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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의 혼란, 김오키의 혼돈, 비의 '깡,' 그리고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민수라는 가수가 있다. "민수는 혼란하다"라는 곡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이른바 '민수의 혼란'을 김오키가 추구하는 우연성, 즉 '김오키의 혼돈'과 비교해보자. 아래 공연 영상에서 보듯 '민수의 혼란'은 인간적이다. 무엇보다 20대 초반의 남녀관계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즉, 민수의 고민은 내가 정말 저 아이를 사랑하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혼란은 사람 중심이다. '내'가 있고, '나'는 '너'를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나'도 모르는 답을 '너'에게 묻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겠는 날 너에게 물어." 관건은 '나'라고 불리는 인간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나'는 더 이상 사람으로서의 '나'와 동일하지 않다. 여기서 '나'는 사람(.. 2020. 6. 11.
비, "깡" 내가 사는 곳엔 몸집이 거대한 칠면조들이 떼로 몰려다닌다. 그들 중 수컷은 위기에 처하면 불현듯 화려하기 짝이 없는 깃털을 부채 펼치듯 펼쳐 자신의 거대함을 과시한다. 이들이 깃털을 부채 펼치듯 펼치는 경우가 하나 더 있다. 짝짓기를 할 때다. '월드스타 비'의 "깡"이라는 곡의 안무를 보며 공작새 혹은 칠면조의 부채처럼 펼쳐진 깃털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과장되게 공중으로 손과 발을 뻣어대는 동작들을 보라. 화려하고 또 화려하며, 강력하고 또 강력하다. 아래 안무는 젠더화된 남성의 행동거지를 완벽히 구현하는 표본과 같다. 일로와이로의 일로와 비교해보라. 비에 비하면, 일로는 깃털이 아니라 '솜털' 밖에 없는 '애송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물론, 오늘날 '깃털'이 작동하는 방식은 예전 같지 않다.. 2020. 6. 10.
윤지영, "부끄럽네" 불어오는 바람에 휩쓸려 어느 순간 사라져버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방금 태어난 신체가 사라져버리기 전에 마음 속에 있는 말을 미약하게 소리로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면 아래와 같은 모습일 것이다. 인간의 내면이란 달팽이가 항상 등에 짊어지고 다니던 자신의 집이 사라져버린 것을 알고 갑작스럽게 느끼게 되는 부끄러움과 다르지 않다. 벌거벗은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면 폭풍이라도 불어와 이 떨리는 나약한 신체가 애초 한번도 존재한 적 없었다는 듯 사라지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나 그 순간 사라지지 않고 버티기로 작정할 때 흔히 사회적 존재라 불리는 낯선 신체가 갑옷과 같이 헐벗은 신체를 감싸게 된다. 아래 음악과 영상에 비추어진 신체는 그 어떤 옷도 없이 완전히 헐벗고 있다. 옆에서 다른 누가 내뱉는 숨결 하나에.. 2020. 6. 9.
김오키, "점도면에서 최대의 사랑" 곡의 제목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 것인지, 점도면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 사랑이 있고, 그것이 최대라는 것, 그리고 미지의 공간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다. 언어의 세계 밖에 머물고자 하는 음악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냥 닥치고 음악이나 들어'라는 뜻이다. 맞다, 음악은 그렇게 시작된다. 회화의 영역으로 치자면 우연성을 강조하는 잭슨 폴락 같은 유형이다. 물론, 아래 곡은 김오키의 곡 치고 얌전하며 아주 듣기 편한 유형에 속한다. 그러나 그의 다른 많은 곡은 곡이 어떻게 우연히 혹은 즉흥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For My Angel" 같은 곡이 대표적이다. 2020. 6. 8.
박문치, 1990년대, 언어, 이미지, 검열 아래 박문치의 곡에는 1990년대를 단순히 조야하게 '베겼다'고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그 시절을 직접 살아본 사람으로서 너무도 편안하게 그때 그 시절 곡을 듣듯 들을 수 있다. 마치 최근 내가 원했던 이상적 곡이 이런 것이 아니었는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누군가가 '박문치가 누구야?'라고 물으면, '30년 전 10대들 사이에서 최고 우상이었던 박문치도 기억 못하냐?'라고 핀잔 섞인 답변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이 말이다. 1990년대에 박문치가 없었던 것은 시대가 그를 이미 잉태하고 있었으나 다만 무슨 바쁜 일이 있어서 제때에 생명체로 진화시키지 못했던 사정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너무 일찍 태어났거나, 아니면 박문치가 너무 늦게 태어났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아래 비디오의 '영상미.. 2020. 6. 6.
뉴트로, 공상과학적 과거, [88/18], 서울올림픽 아래 [88/18]이라 이름 붙여진 '서울올림픽 3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어떻게 '복고'가 '세련됨'의 원천이 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요즘말로 치면 '뉴트로'는 '레트로'와 다르다. 어째서 그러한가? 아래 영상의 8할을 차지하는 것은 1980년대에 찍혀진 영상이다. 그 자체로는 무척이나 촌스러운 것들이다. 만약 해당 영상을 통째로 본다면 지겨워서 금방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말 것들이다. 그러나 아래 다큐멘터리 속에서 80년대 영상은 새 생명을 얻고 있다. 그 원인은 편집 기법에 있다. 다큐멘터리의 의미 지평을 완결시키는 '나래이션'이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80년대 영상은 현대 미술관에서 관람하는 일련의 박제된 이미지와 같이 제시된다. 파편으로 박제된 이미지는 세련되다. 땀내나고.. 2020. 6. 4.
이자람, 심청가 (뮤지컬 '서편제' 중에서) '소리'는 '음악'과 다르다. 아래 것을 '음악'이라 부른다면 무례라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소리는 음악 이전의 영역과 맞닿아있다. 음악적 승화 이전의 영역 말이다. 보통 이를 '한'의 영역이라 부른다. 혹은, 소리는 저승으로부터 들려오는 절규라고 말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산 자의 관점에서 말해보자면, '무섭다'는 느낌에 근접하게 되는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소리'다. 그런 의미에서 '소리'는 듣는 이를 서슬 퍼런 귀신의 영역으로 인도한다고 말해볼 수 있다. 즉, '소리'를 듣는 것은 살해당한 자가 육체도 없이, 산자의 동의 없이 그 자신의 권한만으로, 다시 찾아오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리'는 현상학적 경험의 영역 자체가 파열될 때 찾아온다. 경험이 파열되.. 2020. 5. 9.
Yo La Tengo, "And the Glitter is Gone" When it comes to Yo La Tengo, the noisy is the beautiful, or vice versa. The line is blurred between the beautiful and the ugly. Look at the video below. The number has no development, no voice. Only an endlesssly self-repeating loop of an idea-rift. The world is not a story in this number. Yes, it is a 'number.' It is not a song, not a track, but a number which differentiates itself into a thou.. 2020. 4. 20.
원슈타인, "얼음별" 랩 음악을 그다지 즐겨 듣지 않는 사람 입장에서 말하건대, 랩 음악의 감수성 밖에서 말하건대, 최근 들어본, 최근 등장한, 랩 음악 중 가장 뇌리에 남는 곡이다. 이 친구에 대해 아는 바라고는, 주로 마미손과 어울려 다닌다는 것, 요즘 젊은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돌식 래퍼와 달리 화장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 사진에서 보다시피 크게 꾸미고 다니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것, 그리고, 추정컨대, 원슈타인이라는 이름이 '아인슈타인'에서 독일어 'ein'을 말그대로 영어로 번역하여 'one'으로 바꾼 경우일 것이라는 정도다. 이 정도면 대단한 신상정보이지 않은가? 2020.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