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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책의 집, 책의 컴퓨터 공부하는 사람치고 자신의 집을 도서관으로 꾸미고자 하는 '로망'이 없는 사람은 없다. 아래 영상에서 보듯 정재승 또한 그 중 하나다. 멋진 집이다. 2만 여권의 책이 있다고 한다.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책은 사놓은 것 중에서 읽는 것이지 샀다고 다 읽는 게 아니다. 일단 책이 손에 닿는 곳에 있어야 한번이라도 펼쳐서 보게 되지 않던가. 우연히 만나게 된 구절로부터 영감을 얻고자 하는 것이 학자다. 새로운 생각을 해내기 위해서는 책이 지천으로 손에 닿는 곳에 널려 있어야한다. 마치 숲 속에 머물다 보면 이런 나무도 있고 저런 나무도 있고 이런 동식물 등이 있기에 우연한 만남을 가지게 되고 그렇게 해서 새로운 것을 알게 되듯이 말이다. 책은 숲 속 나무에 매달린 나뭇잎 혹은 땅에 흩뿌려진 .. 2022. 5. 12.
NBA, 딥쓰리, 이른바 '좋았던 옛날' 내가 유일하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스포츠는 농구다. 물론 동시대 농구 경기를 실시간으로 찾아볼 정도는 아니다. 그저 정리된 영상을 통해 이런 저런 플레이어들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다. 그러나 1990년대 NBA 선수들 관련 영상은 여전히 흥미를 가지고 찾아본다. 내가 농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주 흔해 빠진 이유 때문이었다. 어릴적 [슬램덩크]라는 만화를 보게 된 게 결정적이었다. 그 안에 묘사된 농구 장면이 어찌나 멋지게 보이던지 친구들과 농구를 직접 해보기에 이르기도 했었다. 물론 난 운동가형 신체를 타고나지 못했다. 어설프게 흉내내는 수준에서 그쳤다. 한편 [슬램덩크]의 작가가 작품의 배경에 NBA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내 이목을 끈 것은 마이클 조.. 2022. 4. 27.
"날아라 병아리"와 세계의 기원 개인적으로 신해철과 넥스트에 열광해본 기억은 없다. 그러나 "날아라 병아리"라는 곡을 들으면 1994년, 이른바 '학창 시절'의 감정이 떠오를 만큼의 기억은 지니고 있다. 하루하루 자살하고 싶었던 시절, 내 주변 세상의 모든 것이 단 하나도 정상적이지 않게 느껴지던 때,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 요동치며 내게 다가왔던 그 두려웠던 시절의 기억이 떠오른다. 남자 중학교 교실이란 곳은 그토록 힘의 논리가 횡행하던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점심 시간마다 음악이 나왔다. 방송반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가장 잘 자나가던 곡들이 흘러나왔다. 그 중 하나가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였다. 태어나 처음 경험한 폭력적인 공간을 너무도 감미로운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채우고 있었다. 감상적인 나래이션 및 가사와 더불어 말.. 2022. 4. 3.
테크노 봉건주의, 명품, 주술, 영성 최근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는 담론의 하나는 '테크노 봉건주의'(technofeudalism) 혹은 '디지털 봉건주의'(digital feudalism)다. 이는 근래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함께 자본주의가 진화해가는 방향을 묘사하기 위한 용어다. '테크노 봉건주의' 이론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지금 봉건주의의 형태로 진화 혹은 퇴화하고 있다. 요점은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조차 무너뜨리지 못한 자본주의를 자본주의 자신이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는 데 있다. 여기서 자본주의가 사실 그 자체로 대단히 혁명적인 기능을 수행하며 등장했었다는 점을 기억해야한다. 자본주의는 중세 봉건주의를 무너뜨리며 중산층 자본가들에게 자유를 허락하는 정치체제의 경제적 바탕으로 여겨졌다. 바로 이 혁명적 배경 덕.. 2021. 11. 22.
'요즘 어디서 뭐 하고 놀아?' 아래 링크된 인터뷰는 두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다. 첫째로, 20대 중반의 청년 스타트업 사업가를 대려다놓고 나이가 훨씬 더 많아 보이는 인터뷰어가 아주 진지하게 '요즘 10대나 20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놀아요?'라는 질문을 '나도 좀 알고 혹은 끼고 싶은데'라는 태도로 던지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역사상 10대나 20대가 그들이 지닌 놀이 문화 때문에 이렇게 진지한 대접을 받았던 시대가 과연 있었던가? 어른들이 아이들 노는 데 이토록 끼고 싶어했던 시대가 있었던가? 물론 이는 과장된 이야기다. 왜냐하면 아이들 노는 데 관심을 보이는 어른들의 의도가 실은 전혀 아이들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은 '너희들 노는 걸로 큰 돈을 버는 게 가능하다던데, 어디 나를 위한 자리는 없겠니?'에 가깝기 때문이다. .. 2021. 11. 3.
[기생충], [오징어 게임], 상징, 알레고리 [오징어 게임]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을 보면 왜 미국의 작품은 늘 젠더와 인종에 대해서만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자본주의와 계급의 문제가 너무도 자명하게 작동하고 있는데 왜 모든 것을 개인의 정체성 문제로 환원시키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늘 똑같은 이야기 밖에 없고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지 않냐는 것이다. 이러한 댓글을 보고 있으면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것이 30-40년 전부터 마르크스주의 문화 비평가들이 줄기차게 해왔던 이야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에 대한 비판은 1990년대에 마르크스주의 비평의 중심 과제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당시 그러한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은 엘리트 문화 비평가뿐이었다. 미국에.. 2021. 10. 27.
믿음에 구워먹는 고기 혹은 록음악 몇 가지 사실들: 난 가공식품은 먹지 않는다. 이 말은 내가 가공식품을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난 가공식품을 자연식품보다 좋아한다. 맛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듯한 맛이다. 천상의 맛이라고나 할까. 식품첨가물의 맛은 '맛의 이데아'라고 할 만하다. 기존에 '미원'이라 불렸던, 그러나 한때 MSG라는 화학적 이름으로 다시 명명되며 사람들 사이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던, 식품첨가물의 그 센세이셔널했던 맛의 기억을 떠올려보라. 그러나 천상의 맛에는 대가가 따른다. 가공식품에 들어가기 마련인 온갖 식품첨가물이 몸에 염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난 가공식품이 지닌 천상의 맛이 그것이 내 몸에 들어와 일으키는 염증과 바꿀 만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잘 안 먹는다. 물론, MSG로 .. 2021. 9. 3.
선적 시간에서 비선적 시간으로 푸른새벽이 내놓은 가장 완성도 높은 앨범은 2006년작 [보옴이 오면]이다. 당대 주류 음악계가 촌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보옴이 오면]과 같은 앨범이, 주류 음악계가 아니라, 인디 음악계를 통해 나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인디 음악은 주류 음악보다 훨씬 더 완성도 높으나 다만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인 음악을 뜻했다. 근래 인디 음악이 차지하는 위상을 생각해보라. 인디 음악은 출세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음악과 같이 여겨진다. 카더가든이라는 가수가, 이미 충분히 높은 완성도의 음악을 하고 있었음에도, 인디음악가로서 자신의 처지에 만족하지 못한 채 '출세하겠다'는 일념하에 주류 음악 경연에 출연했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인디 음악은 음악 자체의 잠재.. 2021. 6. 15.
수학적 아름다움과 비수학적 추함 내게 수학은 애증의 대상이다. 한 예로, 난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을 이해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게 수학이 무엇인지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 또한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절 수학 교사들은 그저 튜링 머신처럼 문제풀이 기계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수학을 다룬 것이 아니라 수학 내부에서 일어나는 수의 기계적 작동 방식을 일부 시연해서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난 그들이 수학을 이해한 사람이었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 수학을 이해했다면 수학을 그토록 기계처럼 다루지 않았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난 그들로부터 수학에 대한 그 어떤 사랑도 열정도 느껴본 적이 없다. 내가 대학 진학 후, 수학적 객관성의 세계로부터 절연된 채, 주관성이라 불리는 인문학적-철학적 심연으로 뛰어들었던 바탕에는.. 2021.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