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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fer, "Letting Go" 언어가 없는 곳에서 살고 싶다. 그곳엔 대신 소리가 있을 거다. 말이란 건 말이 없는 자에게 폭력적으로 가해지는 온갖 헛소리, 넌센스와 같다. 그러다 넌센스를 넌센스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 때문에 어느 순간 화라는 감정이 치밀어오르게 될 때가 있다. 언어가 없는 자에게는 바로 그 화가 언어를 창출해는 원동력이 된다. 언어를 태워버리는 언어가 나오게 된다. 때때로 난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다고 느낀다. 언어의 세계에서 비언어의 세계로. 20대에는 매일 같이 언어 대신 소리와 함께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언어가 떠나 비게 된 자리가 아무 소리도 없이 홀로 남겨져 있다. 곤경이다. 이 빈 곳을 기성의 언어로 채우는 일은 내게 거짓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그러한 일을 하도록 종용받고 있다. 담론의 세계는 증오스럽.. 2025. 12. 4.
The Jimi Hendrix Experience, "Voodoo Child" 헨드릭스의 기타 연주를 듣고 있으면 음악에 있어 보컬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본인의 목소리로 몇 소절 거들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타와 대화를 하기 위한 용도일 뿐이다. 사람 입에서 나오는 기타 소리와 노래하는 기타가 있을 뿐이다. 음악에서 가사는 음악의 지평을 넓힐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음악의 가능성을 축소할 수도 있다. 후자의 경우 가사는 리듬이 제 목소리를 얻지 못한 음악이 그 자신의 비음악성을 감추기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리듬 자체가 이미 생명에 맞닿아 있는데 어째서 생명을 모방하고자 할 뿐인 가사가 필요하단 말인가. 음악은 생리학이 그 자체 생명으로 전환될 때 얻어진다.--Live in Maui, 1970 2025. 11. 23.
Alex Warren, "Ordinary" 근래 미국의 20대 음악가들이 어떤 음악을 만드는지 알고 싶다면 이런 것도 참고해볼 만하다. 현재 차트상 잘 나가는 곡의 하나다. 알렉스 워렌은 10살에 유튜버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데 2021년부터 싱글을 내기 시작했고 25살인 올해 첫 음반을 냈다. 꽤 괜찮은 음악을 들려준다. 소울이 있는 음악이다. 미국엔 이런 정서를 지닌 친구들이 있다. 록음악 쪽으로는 본 아이버 같은 밴드가 보여주는 정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진중하고 위로가 되는 보컬을 보여준다. 사실 생각해보면 이러한 정서는 교회 음악 정서와 비슷하다. 혹은, '교회 오빠 정서' 같은 느낌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사실 아래 뮤직비디오의 정서는 전통적이다. 심지어 촌스럽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다. 거꾸로 말하면, 스타일은 없다. 한 예로, 젠더 .. 2025. 11. 9.
Sombr, "Back to Friends" 솜버는 근래 영미권에 등장한 신인 중 비주류 감수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주류 시장의 중심으로 빠르게 파고들고 있는 음악가다. 보면 알겠지만 감각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서는 1990년대적이다. 보컬과 프로듀싱 방식은 M83의 드림팝적 요소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외모는 의 티모시 샬라메와 같이 마초성보다는 중성적 반항기를 보이는 모습이다. 섹슈얼하면서 동시에 전통적 젠더 구분을 무시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최근 인디록/팝의 영역에서 남성으로서 감각적 스타일로 청중을 사로잡는 인물을 보기가 힘들다. 그러나 이 친구는 그게 되는 것 같다. 근래 20대 여성 신체에 기반한 인물들이 주도하던 인디 씬에서 등장한 꽤 신선한 남성 신체 기반 인물이다. 스타일은 경계에서 발생한다. 전형적인 남자, 전형적인.. 2025. 10. 18.
Laurindo Almeida, "The Lamp is Low" 이 곡이 익숙하게 들린다면 누자베스 때문일 것이다. 누자베스의 곡 중 가장 잘 알려진 "Aruarian Dance"라는 곡은 이 곡에서 샘플링을 가져왔다. 원곡 또한 들어볼 만하다. 이지리스닝에 가깝다. 라우리두 아우메이다는 브라질 사람이고 클래식과 재즈, 라틴 음악에 기반한 음악을 들려준 20세기의 음악가이다.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그래미상을 받은 이력이 있다. --Classical Current (1969) 2025. 10. 11.
AI-Created Music 유튜브나 스포티파이에는 인공지능으로 만든 음악이 떠돈다. 아래 영상은 그런 음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반 사이트 몇개를 통해 만든 결과물이다. 곡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모난 구석 없는, 듣기 편한 곡이다. 물론 음악적으로는 가치 없는 곡이다. 가사 또한 막 대학 입학한 18살 짜리가 쓴 것 같은 모습이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이미 예전에 불렀음직한 곡이다. 사실 이게 확률 기반 인공지능의 특징이다. 확률적으로 많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은 형태의 곡은 어디선가 들어봤음직한 유사 곡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듣기는 편한다. 보통 듣기 편하지 않으면 만들어지지도 듣지도 않는다. 유튜브에는 이렇게 만들어진 곡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유튜브는 이런 곡들로 돈.. 2025. 9. 27.
Little Richard 록음악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리를 리차드의 이름은 들어봤을 것이다. 흔히 엘비스 프레슬리를 록앤롤의 왕이라 하지만 사실 엘비스는 초창기 리를 리처드나 척 베리와 같은 흑인 록앤롤 음악가들의 곡을 커버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하운드독"도 사실 흑인 리듬앤블루스 여성 음악가 빅 마마 손튼의 곡을 커버한 것이었다. 물론 이를 두고 오늘날의 관점에서 단순히 엘비스 프레슬리를 커버 음악가 정도로 여겨서는 안된다. 당대에는 맥락이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아래 영상에서 흥미로운 점은 청중이다. 록앤롤 청중이 마치 레스토랑이라도 되는 듯 식탁을 앞에 두고 점잖게 앉아있는 모습이다. 그에 비해 리처드는 피아노를 치고 있지만 의자가 없다. 서서 피아노를 연주한다. 연주하다 기이한 막춤 동작을 선보인다.. 2025. 9. 20.
Elvis Presley, "If I Can Dream" 앨비스 프레슬리가 어떤 가수인지 알고 싶다면 꼭 봐야할 영상이다. 20대 초반이던 1950년대 중반에 그는 그저 순진하게 '끼'를 부리고 있었다. 그러나 1968년에 그는 '한'을 담아 노래하고 있다. 거의 목숨을 걸고 노래를 한다. 혹자는 '영혼'을 담아 노래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묘사해도 좋다. 목소리가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아래와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을 것이다. 1960년대 쇼비지니스에 묶여 하찮은 영화 배우로 하찮은 노래나 부르다 인생을 마쳐야 할지도 모르게 된 엘비스 프레슬리를 다시 가수로 만들어준 역사적 공연의 엔딩 곡이다. 그가 왜 저토록 목숨을 걸고 꿈과 소망에 대해 노래하는지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시에 이 곡은 68년의 사회적 정황을 반영하기도 한다. 곡의 제목이 마.. 2025. 9. 5.
NEU!, "Hallogallo" 영미권에 비해 독일은 록음악의 나라로 기억되지는 않는다.* 해외에서 생각하는 독일 팝음악의 기본 인상은 전자음악에 있다. 그것도 실험적인 전자음악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는 1960년대 말 시작된 크라우트록으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전후 독일 내에서 크라우트록은 주류 음악이 아니었다. 주류 음악은 '슐라거'라 불리는 '이지 리스닝'류의 음악이었다. 크라우트록은 인디 음악과 같다.) 크라우트록도 록이기는 하다. 1960년대 영미권 록음악의 영향을 받은 게 맞다. 그러나 그 모습은 좀 다르다. 아래 노이의 곡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1960년대 영미권 사이키델리아가 독일식으로 번역되면 최면술적 비트 기반 음악으로 변하게 된다. 이를 '모터릭 비트'라 한다. 기계 모터의 그 모터가 맞다. 이 기계적 리듬은 사.. 2025. 8.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