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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향: 느티고개 1978년 2월 7일 방송분이다. 지금 보기에 생소한 연출을 보여준다. 영상이 아니라 대사와 연기에 의지해서 감정을 이끌어낸다. 연극 무대에서 벌이는 연기와 별로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표정 및 몸짓 연기가 과장되어있다. 말하자면 표정과 몸짓이 이 시절의 '비주얼' 요소였던 셈이다. 대사 전달 또한 연극적이다. 그러한 이유로 사실 영상 없이 소리만 들어도 작품을 즐기는 것이 가능한 지경이다. 라디오 드라마와 비슷한 느낌이다. 근래의 '스펙터클'에 의지한 연출법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료다. 연출에 있어 지금 보기에 의외로 참신한 면이 있다. 아래와 같은 연출을 오늘날 새로운 방식으로 되살린다면 의외로 독특한 작품 연출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 2024. 4. 19.
Four Tet, "Daydream Repeat" 야권이 이기는 건 기정 사실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기느냐다. 이순신 장군은 이미 패배하여 도망가는 왜구를 끝까지 쫓아가 완전히 끝장을 보고자했다. 일견 불필요한 행동 같이 보인다. 그러나 그는 상대 입장에 공포심이 들 정도로 압도적으로 이기지 않으면 다시 또 똑같은 짓을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난 그가 옳았다고 본다. 완전히 몰아쳐서 야권이 200석 이상으로 이기는 것만이 의미가 있다. 두려움을 느끼도록 만들지 못하면 똑같은 일이 계속해서 반복될 뿐이다. -- Three (2024) 2024. 4. 10.
Nine Inch Nails, "Hurt" 2012년 이후 처음이다,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란 것에 투표를 한 것이. 속된 말로 해보자면, '역대급 빌런'에 대한 '시적 정의'를 구현하는 선거 정도되지 싶다. 영화의 언어로 하자면, 빌런 대 히어로의 대결에 기반한 장르물에 가깝다. 구도의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단순 무식한 장르물이 필요하다. 사실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웬만한 빌런이 등장하지 않고서 그러한 구도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그게 이번 선거의 놀라운 점이다. 지난 2년 동안 너무도 무식하고 무도한 악당이 등장해서 선량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런 자에 대한 대처는 마찬가지로 아주 단순해야한다. '응징'이라는 고대적 영웅서사시의 언어 정도면 족하다. (세상에 '응징'이라니 입에 담는 것 자체가 낯선 언어다.) 히어로 장.. 2024. 4. 5.
PrincEss, [PrincEss] 20대에는 늦은 시간에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걸 느꼈다. 새벽에 쓴 글을 아침에 일어나서 읽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현상이 없어졌다. 생각이 단련되어서 사람이 좀 차분해진 건가 싶었다. 그런 면도 있을리라 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새벽에 감수성이 더 이상 예민해지지 않는 건 멜라토닌의 양이 줄어서 생기는 일이다. 멜라토닌은 10대 시절 정점을 찍고 점점 하향 곡선을 그린다. 40대만 되어도 최고치를 찍을 때의 1/10 수준으로 떨어진다. 새벽에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건 잘 시간에 멜라토닌 분비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럴 땐 자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지 않고 버티면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낮이라도 해도 비가 오거나 해.. 2024. 3. 27.
죠지, 방송반 라이브 죠지의 음악을 들은지 벌써 5년이 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무튼, 죠지의 곡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공연 영상이다. 작년에 찍은 것 같다. -- 2024. 3. 16.
Helado Negro, "I Just Want to Wake Up with You" 마음 깊은 곳에는 우울이 있다. 누가 인간을 '미래에 중독된 종'이라 했던가. 미래를 투사하는 일은 희망과 동시에 우울을 낳는다. 우울하다는 것은 당신이 현재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지적인 동물이라는 뜻과 같다. 그것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특권이자 동시에 두려움이다. 현재라 불리는 물리적 현실에 묶이는 일은 끔찍한 일이다. 그건 우울이 두려워서 영혼을 소거하겠다는 뜻과 같다. 기억을 지우고, 미래를 거두는 일은 생명 없는 물질이 되겠다는 뜻이다. 우울은 소거될 수 없다. 다만 다른 형태로 변환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우울을 다루는 한 가지 방법은 음악을 듣는 것이다. 음악은 항우울제와 같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음악은 실제로 생리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소리라는 물리적 신호로 뇌의 흐름을.. 2024. 3. 8.
미야자키 하야오와 [귀를 기울이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것이 아니면서 그의 세계관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유일한 작품으로 콘도 요시후미의 1995년작 [귀를 기울이면]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을 보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얼마나 만족스러워했을지 생각해보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과 콘티, 그리고 프로듀서까지 맡았기 때문에 미야자키의 세계관이 강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가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것 같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 있어 콘도 요시후미가 미야자키의 세계관을 완벽히 내면화한 사람이라고 말해볼 수 있다. 미야자키 세계관의 핵심은 문학성에 있다. 그의 작품은 많은 경우 주인공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 지닌 중요한 .. 2024. 2. 27.
신유물론적 소멸 알렉스 갈랜드 감독의 2018년작 영화 [소멸](Annihilation)은 인간이 비인간이 되는 과정을 신유물론적으로 보여준다. 아주 옛날식으로 말하면 범신론의 세계다.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신들의 세계, 그러나 초월적 신이 아니라 물질 자체가 다자적 신성인 세계 말이다. 인간과 식물과 동물이 하나된다는 건 그런 이야기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세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등장인물이 동물이면서 식물이고 동시에 인간이고 신이던가. 똑같은 논리가 영화 [소멸]에서 발견된다.* 물론 차이도 있다. [소멸]이 그려내는 범신론적 세계는 신화적 클리세가 아니라 21세기 현대미술 작품 판본으로 그려져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멸]이 묘사하는 '쉬머'(the Shimmer) 속 세계 장면은 하나하나가 현대 미술작품 같다.**.. 2024. 2. 20.
말이 탄산음료처럼 보글보글 작품의 영어 제목은 [말이 탄산음료처럼 보글거린다](Words Bubble Up Like Soda Pop)다. 일본 작품이고, 감독은 이시구로 쿄헤이다. 한국어로는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라고 되어있다. 일본어 제목의 직역인 것 같다. 몇 가지가 눈에 띈다. 일단 색감이 소다수 같다. 인스타그램에서 볼 법한 10대 취향 그림체를 가지고 애니를 만들어놓은 모습이다. 둘째로, 음악이 소다수 같다. 달콤하면서 상큼하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내러티브는 어떤까? 작품이 시작되고 상당 시간 동안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배경이 제시되고 인물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들이 무슨 일을 벌일 것인지 짐작할 수 없다. 장난기 어린 모습의 한 아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한참을 달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2024.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