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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에 필요한> 혹은 이별에 필요한

by spiral 2025. 6. 7.

한지원 감독의 2025년작 <이 별에 필요한>에 활기를 부여하는 것은 플롯이 아니다. 밝혀질 비밀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반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남녀간 연애 이야기다. 근래 여기저기서 유행처럼 사용하는 요소인 동성애 인물 코드도 없다. 거친 여자 주인공의 힙함이 느껴지는 작품도 아니다. <대도시의 사랑법>을 생각해보라. <이 별에 필요한>은 고전적인 남녀간 연애물이다. 그렇다고 딱히 독특한 혹은 문제적 인물들이 벌이는 연애물도 아니다. 일견 보면 그냥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격의 인물들이다. 예컨대, 제이는 레트로 전자기기 수리공으로 일하는 청년이다. 주목할 만한 직업은 아니다. 여자친구를 대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스위트'하다. 모난 구석이라고는 없는 어딘지 비현실적으로 '착한 남자' 같은 모습이다. 연애의 모범 답안 같은 비현실성을 상연한다.

물론 제이에게 인간적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사연이 있다. 그의 진짜 꿈은 음악가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밴드 내에서 보컬을 맡고 있는 디아와 음악적 견해차를 겪고 밴드에서 나온 상태다. 그가 작곡한 곡은 디아에 의해 자의적으로 편집되어 불리워졌다. 제이는 그러한 곡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의 음악적 여정도 여기서 멈춰서게 된다. 제이가 떠난 밴드는 (상업적 관점에서) 편집된 제이의 곡을 가지고 나름 성공적으로 활동해가고 있다. 반면 그의 목소리로 녹음된 곡은 미완성 상태로 남게 된다.  말하자면, 그에겐 마무리해야할 혹은 달성해야 할 꿈이 있다. 여기서 그가 다시 무대 위에 올라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 연애 감정이 최고조로 오르는 일로 이어질 것임을 예견해볼 수 있다. 거꾸로 말하면 디아는 제이의 연인이 될 수 없다. 그의 목소리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왜 마음에 안 들어? 듣다 보니까 좀 졸린 거 같아서 라이브 하기 좋게 살짝 바꾼 건데." 디아에게 제이는 재능은 있지만 '졸린' 사람일 뿐이다. 그녀에게 제이의 '착한 남자'로서의 면모는 '졸리다.'

제이가 자신을 되찾고 다시 무대에서 노래하게 되는 것은 난영의 사랑을 통해서다. 그러나 그 사랑은 멀리 화성에 있다. 난영은 화성으로 떠난 후고, 거기서 사고를 당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여기서 미적인 것의 한 특징을 보게 된다. 아름다움은 물리적이지 않다. 만져질 수 없는 우주적 거리 속에서만 구현되는 비물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름다움이다. '이 별에 필요한' 것은 사랑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랑이 구현되기 위해서는 '이별이 필요'하기도 하다. 제이의 목소리에 형체를 부여하는 것은 난영의 유서다. 죽음을 상정하고 찍은 마지막 비디오에서 난영이 제이에게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단 하나다: "후회 없이 너답게 네 목소리 그대로 아름답게 살아줘." 그후 제이는 무대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제이의 음악, 그의 목소리가 완성되는 것은 난영과 나누던 물리적 사랑이 죽음과 함께 미학화될 때다. 그의 음악과 목소리를 그 자체로 (그 어떤 편집의 과정도 없이) 사랑하는 난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잊지 마, 우주 어딘가에 항상 너를 응원하는 사람이 하나 있다는 거."

난영으로 가보자. <이 별에 필요한>은 사실 난영의 이야기다. 작품의 플롯은 난영의 욕망을 따라 흘러간다. 언뜻 난영은 그냥 평범한 인물 같다. 물론 나사에서 일하는 그녀는 방송에도 출현하는 등 전국민적 관심의 대상이다. 제이에 비하면 난영은 특별한 인물이다. 그러나 난영이라는 인물 자체는 평범해보인다. 과학자로서의 삶이란 것이 인간적으로는 지극히 평이한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이 별에 필요한>은 이른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일으키는 재앙 혹은 재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난영은 그저 평범한 연구원이다. '사이언스 픽션'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사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괴물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난영에게도 숨겨진 면모가 있다. 한 예로, 작품은 화성에서 연구활동을 하던 과학자 엄마가 사고로 죽게 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이 장면은 난영의 두려움을 투사하고 있다. 난영의 일생은 잃어버린 엄마를 다시 한번 만나고자 하는 난영의 욕망에 의해 추동된다. 그녀는 과학자가 되고 결국 연구 목적에서 화성에 가게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의 뒤에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 너무 어린 시절 기억이라 완성된 자아를 지닌 성인이 지닌 내면적 그리움이라 말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원형적 그리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원형적 노스텔지어라 불러볼 만하다. 의미론적 세계 내에 얻어지는 분명히 인식된 특정 대상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원초적 결핍 혹은 원초적 충동이 더 중요한 동기다. 인생은 잃어버린 것이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추동한다. 그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한 과정으로서 삶의 플롯이 들어서게 된다. 난영은 마지막 영상에서 제이를 언급하며 이렇게 말한다: "제이, 참 신기한 건 죽도록 메달려 온 길 대신 얼떨결에 든 샛길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다는 거야. 제이, 네가 나한테 그래. 넌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아름다운 길로 나를 인도해 줬거든." 난영에게 공식적 삶의 플롯은 과학자가 되는 것, 그리고 과학자로서 화성에 가서 인류의 지적 성장에 기여하는 것이다. 전체 인류의 성장을 대변하는 대의가 난영이 "죽도록 메달려 온 길"이다. 그러나 "죽도록 메달려 온 길"을 추동한 것은 그녀 내면 깊은 곳에 있었던 원형적 그리움 혹은 빈 자리다. 그리고 그 빈곳을 최종적으로 채워주는 것은 "얼떨결에 든 샛길" 혹은 "오아시스"다. 그게 난영이 원초적 빈 자리를 제이라는 아름다움으로 채우는 방식이다. 

몇 가지만 더 언급해보자. 자극적인 플롯이나 자극적인 인물이 없는 <이 별에 필요한>이 의지하는 지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작화다. 서울을 이 정도로 매력적으로 그려놓은 작품은 보기 드물다. 내가 기억하는 서울 구도심의 20세기 모습이 2051년 근미래의 모습와 뒤섞이며 추억을 넘어 유토피아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세운상가의 모습이 대표적이다. 30-40년 전 동네에서 봤을 법한 '전파사'가 근미래 테크놀로지의 외피를 얻어 마치 '그리운 미래'와 같은 느낌을 준다. (외국인들이 보면 서울에 대한 환상을 품기 좋은 모습이라 할 만하다. 한국 관광산업에 한 몫을 하지 싶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요소는 성우다. 김태리의 목소리는 이 영화의 영혼과 같다. 영어 더빙판을 들어보면 김태리의 목소리가 이 작품의 생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어판에서 난영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영어판을 듣고 있으면 작품 자체에 대한 관심도가 확떨어진다. 제이의 목소리는 한국판이나 영어판이나 비슷하다. 제이의 경우도 한국판이 조금 더 낫다. 그러나 많이 잡아서 10% 정도 부족한 느낌이다. (예외가 있긴 하다. 제이가 부르는 "Bon Voyage" 데모 버전은 영어판 성우의 목소리가 더 매력적이다.) 그러나 난영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영어판의 매력도는 떨어진다. 난영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 영어판 더빙 감독이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한 모습이다. 난영의 매력은 외모가 아니라 목소리와 그녀가 사용하는 특유의 2030풍 한국어 스타일에 있다. 김태리는 전문 성우가 아니다. 그러나 이 점이 아주 중요한 매력 요소가 된다. 작품을 보면 나머지 인물은 전문 성우가 맡았다. 많은 경우 완벽하지만 가공된 애니 캐릭터의 느낌이 난다. (디아의 목소리는 예외다. 시니컬한 그녀의 목소리는 만화적이지 않다. 꿈과 희망보다는 절망을 체현하는 목소리다: "어차피 부르지도 못하고 빛도 못 보는 노래 누구라도 불러주면 좋은 거잖아." 디아(Dia)는 유토피아적 작품인 <이 별에 필요한>에 삽입된 거의 유일하게 악마적인(diabolical) 인물이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가공되지 않은 실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김태리의 목소리다. 만화의 한복판에 피와 살로 이루어진 불완전한 그러나 그렇기에 살아있는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만화의 중심에서 실사를 보는 듯한 모습이다. 여러가지로 목소리가 중요한 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작품에 삽입된 곡인 "Life Goes On"이 영화의 매력을 그대로 포착한다는 점을 하나 더 언급하고 싶다. 김태리의 성실한 아마추어 보컬이 곡의 영혼이 되고 있다. 듣고 있으면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신체를 보는 것 같다. 몸의 세포가 진동하며 내는 소리 자체를 듣는 것 같다. '이 별에 필요한 것'은 숨김 없는 신체가 만들어내는 목소리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아주 가까이에 있지만 동시에 행성들을 나누는 거리 속에 있기도 하다. 이 먼 가까움이 연애 감정이 뜻하는 바다. 작품 속 김태리의 목소리는 그 자체로 여자친구의 목소리다. 누구나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닌 내밀한 목소리, 남자친구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 그러나 남자친구조차 언제나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닌 인생의 한 순간에만 나타났다 사라지는 목소리. '이 별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사랑스럽도록 성실한 삶의 목소리다. 마치 걸음을 걷는 모습 같다. 어떤 면에서는 대강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걷는 일이다. 건들건들 걷기도 하고, 술에 취해 걷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곡의 발걸음은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을 정성스럽게 떼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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