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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학문인가 교양인가? 문학과 철학을 기반으로 공부하지만 동시에 난 과학과 수학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도 하다. 과학과 수학을 고려에 넣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의 하나는 문학 비평가들의 철학 이해가 20세기적이라는 것이다. 문학 비평가들 사이에서 대부분의 경우 철학은 하이데거 이후 미학적 존재론으로 옮겨갔을 때의 철학이 기준이다. 이는 문학 비평가들 사이에서 니체 이전 철학은 거대 담론과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나쁜놈 철학'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문학 비평가 중에도 니체 이전, 예컨대, 칸트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있다. 그러나 그의 미학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다. 칸트의 철학 체계 일반이 수학 및 과학 전통과 어떠한 관계 속에서 나오게 된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여기서 문학비평은 순수한 미학의 문제이거나.. 2023. 7. 30.
K-팝과 날라리 미국 음악 아래 마이클 머드라노(Michael Medrano)의 "Do Your Thing, Babe!"와 같은 곡은 차트의 정상을 찍는 유형의 음악과는 다르다. 사실 거꾸로다. 마이너한 취향을 지닌 사람들이 듣는 음악에 더 가깝다. 그러나 대단히 감각적이고 세련된 측면을 지니고 있다. 이런 사람들의 음악은, 한국 청자들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힙한 이국적 분위기에 도취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홍대나, 연남동, 우사단길 같은 곳에 위치한 인스타그램풍 인테리어가 잘 된 카페나 클럽 같은 공간을 기획하는 사람들의 취향과 일치한다. 물론 아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마이클 머드라노라는 친구는, 한국 기준에서 봤을 때, 한 가지 큰 결점을 지니고 있다: 그의 외모와 스타일은 한국인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 콧수염부터.. 2023. 6. 15.
AI와 음악: 신성 갤러거와 인간 갤러거 근래 AI가 어떤 식으로 음악계에 침투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아래 AISIS란 밴드의 음악을 들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1990년대 오아시스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곧바로 리엄 갤러거가 밴드의 보컬이라고 여길 것이다. 음악 스타일도 오아시스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아래 밴드는 리엄 갤러거나 오아시스와 아무 관계도 없다. 곡과 연주는 브리저(Breezer)라는 밴드의 것이고, 보컬은 AI를 통해 리엄 갤러거의 목소리로 변환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존 오아이스의 팬이라면 아래 앨범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정서적으로 그저 1990년대 오아시스의 미공개 앨범이라고 여길 가능성이 크다. 사실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오아시스 뿐만이 아니다. 70대의 폴 메카트니가 부른 곡.. 2023. 5. 31.
보이지니어스: 새로운 소년과 낡은 소년 정서적으로 아래 보이지니어스의 "20 달러"라는 곡의 뮤직비디오는 스매싱 펌킨스의 "1979" 뮤직비디오와 동일선상에 놓여 있다. 차이는 1995년까지만 해도 10대의 남자아이들이 하던 것을 아래 비디오에서는 10대 여자아이들이 하고 있다는 데 있다. 뮤직비디오의 초입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른바 선머슴 같은 외모 및 움직임을 보라. 언뜻 보면 그냥 남자 아이 같다. 그러나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다. 여자 아이들 셋이 모여 차의 보닛을 열고 정비하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이른바 '여성스러움'이라고는 없는 모습이다. 전통적 젠더의 관점에서 '정상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뮤직비디오는 활기에 차있다. '스피릿'이 느껴지는 곡이다. 20대 중후반의 여성 신체를 지닌 3명으로 이루어진 보이지니어스는.. 2023. 4. 20.
패닉, 혹은,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 근래 이적이 어떤 음악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20대에 했던 음악은 기억한다. 패닉의 1996년작 [밑]이 한 예다. [밑]이란 앨범에 그는 그가 가진 모든 재주를 다 쏟아부었다. 그 시절 그는 세상과 긴장 관계에 있는 음악을 들려주었다. 아래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라는 곡이 들려주듯 그는 알레고리를 통해 사회 내 모순에 대해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자였다. 광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다. 예컨대, 그는 외줄 위에서 춤을 추며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겉으로는 늘 웃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언제 줄 위에서 떨어질지 모른다.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릴 때 그의 인생은 끝이다. 인생은 줄타기와 같다. 한 순간 화려한 춤사위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듯하지만 어느 순간 바로 그 관심에.. 2023. 3. 2.
파란노을: 록음악이라는 "시대착오적 꿈" 파란노을은 한국의 록음악가다. 2001년생으로 알려졌다. 파란노을은 한국 청중 사이에서 크게 알려져있지 않다. 오히려 밴드캠프에 올린 곡이 영미권 청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며 알려진 케이스다. 이 과정에서 피치포크의 리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중심에 있는 앨범이 2021년작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다.* 모든 소리를 포스트록 정서로 다 찌그러뜨려버린 결과 오늘날 보기 힘든 스타일을 창출해내고 있다. 첫곡 "아름다운 세상"은 야심적이기까지하다. 곡을 진행하는 방식 및 기타로 특정 분위기를 창출하는 감각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기존 포스트록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푸른노을의 경우 포스트록 특유의 심미적 요소가 누메탈이나 펑크록 스타일로 넘어가는 측면을 지니고.. 2023. 2. 9.
뉴진스의 1990년대 뉴진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 관심을 끄는 것은 "디토"라는 곡이다.* 일반인이 엉성하게 이 곡의 안무를 따라하는 쇼츠를 보게 된 후 알게 됐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이 쇼츠에서 따라하는 안무는 해당 곡이 '유행'이라는 뜻이다. 난 동시대 대중음악에 더 이상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내 신체가 즉각적으로 곡에 반응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내 감수성이 갑자기 젊어졌기 때문일 수 없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는 편이 낫다. 곡이 옛 정서에 기반하고 있을 가능성 말이다. 뉴진스라는 친구들의 곡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검색을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친숙하게도 1990년대에서 2000년대를 연상케 하는 장면으로 점철된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여러 영상이 있었다. 뮤직비디오 두 편, 퍼포.. 2023. 1. 25.
베토벤, 셰익스피어, 미적 형식 음악의 진가를 알고 싶다면 현실의 너절함에 노출된 후 음악을 들어야한다. 미디어의 자극적인 언어를 통해 들려오는 세상사,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결여된 저널리즘적 글쓰기, 제목 장사 기사들, 오로지 기업의 입장에서 쓰여진 광고와 다를 바 없는 경제지 기사들,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에 의해 편집된 여행사 및 항공사 실적을 올리기 위해 쓰여진 여행 관련 기사들, '웨이팅'이 폭발한다는, 혹은 '개미지옥' 식당에 관한 선정적 포스트들, 항상 이미 당신만큼은 놓치고 있다는 엄청난 맛의 음식을 자랑하는 식당, 혹은 다른 곳에는 없고 오직 여기에만 있다는 음식에 관한 포스트들, 이런 것들을 대하고 있으면 세상은 흥분 상태에 있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먼지 하나조차, .. 2022. 12. 21.
발라드와 록, 그리고 이승환 이승환의 "천일동안"은 '멜로드라마적'인 감수성을 지닌 곡이다. 가혹하게 말하면 '질질짜는' 느낌의 가사를 지니고 있다. 창법도 깨나 감상적이다. 소위 '착한 사랑'으로 대변되는 1990년대 초반 '발라드' 감수성의 정점을 보여준다. (또 다른 정점은 신승훈의 "그후로 오랬동안"이다.) 1995년 당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천일동안" 같은 곡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20대는 되어야하지 않던가? 10대가 좋아할 만한 곡도, 이해할 수 있는 곡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 입장에서는 오히려 생각보다 괜찮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는 지금보니 곡의 가사가 좋다는 뜻이 아니다. 아래 곡의 가사에서 주목할 지점은 단 한군데다. 마지막 구절 "다음 세상에서라도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가 없다면 이 곡의 가.. 2022.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