정을 불러일으키기도.. 2021. 3. 26.
"재림"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Y. B. Yeats)의 "재림"(The Second Coming)이라는 시의 첫번째 연이다. 1919년에 쓰여졌다. 20세기 초반 유럽의 지성사적 분위기가 어떠한 것이었는지 가늠하게 해주는 시다. 세계 1차 대전이 터지고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던 시절이었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19세기에 만연했던 과학적 진보에 기반한 사회 개선 따위의 꿈들이 전부 헛된 꿈과 같이 무너지고 있었다. 19세기식 유럽 문명 자체가 사망선고를 받고 있었다. 이 암울함이 20세기 초 유럽 모더니즘의 한 가지 바탕이다. 서구의 문명은 이미 이때 한계에 봉착했었다. 적어도 문학가들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 이후로도 정치-사회-경제적으로는 팽창을 계속했다. 전세계가 서구식 삶을 .. 2021. 3. 23.
NIN, [The Downward Spiral] 아래 나인인치네일즈(Nine Inch Nails)의 [The Downward Spiral]은 1990년대 미국 대중음악계의 특성을 매우 잘 보여주는 앨범이다. 자기 파괴적 폭력성이 그 핵심이다. 말하자면, 얼트록 계열 음악이 지닌 폭력성은 다른 누구에게 가하는 폭력이 아니라 음악가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에 바탕한다. 1990년대에 백인 청년들이 폭도가 되어 의회로 쳐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이 내향적 특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내향적 폭력은 외적-사회적으로 구현되지 못한 자아, 즉 좌절된 자아 실현에 바탕한다고 말해볼 수 있다. 여기서 요점은 '정치적 행동으로 발전하여 전체 사회 단위에서 이상을 구현하지 못하게 된 자아는 어떻게 자살을 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인.. 2021. 3. 21.
실리카겔, "Kyo181" 곡의 중반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에야 곡의 참모습이 드러나는 형국이다. 곡에 대한 메타코멘터리가 곡의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다. 사실 이러한 구성은 오늘날 TV 프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예컨대, 언제부터인가 PD가 자신이 기획하는 프로그램 내부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의 개입이 프로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식이 되었다. 김태호나 나영석이 대표적이다. 말하자면, 오늘날 현실은 그 자체로 항상 현실초월적 요소를 그 자신 안에 포함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과거 신과 같은 지위에 있었던 PD들이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할 수도 있다. 제작자는 더 이상 절대적 위치에 있지 않다. 김태호와 유재석의 관계를 보라. 유재석은 김태호의 틀 안에 묶인 자신의 신세에 한탄하며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동시에 김태호의 지시를 .. 2021. 3. 18.
바흐, 뉴에이지, 우주의 중간에서 아마도 바흐(J. S. Bach)가 만든 음악의 정반대에 뉴에이지 음악이 있지 싶다. 뉴에이지 음악은, 수학적-구조적이라기보다,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 전통의 시발점에는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가 있다. 신플라톤주의의 요점은 프쉬케(psychē)와 소마(sōma), 즉, 정신과 몸 사이의 단절을 상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신플라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주관과 대비되는 의미의 객관적 음악 구조물이란 것은 애당초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이 경우 수학적 구조는 불분명한 경계를 지닌 신체에 직접 연결된다. 그 결과, 예컨대, 아래 하루카 나카무라(Haruka Nakamura)의 음악에서 보듯, 음들의 연결은 딱히 분명한 시작점과 종결점을 지닌 형태로 발전되지 않는다. 시중.. 2021. 3. 9.
용산기지와 '미제' 대중문화 아래 다큐를 보면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환상적 이미지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체감하여 이해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에 퍼진 '미국물' 혹은 '미국풍'의 진원지는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거대한 미국인들의 섬 용산 미군기지였다. 미군방송인 AFKN을 포함하여 미군기지로부터 흘러나오는 '미제' 물건들 및 '미제' 음악 및 '미제' 문화들을 생각해보라. 부대찌개와 같은 미군과 관련된 한국식 문화를 포함해서 말이다. 바로 미군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미국을 '별나라'와 같은 곳으로 여기기 만든 원동력이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 한국의 20세기가 나아간 방향은 별세계 미군기지 내에 특권적으로 한정되어있었던 주거 및 삶의 방식, 그에 결부된 문화 등을 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군.. 2021. 3. 6.
Nostalgia Drive 2 요즘 난 음악을 듣고 싶지 않다. 음악에 속하고 싶다고 느낀다. 음악이 내가 머무는 공간이기를 원한다. 공기 중 파동으로 흡수되고 싶다. 그러다 누군가의 고막을 건드리게 될 때 그 순간 다시 형체를 얻게 되기를 희망한다. 공기 중을 떠도는 물리적 현상이 인간의 내면으로 구체화되는 현상, 그것이 음악적 사건이 일어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지 않은가? 2021. 2. 28.
데이트리퍼, "갈색종이" 2004년에 발표된 앨범이나 개인적으로는 약 10년 전에 즐겨들었다. 당시 난 매일 같이 밤 11시 경 야외에서 4Km를 뛰었는데 내게는 이 앨범보다 더 완벽한 사운드트랙도 없었다. 달릴 때 만들어지는 호흡의 원초적 리듬과 아래 앨범이 제공하는 리듬이 일치한다고 느낀 덕분이었다. 사실 만들어진듯 만들어지지 않은 리듬이야말로 [브라운페이퍼]의 매력이다. 숨을 헐떡이는, 아직 완전히 가공되지 않은, 전자음악과 같은 소리를 들려준다. 음악이라기보다는 사물이 내는 날것의 소리를 조합하여 리듬과 비트를 산출해낸 모습이다. 여러 공구를 담는 상자가 있듯 자질구레한 소리를 마치 잡다한 물건처럼 담아낸 상자가 하나 있다면 아마 아래 앨범과 같은 모습일 것이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어디에 쓰는 공구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 2021. 2. 10.
오열, "강강" 노래를 하는 마음가짐이 마치 돌부처와 같다. 혹은,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노래를 부른다. 때때로 판소리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같이 보이기도 한다. 오열이라는 친구의 노래하는 마음은 오늘날 20대 사이에서 횡행하는 정신 건강 문제를 스스로 극복하고 있다. 정신병에 시달리는 도시인의 정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보다 전통적인 삶의 기운이 느껴진다. 땅에 발을 딛고 서있는 자의 건강함과 굳건함이 전혀져온다. 듣고 나면 한풀이 혹은 살풀이라도 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인상적이다. 2021.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