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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Rock and Roll Dance"

by spiral 2021. 6. 8.

초등학교 시절 추억이 깃든 곡이다. 내게 이 곡은 소풍날 아이와 워크맨으로 친구와 이어폰을 한쪽씩 나누어 듣던 화창한 날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아이와'라 하니 이상한 느낌이 든다. 소니에 인수되었다가 한번 사라졌던 경력이 있는 제조사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일본의 군소 업체가 소니로부터 상표권을 사들여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일본 물건이 전반적으로 별볼일 없어진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아이와 워크맨은 원조 소니 워크맨과 디자인과 성능면에서 '쌍벽'을 이룰 정도였다. 거대한(?) LCD 화면이 달린 날렵한 디자인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LCD 화면이라고 해봐야 흑백에 기껏 라디오 주파수 및 기타 기본 재생 정보 몇가지를 표시해주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그 정도만 되어도 대단히 미래지향적인 물건이라 여겨지기에 충분했다. 카세트 테잎 재생 장치 자체는 기계식이었으나 조작 버튼을 조그마하게 제작하여 교묘하게 전자식 버튼이라도 사용하고 있는 듯한 세련된 느낌을 내는 물건이었다. 더불어 1990년대 초반 당시 보기 힘들었던 납작한 껌 같은 모양의 건전지를 사용하여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아래 곡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보자. 요점은 초등학생 입장에서 듣기에 당시 아래 곡이 자유분방하게 헛소리를 곡의 앞뒤에 녹음하여 듣는 재미를 주었다는 데 있었다. 스튜디오 버전의 곡이 지닌 딱딱한 교과서적 느낌에서 탈피한 양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놀라웠다. 지금 들어보면 상당 부분 연출된 것임을 알 수 있지만 당시 초등학생 입장에 그런 게 보일리 만무했으니 그저 신세계를 접하는 느낌이었다. 예컨대, 이주노의 "현석아 잠깐만, CD 좀"이라는 대사를 생각해보자. 흥미로운 것은 해당 대사가 ("록앤롤 댄스"를 연습해보자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대화의 흐름에 아무런 영향력도 끼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거꾸로 말하면, 맥락 없이 말 자체가 그 자신을 강조하고자 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이 말의 진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2년이라는 배경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당대는 여전히 카세트 테이프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CD는 아무나 접하지 못하는 미래의 매체와 같은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주노의 대사는 시대를 앞서가는 자들이 공유하는 세련된 세계관을 지시하는 코드명으로 의도된 면이 있다. 메세지는 명확하다. '우리는 지금 특별한 것을 하고 있고, 특별한 것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게 그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잡담 및 잡음을 이용해 곡을 만들 정도로 전례 없는 자유분방함을 보여주고자 하는 곡의 컨셉과 일맥상통한다. 결과적으로, 아래 녹음은 가볼 수 없는 연습실의 모습을 몰래 엿보는 느낌, 혹은, 라디오 방송을 통해 뒷담화를 엿듣는 듯한 느낌을 선사하는 데 성공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팟케스트풍 연출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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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and Techno Mix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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