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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키, "You've Got to Have a Flower on Your Mind" 김오키의 음악은 전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실험적으로 들린다. 그의 음악을 실험적 대중음악이라 칭해보고 싶다. 참신한 대중음악이라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내 기준에서 그의 음악은 훌륭한 대중음악의 표본과 같다. --[스피릿 선발대] (2019) 2025. 2. 12.
Jon Hopkins, Ritual 서로 동의하지 않는 견해를 나누는 대화를 나누고 나면 그 느낌이 마치 뇌를 독성이 있는 물질에 담근 것 같다. 생각은 분명 물리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특정 생각은 특정 물리적 출력을 만들어내는 컴퓨터의 특정 프로그램과 같다. 미학적 음악은 그렇게 가동된 컴퓨터의 명령어를 제거하는 또 하나의 프로그램과 같다. 미학은 감정을 다루는 프로그램으로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아래는 2024년에 나온 홉킨스의 최근작이다. 내가 그의 음악을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세속에서 벗어난 소리 자체를 탐구하는 음악가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미학적이라서 듣는다. 미학은 형이상학의 다른 말이다. 속된 소리들이 싫다. 쓰레기 같은 생각과 언어들로 이루어진 현실을 반영하는 게 음악이라면 난 음악을 듣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은 .. 2025. 2. 5.
사카모토, 마지막 황제, 중국 아래 음악에는 두 가지가 공존한다. 황제의 화려함을 대변하는 웅장한 메인 테마와 황제의 초라한 퇴장을 예견하는 듯한 멜랑콜리한 도입부와 간주. 아마 이 둘의 대비가 이 음악을 들을 만하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이 음악으로 류이치 사카모토가 젊은 나이에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의 음악을 일본인이 맡았다는 것이 당대 서구 사회에서 일본의 위상이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1980년대 동양은 사실상 일본을 통하지 않고서는 서구인들 사이에 각인될 수 없었다. 그 정도로 당시 동양에는 일본의 경쟁자가 없었다. 문화적으로 홍콩이 다소간 주목을 받을 수 있을 뿐이었다. 반면 2020년대 서구에서 그 위상을 누리는 것은 한국이다. 지금이라면 동양 관련 이미지를.. 2025. 1. 30.
섹슈얼한 클래식 음악 유튜브에서 조성진의 연주를 클릭하면 댓글란에서 독특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조성진의 연주를 올리는 것은 영문으로 된 도이치그라모폰의 채널이다. 해당 채널은 다른 많은 연주자들의 영상을 올린다. 조성진만을 위한 채널이 아니다. 그러나 유독 조성진의 연주에는 한국인이 다는 댓글이 80-90퍼센트를 차지한다. 도이치그라모폰 채널이 제공하는 다른 외국인 연주자의 영상에서 한국어 댓글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째서 그들은 외국인 연주자의 영상에는 댓글을 달지 않는 것일까?영어에 익숙치 않아서라는 답은 불충분하다. 한국어로 달아도 충분한 일이기 때문이다. 혹은 번역기를 써도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난 다소 기이한 인상을 받는다. 그들의 댓글 문화에 따르자면 그들 사이에서는 오직 조성진만이 들을 만한.. 2025. 1. 19.
Keith Jarrett, Gary Peacock, Paul Motian "How Long Has Been Going On" 인간의 지능은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아주 자주 생존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리하여 거꾸로 생존하지 못하게 된다. 생태계 내에서 일어나는 사실관계에 기반한 정보를 충분히 많이 얻어야 생존에 필요한 판단을 할 수 있다. 문제는 현실이 감당할 수 없을 때 찾아온다. 현실이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단계에 이를 때 인간은 현실을 부정함으로써 자신이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는 환상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한다. 그러나 생존의 환상을 만들어내게 되면 해당 개체 및 집단은 물리적으로 생존에 실패하게 된다. 지난 총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주장을 하는 극우 유튜버들과 윤석열의 사고방식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총선.. 2025. 1. 15.
모임 별, "내가 여기에 있다" 모임 별의 "내가 여기에 있다"는 20대의 시간을 포착하고 있다. 늘 두려움의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느낌, 그러나 동시에 근거없는, 무한한 희망에 휩싸여있는 시간, 그것이 20대가 지칭하는 비물리성의 특성이다. 가장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가장 추한 시간, 영혼이 물리적 신체의 구속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 파괴성을 드러내는 시간, 다시 한번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기 두려운 시간. 가장 검은, 그러나 가장 흰 시간. 사실 모임 별의 음악을 듣는 것이 그렇다. 영원히 듣고 싶지만, 그 영원함이 깨질까 두려워 결코 계속해서 듣고 있을 수 없는 음악.잊고 살다 불현듯 부서질 듯 예민한 20대의 감정을 떠올리게 될 때면 그 시간이 지난 후 신체가 빠져들게 되는, 생기없는 하찮음에 절망하게 된다. 감정을 갖는 일은 다.. 2024. 12. 28.
탄핵 순간 역사에 기록될 순간이다. 전세계가 이를 지켜보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져야한다. 이번 사태는 한국 민주주의의 생명력과 강인함을 전세계에 각인시켰다. K-팝과 K-문화의 뒤에 실은 K-정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내보인 것과 같다. 앞으로는 외국에서는 K-정치가 K-문화의 실질적 동력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것이고, 이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다. 어째서 한국이 근래 이토록 도약한 것인지를 설명하는 최종적 참고지점이 등장한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이 정도의 정치의식이 없는 나라에서 문화는 꽃필 수 없다. 거꾸로 말하면, 한국에서 민주주의 정신이 사그러들 때 K-문화도 생명을 다하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일을 막고 싶다면 무엇을 해야할지는 분명한 일이다. 이번 일을 통해 한국은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 2024. 12. 15.
새소년, "KIDD" 새소년의 "KIDD"가 마치 2024년 12월 현시국을 염두에 두고 쓴 곡 같이 들린다. 하긴 록음악은 늘 그랬다. 새로운 것이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열망을 담는 음악 양식이 록이다. 사람들에게 기다리는 마음이 있는 한 록음악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우린 기다리고 있다. 영상은 모임별이 작업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황소윤은 모임별의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난, K-팝 뿐 아니라, 이 곡 또한 집회에서 연주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KIDD (2023) 2024. 12. 9.
탄핵과 융합 평소라면 융합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이 서로 만나고 있다. 한 예로, 탄핵집회에서 K-팝이 불리워지고 있다. 여기서 던질 질문은 다음과 같다: 탄핵은 그저 '정치적 이슈'인가? K-팝은 다만 문화와 산업의 문제일 뿐인가? 누군가는 아직도 탄핵 이야기는 서로에게 분란을 가져올 뿐인 한낱 정치 이슈이니 서로 언급하지 말자고 할 것이다. 평소라면 그 말에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서로 간에 웬만하면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 삶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민주적 질서와 제도가 운영되는 한에서 나눌 수 있는 조건부 지혜일 뿐이다.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은 티비에서 패널들이 나와 떠드는 한낱 정치 이슈가 아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민주적 국가 자체의 존립이 위기에 빠져 모든 것.. 2024.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