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에서 조성진의 연주를 클릭하면 댓글란에서 독특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조성진의 연주를 올리는 것은 영문으로 된 도이치그라모폰의 채널이다. 해당 채널은 다른 많은 연주자들의 영상을 올린다. 조성진만을 위한 채널이 아니다. 그러나 유독 조성진의 연주에는 한국인이 다는 댓글이 80-90퍼센트를 차지한다. 도이치그라모폰 채널이 제공하는 다른 외국인 연주자의 영상에서 한국어 댓글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째서 그들은 외국인 연주자의 영상에는 댓글을 달지 않는 것일까?
영어에 익숙치 않아서라는 답은 불충분하다. 한국어로 달아도 충분한 일이기 때문이다. 혹은 번역기를 써도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난 다소 기이한 인상을 받는다. 그들의 댓글 문화에 따르자면 그들 사이에서는 오직 조성진만이 들을 만한 연주를 들려주는 연주자인 것과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조성진이 한국인이 만든 한국어가 들어간 클래식 곡을 연주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클래식 곡은 대부분 가사가 없기 때문에 언어적 장벽도 없다. 조성진이 연주하는 곡은 한국어나 한국 문화가 관건인 음악이 애당초 아니다. 다른 최고 수준의 연주자들이 이미 많은 녹음을 남긴 곡들이다. 그런데 오직 조성진에게만 댓글을 단다.
이에 대해 몇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 그들은 애당초 조성진의 팬인 것이지 클래식 음악 일반의 팬이 아니다. 2) 그들에게 조성진은 클래식 음악 전체를 대변하는 자와 같다. 3) 앞의 두 가설 모두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한다. 즉, 이들은 한국인인 조성진이 연주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서구의 음악을 한국의 것으로서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조성진이라는 매개자가 없다면 이들 사이에서 클래식 음악은 체감되는 한국적 삶의 양식으로 번역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에게 조성진은 그들의 팬심이 발현되는 장소이자 동시에 사적인 팬심이 클래식 일반이라는 보편적 범주로 확장 및 전환되는 계기와 같다.
내 생각에 조성진의 음악에 댓글을 다는 한국인은 아마도 젊은 층인 것 같다. 조성진을 통해 클래식을 처음 알게 된 젊은 세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살이 빠지니 칼 같은 턱 선이 드러나 더 잘생겨졌다'는 식의 댓글을 보면 그들 사이에서 조성진이 그저 클래식 음악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성진과 비슷한 나이대의 청자가 그의 턱선을 보며 섹슈얼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게 핵심적이다. 이 지점에서 그가 연주하는 음악은 보조적인지도 모른다, 그의 턱선에 비하면.
유럽에서 클래식 음악 청중은 거의 노쇠하였으며 클래식 음악은 대체로 인기가 없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은 젊은 연주자를 끼고 K-팝 문화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팬심을 드러내는 장이 되고 있다. 이들이 앞으로 나이가 들면 조성진이라는 연주자를 넘어서 클래식 일반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만약 앞으로도 계속해서 젊은 연주자들이 나온다면 계속해서 이런 현상이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 수준의 젊은 연주자의 명맥이 끊기면 한국의 클래식 음악 청중도 유럽과 같이 노쇠해질 것이며 클래식 음악은 그러한 사람들이나 듣는 음악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후속 세대 양성은 어느 분야에서나 중요하다. 젊은 층은 젊은 리더를 보고 해당 분야에 뛰어든다. 젊은이가 없는 분야는 죽은 분야다. 어떤 분야가 미래에도 살아남을지 아닐지 알기 위해서 해당 분야에 섹스 어필을 하는 인물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는 것도 재미있는 방법이다. 아주 자주 목적 자체가 되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 섹스는 종족 번식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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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ng Jin Cho, pi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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