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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잘 노는 힙한 혹은 까진 아이들의 몰락 이후 2019년에 불어닥친 'YG의 몰락'에 상응하는, 즉, 그들이 대변해온 낡아빠진 '잘 노는 까진 아이들'의 음악을 대체하는, 새로운 음악적 결과물을 찾으려 한다면 어떤 음악을 예로 들어볼 수 있을까? 아마도 아래 링크된 것과 같은 곡을 제시해볼 수 있지 싶다. 죠지란 가수의 "바라봐줘요"라는 곡이다. 요점은 아래 곡이 1990년대 '착한 정서'의 재림과 같이 느껴진다는 데 있다. 1993-4년 경으로 돌아가 티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혹은, 근래 유튜브에서 유행한 '1980-90년대 시티팝'이라는 트렌드가 동시대 대중 가요로 거꾸로 반영된 결과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래 곡의 뮤직비디오 내 장면 설정을 보라. 대부분의 장면이 도시적 풍경을 담는 데 할애되어 있다. 사람이라.. 2019. 6. 29.
죠지, 온스테이지 (2018년 12월) 2019년을 살아가는 한국의, 평범한 배경의, 그러나 재능있는, 20대가 어떤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죠지'를 들어보면 된다. 듣고 있으면 동시대 20대가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의 최전선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입장에서 흥미로운 것은 1980-90년대가 작금의 20대에게서 재해석되는 방식이다. 무대의 배경 이미지를 보라. '시티팝'의 상징과도 같은 1990년대 애니메이션 그림체를 보여준다. 사실 요근래 유튜브상에서 나타난 '시티팝' 유행은 이미 한물간 30-40대가 과거를 추억하는 과정에서 발굴한 과거의 한 사소한 사례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동일한 것이 20대에게는 새로움의 원천이었다는 점이 요점이다. 사실이 그렇다. '시티팝'을 서랍장에서 다시 꺼내 듣게 되었을 때 그건 사실 30-40.. 2019. 6. 28.
죠지, "오랜만에" 원곡은 김현철의 것이다. -- [오랜만에] (2018) 2019. 6. 27.
이창동의 [버닝]: "항상 너만을 사랑해" vs. "내가 제일 잘 나가" 아래 링크된 지퍼의 곡, "내가 사랑하는 그녀는"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어렸을 적 좋아했던 노래다. 지금 시점에서 듣고 있으면, 순진함이 남아있어 여전히 마음이 가는 곡이라고 말하고 싶어지는 곡이다. 여자의 마음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20대 초반 남자 아이의 어리숙한 풋사랑의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의 쌀쌀맞은 태도 앞에서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를 느끼며 의기소침해지다가도 결국에는 "변하지 않는 게 있어. 항상 너만을 사랑해!"라고 소리치는 부분을 보라. '순진무구함'이란 미스테리를 사랑이라는 이름의 결심으로 승화하고자 하는 태도를 뜻한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대중 가요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의 하나가 바로 지퍼의 곡이 보여주는 순박함이다. 2010년대를 지나.. 2019. 6. 22.
Surl, "Cilla" 아래 설의 "Cilla"라는 곡의 인트로와 이어지는 메인 리프를 들어보면 알겠지만, 지금 이들은 젊은 록 밴드가 달성할 수 있는 최고조의 감각을 선보이고 있다. 전성기로 진입하는 록 밴드의 음악을 듣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즐거움이다. 어쩐지 어린 시절 내가 거닐던 음악적 고향에 다시 온 듯이 느낀다. 뮤직 비디오의 마지막에 저 미친듯 아무 규약 없이 각자 뛰노는 모습을 보라. 저것이 1990년대 나로 하여금 록 음악에 매료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원동력이었다. 아이돌의 군무를 깨트리는 음악이 내가 듣는 록 음악의 정체다. 규정된 아이돌 음악에 대한 안티테제가 요구될 때가 바로 록 음악이 살아나는 시간이다. 그 시절이 다시 가까이 오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난 아이돌 음악을 결코 내 영혼.. 2019. 4. 28.
이상은, [Romantopia] 이 앨범이 벌써 14년 전 이야기다. 이 앨범이 내가 찾아들은 이상은의 마지막 앨범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 그녀의 음악이 별볼일 없어져서 안들은 것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내 인생이 한 장에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듯 이상은도 내 음악 청취의 중심에서 물러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내 20대의 가장 푸르렀던, 그리고 아직 풋풋함이 남아있었던, 시절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에 나오는 마담 멀이라는 인물이 한 말이 생각난다. 마흔 살이 지나고 나면 감정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게 그것이다. 판단력을 얻는 대가로 감정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면 마흔이 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 이전까지는 그저 감정과 열정에.. 2019. 4. 12.
패닉, [패닉] 어린 시절 애착을 가지고 들었던 앨범의 하나다. 10대 시절의 특권 중 하나는 별것 아닌 것도 놀라움 속에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아래 앨범을 기억하는 방식이 그렇다. 지금 들어보면 마치 데모 앨범 같은 작업 상태를 보여주는 앨범이다. 기술적으로 발전된 최근의 아이돌 음악에 비교하자면 너무도 소박하다 못해 아마추어적으로 들린다. 특히 "왼손잡이" 같은 경우 지금 들으면 멜로디나 창법이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이 앨범에 실린 많은 곡의 멜로디나 창법이 사실 대체로 그러하다. "더"라는 곡 하나가 예외이지 싶다. 그러나 당시 내가 듣기에 이 앨범에는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음악적 야심이 있으면서도 반항적이고 또 지적으로 들리는 면모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쉽게 말하면, 감수성 예.. 2019. 4. 6.
친밀함, 내재성, 생태학, 정동, 삶 미국의 문학 연구 영역에서 근래 가장 주목 받는 단어의 하나는 '친밀함'(intimacy)다. 이는 철학적 개념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개념의 층위를 건너뛰고자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 여기에는 철학적 배경이 분명히 있다. '내재성'(immanence)이 그것이다. 20세기 말 철학 영역으로부터 불어온 들뢰즈 바람을 떠올려보라. 그를 21세기적으로 수용한 문학 연구 판본이 '친밀감'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들뢰즈의 흔적을 더듬는 것은 전혀 요점이 아니다. 사실 근래 미국 문학 연구계의 특징은 신진 연구자들이 20세기 후반 불어온 프랑스 철학을 이제는 그들 자신의 것으로 수용한 후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사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예컨대, 들뢰즈는 여전히 미국 문학 연구 영역에서 중.. 2019. 3. 17.
NIN, "We're in This Together" 펄잼이 1998년작 [Yield]에서 들려준 기타 연주와 아래 것을 비교해보자. 나인 인치 네일즈의 1999년작 [The Fragile]에서 기타 음이 사용되는 방식을 보면 연주자의 '손맛'을 제거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인더스트리얼 록'이라 불리는 것과 록 음악 일반 혹은 '얼터니티브 록' 사이의 차이다. 요점은 인더스트리얼 록에서는 기타 연주에 있어 연주자의 개성이 사라진다는 데 있다. 마치 기계가 기타를 연주한 것 같은 느낌에 가깝다. 이들의 장르가 '인더스트리얼 록'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 공장에서 생산된 것인듯 들리는 비인간화된 기타 연주에 있다. 사실 1990년대 초 '얼터니티브 록'에서 1980년대 장인 기타리스트들이 보여주었던 기교는 이미 별로 중.. 2019. 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