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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ss, [PrincEss] 20대에는 늦은 시간에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걸 느꼈다. 새벽에 쓴 글을 아침에 일어나서 읽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런 현상이 없어졌다. 생각이 단련되어서 사람이 좀 차분해진 건가 싶었다. 그런 면도 있을리라 본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새벽에 감수성이 더 이상 예민해지지 않는 건 멜라토닌의 양이 줄어서 생기는 일이다. 멜라토닌은 10대 시절 정점을 찍고 점점 하향 곡선을 그린다. 40대만 되어도 최고치를 찍을 때의 1/10 수준으로 떨어진다. 새벽에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건 잘 시간에 멜라토닌 분비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럴 땐 자야 마땅하다. 그러나 자지 않고 버티면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낮이라도 해도 비가 오거나 해.. 2024. 3. 27.
죠지, 방송반 라이브 죠지의 음악을 들은지 벌써 5년이 됐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무튼, 죠지의 곡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공연 영상이다. 작년에 찍은 것 같다. -- 2024. 3. 16.
Helado Negro, "I Just Want to Wake Up with You" 마음 깊은 곳에는 우울이 있다. 누가 인간을 '미래에 중독된 종'이라 했던가. 미래를 투사하는 일은 희망과 동시에 우울을 낳는다. 우울하다는 것은 당신이 현재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지적인 동물이라는 뜻과 같다. 그것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특권이자 동시에 두려움이다. 현재라 불리는 물리적 현실에 묶이는 일은 끔찍한 일이다. 그건 우울이 두려워서 영혼을 소거하겠다는 뜻과 같다. 기억을 지우고, 미래를 거두는 일은 생명 없는 물질이 되겠다는 뜻이다. 우울은 소거될 수 없다. 다만 다른 형태로 변환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우울을 다루는 한 가지 방법은 음악을 듣는 것이다. 음악은 항우울제와 같다.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음악은 실제로 생리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소리라는 물리적 신호로 뇌의 흐름을.. 2024. 3. 8.
미야자키 하야오와 [귀를 기울이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것이 아니면서 그의 세계관을 완벽하게 구현해낸 유일한 작품으로 콘도 요시후미의 1995년작 [귀를 기울이면]을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을 보고 미야자키 하야오가 얼마나 만족스러워했을지 생각해보는 것은 재밌는 일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각본과 콘티, 그리고 프로듀서까지 맡았기 때문에 미야자키의 세계관이 강하게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누구나가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것 같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 있어 콘도 요시후미가 미야자키의 세계관을 완벽히 내면화한 사람이라고 말해볼 수 있다. 미야자키 세계관의 핵심은 문학성에 있다. 그의 작품은 많은 경우 주인공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루어져있다. 이는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이 지닌 중요한 .. 2024. 2. 27.
신유물론적 소멸 알렉스 갈랜드 감독의 2018년작 영화 [소멸](Annihilation)은 인간이 비인간이 되는 과정을 신유물론적으로 보여준다. 아주 옛날식으로 말하면 범신론의 세계다.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신들의 세계, 그러나 초월적 신이 아니라 물질 자체가 다자적 신성인 세계 말이다. 인간과 식물과 동물이 하나된다는 건 그런 이야기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세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등장인물이 동물이면서 식물이고 동시에 인간이고 신이던가. 똑같은 논리가 영화 [소멸]에서 발견된다.* 물론 차이도 있다. [소멸]이 그려내는 범신론적 세계는 신화적 클리세가 아니라 21세기 현대미술 작품 판본으로 그려져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멸]이 묘사하는 '쉬머'(the Shimmer) 속 세계 장면은 하나하나가 현대 미술작품 같다.**.. 2024. 2. 20.
말이 탄산음료처럼 보글보글 작품의 영어 제목은 [말이 탄산음료처럼 보글거린다](Words Bubble Up Like Soda Pop)다. 일본 작품이고, 감독은 이시구로 쿄헤이다. 한국어로는 [사이다처럼 말이 톡톡 솟아올라]라고 되어있다. 일본어 제목의 직역인 것 같다. 몇 가지가 눈에 띈다. 일단 색감이 소다수 같다. 인스타그램에서 볼 법한 10대 취향 그림체를 가지고 애니를 만들어놓은 모습이다. 둘째로, 음악이 소다수 같다. 달콤하면서 상큼하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내러티브는 어떤까? 작품이 시작되고 상당 시간 동안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배경이 제시되고 인물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들이 무슨 일을 벌일 것인지 짐작할 수 없다. 장난기 어린 모습의 한 아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한참을 달리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2024. 2. 13.
Astrid Sonne, "Give My All" 최근 톰 요크(Thom Yorke)가 눈의 벽(Wall of Eyes)이라는 이름의 밴드로 앨범을 하나 냈다. 문제는 그의 목소리다. 최근 10년 사이 난 그의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모든 음악적 매력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라디오헤드든 월오브아이즈이든 동일하다. 모기 소리를 듣는 것 같이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톰에게는 문제가 없다. 내 뇌와 신경계가 그의 목소리를 해독하는 방식이 문제다. 그러나 내 신경계가 그의 목소리를 그렇게 받아들이는 이상 내 신경계와 그의 목소리는 공존할 수 없다. 라디오헤드의 경우를 예로 들면, 사실 1990년대 데뷔한 밴드 중에서 드물게 아직까지도 음악적 참신성을 유지하는 밴드라고 여긴다. 그러나 톰 요크의 목소리가 더해지면 많은 경우 듣고 싶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내게.. 2024. 1. 31.
Snarky Puppy, "Lingus" 관악기 소리를 크게 좋아하지 않지만 들을 만하다. 후반부 드럼의 도움만 받은 채 진행되는 키보드의 솔로 플레이는 확실히 인상적이다. -- We Like It Here (2014) 2024. 1. 23.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들 아래 영상은 마이클 무어 감독의 2002년작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가져온 것이다. 당시는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총기 사건의 원인이 무엇이냐를 두고 시끄러웠던 때다.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던 학생 두명이 총기를 들고 학교에 들어와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를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대단히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미국이 총기 사건으로 유명하다지만 그 이전까지 같은 미성년자 학생이 학교에서 동료 학생 및 교사를 대상으로 이 정도 규모로 사람을 죽인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에 의한 학교 내 사건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무엇이 이런 일을 일으킨 원인인지를 두고 말이 많았다. 범인들이 평소 마릴린 맨슨과 같은 폭력적 록음악을 들었고, 비슷하게 폭력적인 [사우스파크]라는 만화를 보.. 2024.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