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영어 차용 방식은 종종 품사를 구분하지 않는 특성을 보인다. 최근의 예로는 '피지컬'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의 체구가 좋을 때 흔히 '피지컬이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내가 듣기에 이상한 말이다. 피지컬(physical)이라는 말 자체는 '신체의' 혹은 '물리적인'이라는 형용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체구'를 뜻하는 말은 따로 있다. 피지크(physique)가 그것이다. 사실 영어 형용사를 명사로 차용 방식이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추측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피지컬'의 반대말로 의도된 '멘탈'(mental)이라는 말이 동일하게 형용사를 명사로 차용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멘탈이 강하다/약하다'라는 말에서 '멘탈'은 '정신'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알다시피 영어에서 정신을 뜻하는 명사형은 '멘탈리티'(mentality)다. 물론, 한국인들 사이에서, '피지크'와 달리, '멘탈리티'라는 말은 '멘탈'과 더불어 사용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나조차 '멘탈이 강하다'라는 말을 들을 때는 '피지컬이 좋다'라는 말을 들을 때와 달리 어색한 느낌을 받지 않는다는 데 있다. '멘탈'이란 말은 어려서부터 하도 접해서 그저 한국어의 하나로 인지하게 된 반면, '피지컬'은 비교적 최근에 차용된 말인 이유로 들으면 '이런 괴상한 말이 있나'라는 느낌을 받는다. 명사를 형용사형으로 차용한 경우를 하나 더 들자면, '그랜드 오픈'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전면 개장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러나 이 또한 일종의 형용사형일 뿐이다. 즉, '그랜드 오픈' (grand open)의 의미는, 사실 문법적으로 부적절한 표현이지만 구태여 번역을 해보자면, '전면적으로 문을 연'이라는 뜻일 뿐이다. '전면 개장'이라는 뜻의 명사형 표현은 '그랜드 오프닝'(grand opening)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아마, 영어와 한국어 사이에 어원이 전혀 공유가 되지 않다 보니 명사든 형용사든 동사든 대략적인 의미 이상의 것이 와닿지 않는다는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종종 새로운 서구의 단어를 익히려 할 때 단어의 첫 음절은 기억이 나도 후반부 음절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랜드 오프닝'이라는 말을 듣고 난 후 머릿속에 대략적으로 '그랜드 오픈'이라는 소리까지만 기억이 나는 식이다. 한국인이 서구의 언어를 배우는 일은 하나부터 열까지 의식적으로 챙기지 않으면 안되는 고생스러운 일이란 뜻이다. 그래서 결론은, 케미컬 브라더스의 음악은 늘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춤추기에 좋은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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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rkness that you Fea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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