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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oating Points, "Ocotillo" 플로팅포인츠의 새 앨범이 나왔다. 플로팅포인츠를 들을 때는 이어폰을 사용한다. 주목할 만한 음악가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어폰은 내가 음악에 대해 존중을 표하는 방식이다. 귀에 부담을 가하나 최고의 만족도를 보여주는 이어폰을 쓸데 없는 음악을 드는 데 쓰는 것은 내 귀를 낭비하는 일이다. 그런 음악에 대해서는 그냥 맥북에 내장된 스피커 정도로 충분하다.--Cascade (2024) 2024. 8. 22.
논리학, 레토릭, 자연과학 학습의 어려움 때문에 자연과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데 단 한번도 진심인 적 없었던 사람들이 선택지가 없어서 인문학을 공부하게 될 때 그 결과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간단히 말하면 그들의 인문학은 전체 구도에 대한 이해 없이, 즉 어디서 레토릭이 나오게 된 것인지 그 기원은 알지 못한 채, 단순히 레토릭 안에 머물게 된다. 사실 레토릭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전체가 아니다. 레토릭은 언어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그러나 언어에는 레토릭만 있는 게 아니다. 언어는 레토릭 이전에 논리학이라는 체계를 지니고 있다. (다른 한편 언어 내에는 문법학이라는 부분도 있다.) 부분은 전체와의 관계를 잃게 될 때 단순히 제멋대로, 자의적으로, 날뛰게 된다. 이것이 레토릭이 지닌 문제다. 한낱 레토릭의 차원.. 2024. 8. 15.
404, [11/4/4/13/8] 내가 기억하기에 2010년대 초반 주목할 만한 록밴드의 하나는 404였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무척 거친 질감이다. 난 날것의 느낌이 없는 록음악은 좋아할 수 없다고 느낀다. 그런 건 장르화된 록일 뿐이다. 장르로서 록은 사실 크게 매력적이지 않다. (록이 장르화되면 어떤 식이 되는지 보고 싶다면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히트곡들을 보라. 아주 듣기 좋지만 딱 거기까지다. 요점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면 구태여 록을 찾아서 들을 이유까지는 없다는 것이다. 각자의 장르가 각기 매력을 지니고 있듯 여러 장르 중 하나인 록 또한 잠깐 스쳐지나가는 유행의 일부로서 듣고 치울 장르일 것이다.) 난 정서로서, 삶의 태도로서 록음악을 좋아한다. 그러나 404가 단순히 거칠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 거친 사운드 뒤에는 달콤함이.. 2024. 8. 5.
Beato, "음악이 형편없어지는 이유" 릭 비아토는 유튜브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국의 대중음악 논평가다. 지난 세기 록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한다. 비틀즈 시대부터 시작해서 1990년대 얼트록까지 다양하게 다룬다. 재즈나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도 적지 않게 한다. 이 사람의 음악 평론은 청취자 입장에서가 아니라 음악 생산자 입장에서 진행된다. 그 자신이 음악을 만들고 연주할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론적인 부분이나 테크놀로지적인 부분 및 음악 산업의 생리까지 아주 다양한 부분에 대해 지식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서 실용음악 관련 강의도 하는 것 같다. 아래 영상은 이 사람이 20세기적 인물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목할 만한 지점은 비아토의 경우 21세기 주류 대중음악에 대해 강경하게 '노'라고 답한다는 데 있다. 쉽.. 2024. 7. 27.
유튜브는 언론이 아니라 생태계다 아래 영상은 기성언론이 아니라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접하는 근래의 경향을 두고 문제점은 없는지, 기성언론은 무엇을 잘못했길래 신뢰를 잃은 것인지 등을 논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이런 의제를 토론한다는 게 내 입장에서는 의아하게 느껴진다. 기성언론은 사라져가는 공룡과 같은 존재다. 멸종해가는 종을 놓고 '어떻게 살릴 방법은 없는가?'라는 식의 관점에서 의제를 잡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시 말해, 멸종해가는 종의 입장을 전달하는 사람을 끼워넣는 설정 자체가 이 프로그램이 결국은 레거시 미디어가 기획한 것임을 보여준다. 프로그램 진행자 손석희가 레거시 미디어의 편에 선 마지막 권위자라는 사실이 결정적일 것이다. 사실 보다 생산적인 의제 설정은 '유튜브는 무엇이며, 우리는 유튜브가 행.. 2024. 7. 21.
Keith Jarrett, The Köln Concert Part 1 처음 이 앨범을 들었을 때는 앨범이 발매된지 2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후 24년이 더 흘렀다. 발매된지 49년, 사실상 반 세기가 다 됐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하지 않고 남는 사실은 그때나 지금이나 훌륭하다는 사실이다. 혹시 누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어떤 삶을 사는 것이 바람직하냐고 묻는다면 난 그 어떤 윤리학 서적도 거론하지 않을 것이다. 내 답변은 아래 음악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일 것이기 때문이다. --The Köln Concert (1975) 2024. 7. 16.
Mobile Suit Gundam Thunderbolt OST 2 아래 만화는 본 적 없다. 볼 예정도 아니다. 다만 음악이 들을 만해서 가져왔다. 20세기 아방가르드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멋지다고 여길 것이다. 참고로 36분경 앨범이 중반을 넘어가면 재즈가 아닌 다른 장르로 넘어간다. 심지어는 '가와이 가와이'라 하는 우스꽝스러운 보컬까지 나온다. 그쯤되면 그냥 끄면 된다.--Mobile Suit Gundam Thunderbolt OST 2 (2017) 2024. 7. 1.
한국에서 하는 강의 영어는 한국인의 영혼을 울리지 못한다. 영어로 강의를 할 때면 학생들의 마음이 움직여지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 한국의 대학은 영어 강의를 금과옥조나 되는 것처럼 여기지만 실은 빛 좋은 개살구에 가깝다. 내가 느끼기에 학생들은 영어 강의가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아 듣고 있지 않거나 혹은 능력이 되지 않아 듣고 있지 못하거나 둘 중 하나다. 나도 피곤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한다. 물론 요점은 다 전달한다. 그러나 오히려 요점에서 벗어나는 말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 문제다. 언어란 것은 요점에서 벗어나야 흥미롭고 재미있는 법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이란 것은 본질에 닿고자 하나 실패하며 계속해서 우여곡절 속에 머무는 데 그 핵심이 있다. 인문학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실은 수학도 마찬가지다. 대수학은 기.. 2024. 6. 24.
Helado Negro, "Colores Del Mar" 사실 종종 난 수업 시작 전 강의실에 음악을 틀어놓고 싶다고 느낀다.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음악이 강의실에 퍼져나가는 건 마치 탈옥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강의실은 종종 감옥과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감옥을 전혀 다른 곳으로 바꾸는 것은 내 강의이고 그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다. 나의 말이 그들의 마음에 닿아서 그들을 움직이게 될 때 비로소 강의실은 감옥이 아니게 된다. 오직 그때에만 시체들에 영혼이 불어넣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언어가 영감이 되는 순간이 없다면 강의실은 끔찍한 곳일 뿐이다.) 음악은 주어진 현실을 변혁하는 혁명적 순간과 같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고른 음악이 호응을 얻지 못한다면 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바꾸는 힘은 오직 그 힘을 믿는 .. 2024.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