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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rker, [Stochastic Drift] 비트가 강한, 클럽 플로어에서 춤추기 위해 틀 법한 전자음악을 듣는 일은 고역이다. 인위적으로 욕망을 자극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소리는 시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잘 만들어진 전자음악은 클리세 가득한 팝송보다 의외로 훨씬 인간적이다. 아래 앨범이 한 예다. 올해 나온 앨범 중 단연 주목할 만하다.--Stochastic Drift (2025)Stochastic Drift by Barker 2025. 4. 12.
Keith Jarrett, "I Fall in Love Too Easily / the Fire within" Definitely, Keith Jarrett trio at its best. --At the Blue Note (1995) 2025. 3. 29.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보내는 작별인사 같은 작품이다. 작품 속 큰할아버지는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이 투사된 인물과 같다. 악의가 없는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 평생 순수한 블록을 찾고자 했고 그렇게 찾은 조각들로 쌓아올린 탑은 그의 작품들과 같다. 그는 마히토가 그의 계승자가 되었으면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젊은 세대는 자신만의 삶을 진창으로부터 다시 세우고자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일구어낸 세계는 계승자 없이 무너져내린다. 아름다움의 계승과 진보가 아닌 제자리 걸음과 같은 반복을 택한 결과다. 어리석음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이치이기도 하다. 반복 속에 차이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그러나 이를 미적인 것에 대한 평가절하로 보아서는 안된다. 미적인 것은 꼭 필요하다. 주인공인 마히토가 자신이.. 2025. 3. 15.
모임 별, "호수" 모임 별의 2024년작 [우리 개]에서 주목할 만한 곡은 "호수"다. 이 곡을 들으며 어쩌면 황소윤의 합류는 모임 별에게 다시 한번 20대의 영혼을 가져다주는 일과 같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곡은 물론이고 앨범 전반적으로 기존 모임 별의 특징이 완전히 생기를 얻었다. 동시에 황소윤 특유의 기타 솔로가 곡을 마무리한다. 난 언제나 황소윤의 곡에서 기타 솔로가 더 강조되기를 바래왔었다. 그 모습을 전자음을 기반으로 한 모임 별에게서 보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성공적인 조합이다. 록적인 기타솔로와 전자음악적 요소 모두가 감정을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랑의 감정을 생각해보자. 사랑은 모임 별의 세계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감정의 하나다. 늘 기저에는 사랑이 .. 2025. 2. 27.
Toe, "Two Moons" 난 실험적 음악을 좋아한다. 그러나 무작정 실험적이기보다 실험성과 감각적 달콤함이 서로 경쟁하는 음악을 좋아한다. 아래 토의 음악이 좋은 사례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음악을 누가 싫어할 수 있느냐고 느낀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아래와 같은 음악을 듣고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주관성의 문제다. 반면 이 주관성을 바탕으로 형이상학을 재구성하는 것이 미학이다. 미학이 보편성과 목적론에 대한 논의를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미학은 감정에서 시작하지만 감정의 형이상학적 프로그램으로 끝난다. 예컨대, 아래 음악을 들으며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폐허로 느껴지던 세계 전체가 완전히 하나의 의미론적 중심을 얻으며 재구성되는 듯이 느낀다면 그건 음악을 미적으로 .. 2025. 2. 20.
김오키, "You've Got to Have a Flower on Your Mind" 김오키의 음악은 전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실험적으로 들린다. 그의 음악을 실험적 대중음악이라 칭해보고 싶다. 참신한 대중음악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내 기준에서 그의 음악은 훌륭한 대중음악의 표본과 같다. --[스피릿 선발대] (2019) 2025. 2. 12.
Jon Hopkins, Ritual 서로 동의하지 않는 견해를 나누는 대화를 나누고 나면 그 느낌이 마치 뇌를 독성이 있는 물질에 담근 것 같다. 생각은 분명 물리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특정 생각은 특정 물리적 출력을 만들어내는 컴퓨터의 특정 프로그램과 같다. 미학적 음악은 그렇게 가동된 컴퓨터의 명령어를 제거하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과 같다. 미학은 감정을 다루는 프로그램으로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아래는 2024년에 나온 홉킨스의 최근작이다. 내가 그의 음악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속에서 벗어난 소리 자체를 탐구하는 음악가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미학적이라서 듣는다. 미학은 형이상학의 다른 말이다. 속된 소리들이 싫다. 쓰레기 같은 생각과 언어들로 이루어진 현실을 반영하는 게 음악이라면 난 음악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은 .. 2025. 2. 5.
사카모토, 마지막 황제, 중국 아래 음악에는 두 가지가 공존한다. 황제의 화려함을 대변하는 웅장한 메인 테마와 황제의 초라한 퇴장을 예견하는 듯한 멜랑콜리한 도입부와 간주. 아마 이 둘의 대비가 이 음악을 들을 만하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이 음악으로 류이치 사카모토가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음악을 일본인이 맡았다는 것이 당대 서구 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1980년대 동양은 사실상 일본을 통하지 않고서는 서구인들 사이에 각인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당시 동양에는 일본의 경쟁자가 없었다. 문화적으로 홍콩이 다소간 주목을 받을 수 있을 뿐이었다. 반면 2020년대 서구에서 그 위상을 누리는 것은 한국이다. 지금이라면 동양 관련 이미지를.. 2025. 1. 30.
섹슈얼한 클래식 음악 유튜브에서 조성진의 연주를 클릭하면 댓글란에서 독특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조성진의 연주를 올리는 것은 영문으로 된 도이치그라모폰의 채널이다. 해당 채널은 다른 많은 연주자들의 영상을 올린다. 조성진만을 위한 채널이 아니다. 그러나 유독 조성진의 연주에는 한국인이 다는 댓글이 80-90퍼센트를 차지한다. 도이치그라모폰 채널이 제공하는 다른 외국인 연주자의 영상에서 한국어 댓글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째서 그들은 외국인 연주자의 영상에는 댓글을 달지 않는 것일까?영어에 익숙치 않아서라는 답은 불충분하다. 한국어로 달아도 충분한 일이기 때문이다. 혹은 번역기를 써도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난 다소 기이한 인상을 받는다. 그들의 댓글 문화에 따르자면 그들 사이에서는 오직 조성진만이 들을 만한.. 2025.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