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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아름다움과 비수학적 추함 내게 수학은 애증의 대상이다. 한 예로, 난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을 이해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게 수학이 무엇인지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 또한 만나본 적이 없었다. 그 시절 수학 교사들은 그저 튜링 머신처럼 문제풀이 기계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수학을 다룬 것이 아니라 수학 내부에서 일어나는 수의 기계적 작동 방식을 일부 시연해서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난 그들이 수학을 이해한 사람이었을 것이라 믿지 않는다. 그들이 진정 수학을 이해했다면 수학을 그토록 기계처럼 다루지 않았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난 그들로부터 수학에 대한 그 어떤 사랑도 열정도 느껴본 적이 없다. 내가 대학 진학 후, 수학적 객관성의 세계로부터 절연된 채, 주관성이라 불리는 인문학적-철학적 심연으로 뛰어들었던 바탕에는.. 2021. 4. 6.
바흐, 뉴에이지, 우주의 중간에서 아마도 바흐(J. S. Bach)가 만든 음악의 정반대에 뉴에이지 음악이 있지 싶다. 뉴에이지 음악은, 수학적-구조적이라기보다, 연속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 전통의 시발점에는 신플라톤주의(Neoplatonism)가 있다. 신플라톤주의의 요점은 프쉬케(psychē)와 소마(sōma), 즉, 정신과 몸 사이의 단절을 상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달리 말하면, 신플라톤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주관과 대비되는 의미의 객관적 음악 구조물이란 것은 애당초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이 경우 수학적 구조는 불분명한 경계를 지닌 신체에 직접 연결된다. 그 결과, 예컨대, 아래 하루카 나카무라(Haruka Nakamura)의 음악에서 보듯, 음들의 연결은 딱히 분명한 시작점과 종결점을 지닌 형태로 발전되지 않는다. 시중.. 2021. 3. 9.
용산기지와 '미제' 대중문화 아래 다큐를 보면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환상적 이미지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체감하여 이해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에 퍼진 '미국물' 혹은 '미국풍'의 진원지는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거대한 미국인들의 섬 용산 미군기지였다. 미군방송인 AFKN을 포함하여 미군기지로부터 흘러나오는 '미제' 물건들 및 '미제' 음악 및 '미제' 문화들을 생각해보라. 부대찌개와 같은 미군과 관련된 한국식 문화를 포함해서 말이다. 바로 미군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미국을 '별나라'와 같은 곳으로 여기기 만든 원동력이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 한국의 20세기가 나아간 방향은 별세계 미군기지 내에 특권적으로 한정되어있었던 주거 및 삶의 방식, 그에 결부된 문화 등을 보다 많은 한국인들이 미군.. 2021. 3. 6.
록 음악에서 BTS로, 혹은, 프론티어 정신에서 정신 건강으로 스매싱 펌킨스의 1995년작 [멜론콜리](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라는 앨범을 듣고 있으면, 백인 남성이 이끄는 미국 대중문화의 마지막 전성기는 1990년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멜론콜리]의 매력은 앨범 특유의 남성적 포부로부터 기인한다. 2시간이 넘는 길이를 지닌 더블 앨범이라는 사실을 보라. 이미 길이에 있어서 역사에 남을 '대작'을 만들고 말겠다는 패기가 느껴진다. 내용면에서는 해당 앨범이 록 음악의 폭력성을 최대치로 담아내는 동시에 정반대의 서정성마저도 그 어느 팝음악 앨범보다도 더 섬세하게 담아내고자 한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처음 세 곡만 들어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즉, 앨범과 동일한 제목을 하고 있는 첫 번째 건반 연.. 2021. 1. 25.
[슬기로운 의사생활] 혹은 "넌 따뜻해" 아래 곡은 2020년에 발표된 신곡이지만, 들을 때면, 새로움이 아니라, 지나간 추억이 생각난다. 곡의 구성과 진행 그리고 정서가 전형적으로 1990년대적이라 그렇다. 그럴 때면 마치 내가 '오래된 것'(the old)이라도 된 듯이 느낀다. 사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의 구성 자체가 그렇다. 마흔의 나이에 이른, 낡아빠진, 5명의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해당 드라마는 오래된 것에 관한 이야기이지 않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마흔의 나이를 먹은, 중년의 초입에 이른,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기 시작한 인물들을 닳을대로 닳은 사회 속에서 구태의연하게 승진이나 금품수수나 권력을 둘러싼 암투 등에 빠지지 않은 채 살아가도록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해당 질문을 중심으로 드라마의 .. 2020. 10. 21.
BTS, 케이팝, 미래의 남성과 욕망하는 여성, 그리고 새로운 보수 BTS에 대해 이야기해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BTS가 지금까지 내 관심사가 된 적이 없으며 딱히 그러할 이유가 없다고 여겨왔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는 'BTS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이 음악 비평의 대상으로서 그들에 대해 내가 느끼는 어떤 거리감과 관련이 있다는 말과 같다. BTS가 내 주된 관심사가 아닌 이유는 단순하다. 주류 음악을 음악 자체로서 논하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 아니라 여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제는 한국인 입장에서 볼 때 BTS의 음악은 정확히 '주류 음악'에 속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인이 보기에 지금 BTS는, 손흥민 등과 더불어, '해외에서 국위를 선양'하고 있는 '한국의 기특한 젊은이'이지 않던가? 사실 BTS는 단순한 음악가.. 2020. 10. 7.
정동과 이데올로기: 정수민의 [네오리버럴리즘] 다른 여타의 사회-문화적 담론에 비할 때 음악이 누리는 특권이 있다면 그것은 음악은 언어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음악은 언어의 매개 없이 청자의 신체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시각도 언어를 건너뛸 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사물에는 명시적으로 이름이 쓰여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무엇인가를 볼 때 해당 사물의 이름을 떠올리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예컨대, 도시에서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것들이 인간이 부여한 형상에 따라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건축물을 하나 보면, 그것이 학교인지, 주거용인지, 가게인지, 교회인지 기타등등인지 구분을 할 수 있다. 명시적으로 '명찰'이 달려있지 않다뿐이지 무엇인가를 볼 때 사실.. 2020. 9. 23.
노이즈가든, 윤병주, 봉준호 헤비한 록 음악이 듣고 싶을 때 첫번째로 떠올리게 되는 밴드는, 그 어떤 쟁쟁한 영미권의 록밴드가 아닌, 한국의 노이즈가든(noizegarden)이다. 이미 오래전에 해체되고 지금은 없는 밴드다. 1990년대적 이야기다. 이는 BTS가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을 달성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 된 시대의, 당당함으로 무장한, 한국적 감수성을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1990년대에 한국의 일개 록밴드가 만들어낸 음악이 그 모든 쟁쟁한 영미권의 록밴드의 음반을 따돌리고 헤비 록사운드의 정석으로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은 말그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의 도약은 여기 이 불가능성 속에서만 가능하다: 봉준호 감독이 2020년에 이룬 것과 동일한 일.. 2020. 7. 19.
인디 음악, 존속의 형식, 윤지영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인디 음악에 마음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404나 쾅프로그램 정도가 관심을 두고 들은 마지막 한국 인디 음악가였지 싶다. 스치며 들을 때는 전반적으로 수준급의 팝 성향 인디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옛날보다 많이 늘었다는 인상을 받았더랬다. 우효란 음악가의 "민들레"가 한 예다. 잘 만들어진 곡이다. 전반적으로 그의 곡들은 듣기 좋다. 대체로 달콤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음악 안에서 마음이 머물 곳을 발견하지는 못한다는 데 있다. 근본적으로 나와 다른 세상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가끔 옆에서 바라볼 수는 있겠지만 마음이 통하는 친구가 되지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근래 들려온 팝 성향의 곡에 대한 내 전반적 인상이 그러했다. 팬시한 식당에 가서 팬시한 음식을 맛있.. 2020. 6.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