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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 [The Downward Spiral]

by spiral 2021. 3. 21.

아래 나인인치네일즈(Nine Inch Nails)의 [The Downward Spiral]은 1990년대 미국 대중음악계의 특성을 매우 잘 보여주는 앨범이다. 자기 파괴적 폭력성이 그 핵심이다. 말하자면, 얼트록 계열 음악이 지닌 폭력성은 다른 누구에게 가하는 폭력이 아니라 음악가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에 바탕한다. 1990년대에 백인 청년들이 폭도가 되어 의회로 쳐들어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아마 이 내향적 특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내향적 폭력은 외적-사회적으로 구현되지 못한 자아, 즉 좌절된 자아 실현에 바탕한다고 말해볼 수 있다. 여기서 요점은 '정치적 행동으로 발전하여 전체 사회 단위에서 이상을 구현하지 못하게 된 자아는 어떻게 자살을 하지 않고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 사실 얼트 록 자체가 이에 대한 답변이라 할 수 있다. 즉, 자기 파괴성을 음악의 형식 자체로 만들면 자살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음악 자체를 정신병적으로 만들면, 혹은 무대 자체를 정신병원으로 만들면, 구태여 따로 정신병원에 감금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기서 예술과 정신병은 더 이상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 달리 말하면, 자기파괴적 폭력을 다루는 예술가가 곧 정신과 의사 노릇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것이 1990년대에 비주류 정신을 지닌 자들이 자력으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사실 낭만주의의 등장 이후 예술의 뒤에는 늘 정신병적인 요소가 도사려왔다. 1960년대에 등장한 미국의 시인 실비아 플라스(Sylvia Plath)가 좋은 예다. 그녀의 소설 [벨자](The Bell Jar)에서 한때 예술가 지망생이었던 주인공은 아예 정신병원에 감금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삶을 마감한다. 근대 이후 예술가에게 고향이라 할 만한 게 있다면 그것은 정신병원인 셈이다. 사실 예술과 정신병원은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 밖에 없다. 그러나 예술가에게는 자부심이 있다. 그가 환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병을 진단하는 의사이기도 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스스로 의사가 되지 못한 채 정신과 의사에게 찾아간다면 예술가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정신과에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정신이 건강하다면 예술가일 수도 없다. 일상으로부터 새로운 세계의 모습을 발굴해내는 작업은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서는 과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환자인 의사 혹은 의사인 환자를 뜻하는 용어와 같다. 예술가는 그 자신의 신체를 진단함으로써 세계의 질병을 드러내는 자다. 적어도, 그리스 고전 시대 예술에 대비된 의미의, 낭만주의적 전통에서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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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wnward Spiral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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