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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튜링, 튜링머신, 인공지능 앨런 튜링(Alan Turing)을 공부하다보면 컴퓨터 공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계적이며 노가다와 같은 과정을 요구하는지 추정해볼 수 있다. 물론 앨런 튜링은 컴퓨터 공학자가 아니라 수학자였다. 그러나 알다시피 컴퓨터 공학은 20세기 초중반 수학으로부터 파생되어나왔다. 수학자들의 작업이 없었다면 컴퓨터 공학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수학자 알론조 처치(Alonzo Church)의 제자였던 스테픈 클레이니(Stephen Kleene)의 작업을 보면 그 파생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가 학과장으로 있었던 대학(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의 학과는 최초 '수 분석과'(the Department of Numerical Analysis)라 불렸다. 해당 과가.. 2022. 11. 16.
배비지: 컴퓨터의 아버지 혹은 철 없는 아이 분석학회(the Analytical Society)의 설립자로 알려진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라는 19세기 영국의 수학자에 대해 좀 이야기해보자. 요점은 당시 수학자가 단순히 수학만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보는 데 있다. 뉴턴 이후 수학이 '물리학의 언어'가 되었다는 점을 기억하라. 수학으로 물리 현상을 이해하게 되면 물리적 현실에 개입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배비지가 발명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이와 조금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그는 애디슨처럼 발명품을 많이 만들었다. 그의 발명품 중에는 기차 앞으로 달려드는 소를 잡기 위한 장치도 있었다. 이는 그가 순수수학만 한 것이 아니라 응용 수학자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물론 배비지의 분석학회는 수학의 영역에서 영국의 전통인 뉴턴의 미분법을 버리고.. 2022. 11. 9.
도올, 안병무, 민중신학, 유학, 그리고 자연과학 도올은 기독교 관련 강연을 할 때 가장 빛이 난다. 이는 그의 철학적 궤적이 서구 기독교 신학에서 시작해서 자신의 한국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의 동양철학 독해는 의외로 순수하게 동양적이지 않다. 그가 동양철학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알게 모르게 서양철학에 대한 자의식이 전제되어있다. 그가 지닌 서양철학에 대한 자의식은, 아래 강연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안병무나 정약용이 했던 고민과 궤를 같이 한다. 어째서 그가 기회만 되면 강연 중에 '서양철학은 구라'라고 끊임없이 '까는지' 생각해보라. 이는 조선시대 기독교와 조우한 유학의 운명이 그러했듯 정약용 시대에 이미 시작된 자의식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조선에서 순수한 의미의 동양철학을 하는 것이 이미 18.. 2022. 10. 26.
뮤직 큐레이터와 음악다방 DJ (feat. 괴테, 박찬욱) 유튜브가 음악을 듣는 주된 창구의 하나가 되면서 만들어진 새로운 직종(?)은 '뮤직 큐레이터'다. 뮤직 큐레이터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전에 오늘날 유행하는 작명법에 대해 좀 이야기해보자. 한 예로, 근래 새 직종은 거의 영어로 칭해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래야 그럴싸해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입장에 영어는 단절을 의미한다. 전통과의 단절 말이다. 20세기 이전에 한국인 입장에 영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언어였다. 적어도 20세기 초까지 한국인의 삶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된 영어는 없었다. 영어로 새 직종을 묘사하게 되면 마치 전례 없던 직종이 생긴 것 같이 느끼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한국인에게 영어는 맥락에서 벗어난 형이상학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생물학자라면 좀 다른 생각을 할 것이다. 생.. 2022. 10. 19.
자기계발, 주디스 버틀러, 공짜 유튜브에는 별의별 영상이 다 있다. 최근에는 '자기계발'이라는 키워드를 제목으로 단 영상에 주디스 버틀러의 사진이 덧붙여진 것을 하나 봤다. 세상에, 주디스 버틀러와 자기계발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언제부터 버틀러가 자기계발 담론가가 된 거지? 궁금해서 클릭해봤다. 시작은 이상하게도 돈 안들이고 자기계발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기계발, 버틀러, 공짜, 대체 이 키워드의 조합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나 놀랍게도 이 모든 키워드는 연결됐다. 무슨 말인고 하니, 자기계발에 필요한 요소가 교양인데, 교양인이 되기 위해선 여러 석학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있고, 주디스 버틀러는 세계적 석학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공짜' 요소는 어디에 있느냐? 석학들의 강의를 EBS에서 시리즈로 기획을 해서.. 2022. 10. 12.
쓰레시 메탈과 쇼츠 쓰레시 메탈 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대곡'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있다는 데 있다. 아래 메탈리카의 [로드](Load)를 예로 들면 거의 10분에 육박하는 "The Outlaw Torn"이나 8분이 넘어가는 "Bleeding Me"가 대표적이다. 앨범 전체 길이도 80분에 달한다. 메탈리카의 가장 야심작이라 할 수 있는 1988년작 [앤저스티스포올](. . . And Justice for All)에는 6분 이상되는 곡이 3곡, 7분 이상되는 곡이 2곡, 9분 이상되는 곡이 2곡이나 된다. 길이에 있어 메탈의 정서는 가히 서사시적이다. 세계 전체에 대한 조망을 해보이겠다는 야심이 메탈의 세계관이라 말해볼 수 있다. 메탈 음악은 서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예컨대, 2-3분 짜리 발라드 사랑 노래를 쓰레시 메탈.. 2022. 10. 5.
수학, 허준이, 가죽 없는 소, 좀비 박사학위 논문과 같이 단일한 주제 의식을 긴 시간 동안 탐구할 것을 요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겪게 되는 문제의 하나는 사람이 편협해진다는 데 있다. '학문적 엄밀성'이 요구하는 것이 사실 알고 보면 현실에서 동떨어진 채 추구되는 '편협한 정합성'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편협한 정합성을 비판하는 것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과 같이 규범에 대한 비판이 그 자체 '혁신'이라 불리는 하나의 장르가 되어 유행처럼 번지는 시대에는 말이다. 그러니 유행을 거스르며 '삶의 지혜'를 뒤집는 이야기를 좀 해보자. 이는 오늘날 퍼지고 있는 '반지성주의'의 한 가지 판본이 '지적 정합성'을 거부하며 '삶의 지혜'를 직접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감수성에서 발견되.. 2022. 7. 27.
클래식과 팝,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멸종위기종 발표된지 27년이 지난 오아시스의 "샴페인 슈퍼노바"를 들으며 세쳇말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무렴 노래는 이런 거지'라고 느낀다. 그리고는 내가 결코 크게 공감할 수 없었던 내 선배 세대의 슈퍼스타들을 떠올린다. 솔직히 난 비틀즈가 그렇게 좋다고 느낀 적 없다. 그들의 음악과 내 영혼이 공명한 적 단 한번도 없다. 내 앞 세대의 곡을 진정 내것으로 들으려면 재즈나 클래식으로 가야했다. 내가 듣는 클래식 음악은 18세기까지 거슬러간다. 바하가 대표적이다. 오래된 음악이지만 난 내 영혼이 바하와 상당 부분 공명하는 것을 느낀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클래식 음악은 동시대 연주자에 의해 계속해서 새롭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조성진에 이어 임윤찬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정서를 생각해보.. 2022. 6. 30.
탐정소설, 시간의 외부, 과학외부소설 1997년에 발표되었건만 지금까지 버브(The Verve)의 "Bitter Sweet Symphony"의 뮤직비디오를 한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다시 보니 긴장감이 넘친다. 사회화되지 않은 인물이 비타협적으로 살아가는 아슬아슬한 방식을 이토록 간결하게 보여줄 수도 없을 것이다. 세간의 평 따위 전부 무시하고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그러다 멋지게 동료들과 합류하며 끝난다. 그 모습이 마치 독수리 오형제 혹은 기타등등을 보는 것만 같다. 낭만이 현실을 압도하는 엔딩이다.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아래 비디오에는 또 다른 판본이 있기도 하다. 해당 판본에서는, 아니나 다를까, 막무가내로 걸어가다 막판에 길거리에서 양아치들한테 얻어터져 코피를 쏟는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걸어간다. 비.. 2022. 6.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