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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trid Sonne, "Give My All"

by spiral 2024. 1. 31.

최근 톰 요크(Thom Yorke)가 눈의 벽(Wall of Eyes)이라는 이름의 밴드로 앨범을 하나 냈다. 문제는 그의 목소리다. 최근 10년 사이 난 그의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모든 음악적 매력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라디오헤드든 월오브아이즈이든 동일하다. 모기 소리를 듣는 것 같이 느끼기 때문이다. 물론 톰에게는 문제가 없다. 내 뇌와 신경계가 그의 목소리를 해독하는 방식이 문제다. 그러나 내 신경계가 그의 목소리를 그렇게 받아들이는 이상 내 신경계와 그의 목소리는 공존할 수 없다. 라디오헤드의 경우를 예로 들면, 사실 1990년대 데뷔한 밴드 중에서 드물게 아직까지도 음악적 참신성을 유지하는 밴드라고 여긴다. 그러나 톰 요크의 목소리가 더해지면 많은 경우 듣고 싶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내게는 생리학적으로 듣고 있기 어려운 목소리다.

그래서 대신 아래 음악을 택했다. 애스트리드 손(Astrid Sonne)에 대해서 내가 아는 바는 별로 없다. 덴마크 출신이고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은 비올라 연주자라는 사실 정도가 전부다. 음악만 훌륭하면 난 출신 성분은 따지지 않고 듣는다. 음악가에 대한 판단은 음악으로 해야한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는 둘째 문제다. 사회적 존재 이전에 위치하는 음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대중적이지 않은 비사회적 음악이 있다는 뜻이다.* 실험적 음악이라고 불러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역시 실험적 음악을 들으려면 지나간 옛 음악가들이 아니라 동시대 젊은 음악가의 것을 듣는 게 맞다고 느낀다.

* 그러나 거꾸로 말하면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대중적 음악가도 많다. 사회 내로 들어선 음악가에 대한 판단은 음악으로만 해선 안된다. 사회 속에서 대중의 인기에 기반하여 살아가는 음악은 결코 음악만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음악은 사회적 메세지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음악가가 의도하지 않아도 대중적 음악은 항상 이미 사회적이다. 음악가가 의식적으로 사회적인 경우도 있다. 이승환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난 그를 좋은 음악가라고 여긴다. 그의 음악 자체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그의 음악이 지닌, 혹은 음악가로서 그가 지닌 사회적 책임감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보다 근래의 예로는 UN 등에 가서 대사회적 메세지를 낸 BTS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들의 음악은 실험적 음악을 다루는 기준으로 판단해선 안된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좋은 음악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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