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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의 1990년대 뉴진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내 관심을 끄는 것은 "디토"라는 곡이다.* 일반인이 엉성하게 이 곡의 안무를 따라하는 쇼츠를 보게 된 후 알게 됐다. 10대 후반 20대 초반이 쇼츠에서 따라하는 안무는 해당 곡이 '유행'이라는 뜻이다. 난 동시대 대중음악에 더 이상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내 신체가 즉각적으로 곡에 반응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내 감수성이 갑자기 젊어졌기 때문일 수 없다. 반대의 경우를 생각해보는 편이 낫다. 곡이 옛 정서에 기반하고 있을 가능성 말이다. 뉴진스라는 친구들의 곡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검색을 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친숙하게도 1990년대에서 2000년대를 연상케 하는 장면으로 점철된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여러 영상이 있었다. 뮤직비디오 두 편, 퍼포.. 2023. 1. 25.
Sam Prekop, "Spelling" 일반적으로 음악은 시간의 형식을 이룬다. 멜로디로 이루어진 주제와 시중종으로 이루어진 주제의 흐름이 시간의 흐름을 인지 가능한 형태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패턴은 제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변화 및 발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시간은 직선적이다. 클래식 음악을 기준으로 말해보자면 19세기에 낭만주의의 형태로 완성에 이르게 되는 서양 음악은 진보하는 세계관의 산물이다. 이는 19세기 서양 문학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소설, 특히 빌둥스로만을 생각해보라. 빌둥스로만은 주인공의 내면이 객관 세계와 부딛치며 만들어내는 시간의 구조를 그 자신의 내러티브로서 제시한다. 여기서 주인공의 내면은 변화 및 발전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바로 이 정신 세계의 변화가 E. M. 포스터가 말하는 '입체적 인물'(th.. 2023. 1. 11.
BBS, "Mouth Guards of the Apocalypse" 난 캐나다라는 나라를 브로큰 소셜 씬이라는 밴드를 통해 기억한다. (동일한 방식으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BTS를 통해 기억할 것이다.) 사실 난 캐나다라는 나라를 가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10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곳이긴 하다. 그러나 갈 계획도 없고, 별로 가고 싶지도 않다. 캐나다 기업의 물건을 써본 기억도 없다. (다시 생각해보니 하나 있긴 하다. 캐나다구스. 코요테 털인가 뭔가가 얼굴에 닿는 느낌이 좋은 물건이다. 영하 25도까지 떨어지는 미국의 겨울을 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얼마 전에도 낮 최고 기온이 영하 20도에 머무는 추위가 한번 휩쓸고 지나갔더랬다. 물론 난 코요테 털을 얼굴에 두르고 밖에 나가지 않았다. 구스니 코요테니 하는 것들의 도움을 받는 것.. 2023. 1. 4.
Dinah Washington x Max Richter, "This Bitter Earth" 다이너 워싱턴은 1963년에 죽었다. 그러나 2010년 막스 리히터의 "On the Nature of Daylight"에 목소리가 덧붙여지며 다시 살아났다. 마틴 스콜시지 감독의 [셔터 아일랜드]에 사용된 것으로 알려진 곡이다. [셔터 아일랜드]는 21세기 초반에 나온 작품이지만 19세기 초 낭만주의의 기운에 휩싸여있다. 영화 내에서 묘사되는 어느것 하나도 중립적 의미에서 객관적이라 할 수 있는 게 없다. 카메라의 시선이 비추는 사물 하나하나, 인물 하나하나가 낭만적 주관의 심연에 맞닿아있다. 고립된 섬 내 정신병동, 그 와중에 폭풍이 몰려와 선편과 통신마저 끊기게 된 곳, 그 안의 자연과 인간 모두가, 한때 데카르트와 뉴턴에 의해 수학화되었던, 보편적 중력의 법칙에 갇혔던 것들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제.. 2022. 12. 28.
베토벤, 셰익스피어, 미적 형식 음악의 진가를 알고 싶다면 현실의 너절함에 노출된 후 음악을 들어야한다. 미디어의 자극적인 언어를 통해 들려오는 세상사,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결여된 저널리즘적 글쓰기, 제목 장사 기사들, 오로지 기업의 입장에서 쓰여진 광고와 다를 바 없는 경제지 기사들,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에 의해 편집된 여행사 및 항공사 실적을 올리기 위해 쓰여진 여행 관련 기사들, '웨이팅'이 폭발한다는, 혹은 '개미지옥' 식당에 관한 선정적 포스트들, 항상 이미 당신만큼은 놓치고 있다는 엄청난 맛의 음식을 자랑하는 식당, 혹은 다른 곳에는 없고 오직 여기에만 있다는 음식에 관한 포스트들, 이런 것들을 대하고 있으면 세상은 흥분 상태에 있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 같이 보인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먼지 하나조차, .. 2022. 12. 21.
발라드와 록, 그리고 이승환 이승환의 "천일동안"은 '멜로드라마적'인 감수성을 지닌 곡이다. 가혹하게 말하면 '질질짜는' 느낌의 가사를 지니고 있다. 창법도 깨나 감상적이다. 소위 '착한 사랑'으로 대변되는 1990년대 초반 '발라드' 감수성의 정점을 보여준다. (또 다른 정점은 신승훈의 "그후로 오랬동안"이다.) 1995년 당시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천일동안" 같은 곡을 이해하려면 적어도 20대는 되어야하지 않던가? 10대가 좋아할 만한 곡도, 이해할 수 있는 곡도 아니었다. 물론 지금 입장에서는 오히려 생각보다 괜찮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는 지금보니 곡의 가사가 좋다는 뜻이 아니다. 아래 곡의 가사에서 주목할 지점은 단 한군데다. 마지막 구절 "다음 세상에서라도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아요"가 없다면 이 곡의 가.. 2022. 12. 14.
앨런 튜링, 튜링머신, 인공지능 앨런 튜링(Alan Turing)을 공부하다보면 컴퓨터 공학이라는 것이 얼마나 기계적이며 노가다와 같은 과정을 요구하는지 추정해볼 수 있다. 물론 앨런 튜링은 컴퓨터 공학자가 아니라 수학자였다. 그러나 알다시피 컴퓨터 공학은 20세기 초중반 수학으로부터 파생되어나왔다. 수학자들의 작업이 없었다면 컴퓨터 공학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수학자 알론조 처치(Alonzo Church)의 제자였던 스테픈 클레이니(Stephen Kleene)의 작업을 보면 그 파생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그가 학과장으로 있었던 대학(University of Wisconsin-Madison)의 학과는 최초 '수 분석과'(the Department of Numerical Analysis)라 불렸다. 해당 과가.. 2022. 11. 16.
배비지: 컴퓨터의 아버지 혹은 철 없는 아이 분석학회(the Analytical Society)의 설립자로 알려진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라는 19세기 영국의 수학자에 대해 좀 이야기해보자. 요점은 당시 수학자가 단순히 수학만 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보는 데 있다. 뉴턴 이후 수학이 '물리학의 언어'가 되었다는 점을 기억하라. 수학으로 물리 현상을 이해하게 되면 물리적 현실에 개입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배비지가 발명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이 이와 조금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 그는 애디슨처럼 발명품을 많이 만들었다. 그의 발명품 중에는 기차 앞으로 달려드는 소를 잡기 위한 장치도 있었다. 이는 그가 순수수학만 한 것이 아니라 응용 수학자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물론 배비지의 분석학회는 수학의 영역에서 영국의 전통인 뉴턴의 미분법을 버리고.. 2022. 11. 9.
도올, 안병무, 민중신학, 유학, 그리고 자연과학 도올은 기독교 관련 강연을 할 때 가장 빛이 난다. 이는 그의 철학적 궤적이 서구 기독교 신학에서 시작해서 자신의 한국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방향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거꾸로 말하면 그의 동양철학 독해는 의외로 순수하게 동양적이지 않다. 그가 동양철학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알게 모르게 서양철학에 대한 자의식이 전제되어있다. 그가 지닌 서양철학에 대한 자의식은, 아래 강연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 안병무나 정약용이 했던 고민과 궤를 같이 한다. 어째서 그가 기회만 되면 강연 중에 '서양철학은 구라'라고 끊임없이 '까는지' 생각해보라. 이는 조선시대 기독교와 조우한 유학의 운명이 그러했듯 정약용 시대에 이미 시작된 자의식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조선에서 순수한 의미의 동양철학을 하는 것이 이미 18.. 2022. 10.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