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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물론적 소멸

by spiral 2024. 2. 20.

알렉스 갈랜드 감독의 2018년작 영화 [소멸](Annihilation)은 인간이 비인간이 되는 과정을 신유물론적으로 보여준다. 아주 옛날식으로 말하면 범신론의 세계다.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신들의 세계, 그러나 초월적 신이 아니라 물질 자체가 다자적 신성인 세계 말이다. 인간과 식물과 동물이 하나된다는 건 그런 이야기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세계 속에서 얼마나 많은 등장인물이 동물이면서 식물이고 동시에 인간이고 신이던가. 똑같은 논리가 영화 [소멸]에서 발견된다.*

물론 차이도 있다. [소멸]이 그려내는 범신론적 세계는 신화적 클리세가 아니라 21세기 현대미술 작품 판본으로 그려져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멸]이 묘사하는 '쉬머'(the Shimmer) 속 세계 장면은 하나하나가 현대 미술작품 같다.** 영화를 보는내내 아름다운 동시에 기괴한 예술작품으로 가득찬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 같이 느꼈다. 식물이 된 인간, 인간이 되어가는 동물, 인간의 형체를 잃은 유골의 모습 등. 시각적으로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 같이 만족스러웠다.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갈 때마다 난 내 눈 앞에 있는 것이 더 이상 미술관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더랬다. 미술관 내 많은 작품이 이미 스크린 속에 담겨있었다. 영화와 미술이 합쳐지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 '쉬머'는 이미 우리 근처에 있었던 셈이다. 현대미술관에 들어가면 우린 기존 우리의 인간적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게 되지 않던가. 현대미술이 영화화되어갈 때, 거꾸로 현대미술관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작품이 나올까? 그 한 결과물을 [소멸]에서 찾을 수 있다.

현대미술관을 둘러보는 것과 같은 작품이기에 [소멸]은 기승전결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다. 사실 등장인물들이 '쉬머'에 들어간 이후 영화가 묘사하는 '쉬머'의 모습들은 영화의 결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화의 결말이 작품이 보여주는 아름답고도 기괴한 장면 하나하나에 이미 다 드러나 있다. 요점은 인간의 형상을 한 등장인물들이 자연계 내 물질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게 영화의 결론이다. 변이는 이미 쉬머의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결론이 이미 쉬머의 곳곳에 주어져있는 셈이다. 다만 인간의 형상을 한 등장인물들이 아직 그 변이에 저항하는 형태로 자신의 인간성을 지켜내고자 한다는 점이 남겨져 있긴 하다. 작품의 마지막에서 해소되는 것이 바로 이 등장인물이 품었던 인간성에 대한 집착이다. 한 예로, 작품의 중반 조시는 리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벤트리스는 그게 뭔지 직면하고자 해, 넌 그것과 싸우고자 해, 하지만 난 둘 다 원치 않아.' 그리고는 쉬머의 일부가 되어 사라진다. 이게 작품의 결론이다. 다만 작품이 리나를 초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내러티브가 조금 더 진행된다.

내러티브의 진행과 관련하여 결론부를 생각해보자. 사실 등장인물들이 쉬머 내부를 돌아다니며 보여준 장면에 비하면 마지막에 '에일리언'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은 딱히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다지 인상적이지도 않다. 에일리언과 하나된 벤트리스의 인간적 형체가 사라지고 그 변화한 초자연적 존재가 리나의 피를 받아들여 그녀와 하나된 (거울과 같이 그녀의 동작을 따라하는) 동시에 대립된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인간과 자연과 신이 하나되는 클리세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리나가 수류탄으로 그 자신의 그림자 존재를 소거하는 과정은, '나쁜 놈 에일리언'을 제거하는 과정이 아니라, 다자적 생명의 원형이 개별적 존재자로 다시금 분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마지막에 리나와 리나의 남편이 마치 새로운 아담과 이브처럼 등장하게 된다.) 오히려 영화의 중간 등장하는 인간의 목소리를 내는 짐승 장면이 훨씬 더 인상적이다. 이 장면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해당 장면의 요점은 짐승이 인간 흉내를 내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거꾸로 바로 그 짐승이 그 자체 인간이다. 짐승-기계가 인간이다. 이는 [혹성탈출] 시리즈 내 짐승들과 비교해보면 명확해진다. [혹성탈출] 속 짐승들은 의인화의 단계에 머문다. 즉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짐승들이 도입된다. 여기서 짐승은 인간 도덕성의 상징과 같다. 반면 [소멸] 속 인간의 목소리를 내는 짐승은 전혀 의인화되어있지 않다. 짐승-기계로서 인간을 그대로 드러낸다.

[소멸]은 인간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이성은 이미 정점 찍고 후퇴하고 있다. 한 예로, AI가 평균적 인간보다 더 똑똑해지고 있다. 앞으로 도래할 시대는 어떤 식으로는 비인간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세계로 돌아가거나, 굿판과 무술의 세계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동시에 과학기술과 결부된 형태로 비인간의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 또한 있다. 그러나 그게 꼭 인간의 시대보다 나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다. 영화가 말하는 '소멸'은 인간 시대의 종언과 같다. 그러나 종언은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다. 영화 내 대사가 모든 걸 말해준다: '그건 파괴하고 있지 않았어, 새로운 걸 창조하고 있었어.' 영화에선 '그것'을 '에일리언'이라 부른다.

과거에 '비인간 에일리언'을 칭하는 대표적 용어는 '신'이었다. 범신론이 일신론으로 변환되면서는 '선'과 '악', 즉 '천사'와 '악마'라는 용어로 비인간을 묘사하기도 했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은 생명과학이 등장하여 '선'과 '악'의 문제가 생리학적 인간의 뇌가 일으키는 심리의 문제로 여겨지고 난 후다. 심리학은 생리학의 일부다. 인간 시대는 르네상스 시기에 시작해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를 거치며 완성된다. 21세기에 뇌과학은 그렇게 만들어진 인간의 자아를 다시 물질성의 단계로 되돌리고 있다. 뇌과학이 인간 의식의 신비를 해독하고자 할 때 그 결과는 인간 자아를 물질로 환원시키는 것과 같다. 그렇게 인간과는 다른 것이 도래하고 있다. 그들의 연구결과가 기존 인간상--예컨대,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혹은 도덕적 존재다 등--에 대한 믿음을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올 것이 더 나은 미래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 포옹 장면에서 두 등장인물이 드러내는 비인간적 눈빛을 보라.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다. 새로운 존재, 신유물론적 에일리언이다. 

* 우리 말로는 [소멸의 땅]이라고 번역한 것 같다. 어원에 충실하자면 'annihilation'은 '무화'라고 번역해볼 수 있다. '없음'을 뜻하는 'nihil'에 '향하다'는 방향성을 뜻하는 'ad'가 덧붙여진 형태이기 때문이다. '애드아스트라'라는 영화의 제목의 'ad'가 동일한 'ad'다. '별을 향해서'라는 뜻이다. 사실 '애드'가 아니라 '아드'라고 하는 편이 적절하다. 라틴어이기 때문이다. 

** 우리말로 쉬머는 '아지랑이'에 가깝다. 빛의 거품 속에 쌓여있는 하나의 새로운 '바이오스피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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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ihilation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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