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미국 재즈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음악가를 꼽고자 할 때 비제이 아이어(Vijay Iyer)가 빠지는 일은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재즈 음악가이긴 하지만 의외로 버클리에서 물리학으로 박사 과정까지 하다 중간에 그만두고 음악 관련 학제 프로그램으로 옮긴 후 박사학위를 받은 경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예일에서 수학으로 학사를 받기도 했다. (역시 음악을 하려면 수학과 물리학이 명약인 것인가?) 현재 하버드 음대에서 교수직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실험적인 재즈를 들려준다. 모더니즘적 취향을 지닌 나로서는 즐겁게 들을 수 있는 유형의 음악이다. 사실 아이어의 모더니즘적 취향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그의 수학 및 물리학적 바탕이 그것이다. 수학자나 물리학자가 음악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아이어의 것과 비슷해질 것이다. 그들의 머릿속에서 세계는 형상을 지니고 있지 않다. 수가 있고, 함수가 있을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아름다움은 수식적 완벽함을 뜻한다. 물론, 아이어의 실험적 곡들은 그러한 수학적으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지 않다. 오히려 수식 파괴적이라 할 만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음악은 감정을 다루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즉, 감정은 수학적 아름다움이 뒤틀어질 때 만들어져 나온다. 창의적인 음악가가 되고 싶다면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해보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단, 수학의 아름다움을 뒤틀어 놓기 위한 목적에서 말이다. 사실 어떤 면에서 아래 "Combat Breathing"이란 곡은 서정적이다. 그렇지 않은가? 수학적-물리학적 관점에서 하는 말이다. 물론, 아이어는 아래 곡이 프란츠 파농(Frantz Fanon)의 글에서 영감을 받아 쓰여진 것이라 말한다. 파농의 글귀는 다음과 같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각자가 쉬는 숨은 규율이 있는 호흡이고 바쁘게 이루어지는 호흡이다. 교전을 위한 숨쉬기(combat breathing)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호흡이 없는 수학적 아름다움에 교전과도 같은 숨길을 불어넣는 것이다. 수학의 아름다움은 사실 생명이 없는 죽은 아름다움이다. 그렇지 않은가? 수학자들을 천상계에 사는 사람들이라 말하는 것은 그들이 죽은 아름다움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음악을 하려면 관점을 바꾸어야한다. 수학이 음악의 시작점이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이는 피타고라스부터 시작해서 데카르트에 이르기까지 수학자들이 늘 꿈꿔왔던 이상이다. 그러나 음악가라면 동시에 수학으로 하여금 고통에 겨워 비명 소리를 내도록 만들 줄 알아야한다. 예술가는 수학을 사랑하는 동시에 증오할 줄 알아야한다. 음악은 바로 그러한 증오스러운 사랑 속에서 태어난다.
--
Uneasy (202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