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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즈가든, 윤병주, 봉준호

by spiral 2020. 7. 19.

헤비한 록 음악이 듣고 싶을 때 첫번째로 떠올리게 되는 밴드는, 그 어떤 쟁쟁한 영미권의 록밴드가 아닌, 한국의 노이즈가든(noizegarden)이다. 이미 오래전에 해체되고 지금은 없는 밴드다. 1990년대적 이야기다. 이는 BTS가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을 달성하는 것이 당연한 사실이 된 시대의, 당당함으로 무장한, 한국적 감수성을 기준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1990년대에 한국의 일개 록밴드가 만들어낸 음악이 그 모든 쟁쟁한 영미권의 록밴드의 음반을 따돌리고 헤비 록사운드의 정석으로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은 말그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의 도약은 여기 이 불가능성 속에서만 가능하다: 봉준호 감독이 2020년에 이룬 것과 동일한 일이 록 음악 영역에 있어 1990년대에 노이즈가든이라는 밴드에 의해 이미 달성되었던 것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는 F. R. 리비스식 '위대한 전통'을 쓰기 위한 것인가? 즉, 이른바 '한국의 위대함'이 발견되고 있는 2020년의 시점에서 '한국 문화의 위대한 역사'를 새롭게 서술하기 위한 것인가? 우리는 이미 이전부터 위대했던 것에 비해 서구의 인정을 받게 된 2020년대서야 초라하게만 느꼈던 과거를 마침내 부끄러움 없이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인가? 그리하여 우리는 하루 빨리 '위대한 한국 문화사'를 하나 새로 써야하는 것인가? 요컨대, 이는 오늘날 유튜브에 만연하고 있는 '선진국-애국 담론'의 문화적 판본인 것인가? 오늘날 유행하는 '선진국-애국 담론'에 딴죽을 걸 마음은 없다. 사실 오늘날 한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그러한 담론은 순기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선진국 담론'을 가능케 하는 바탕에 무엇이 있는 것인지는 분명히 살필 필요가 있다. 즉, '위대함'의 바탕에 있다고 여겨지는 '잠재성'이 대체 어떠한 것인지를 살필 필요가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그 어떤 믿을 만한 전통도 없는 시대에 한 비주류적 인물이 어떠한 일을 예외적으로 '저지르게'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과거는 사후성이라는 미래의 관점에 갇혀 다시 쓰여질 운명 속에 있지 않다. 오히려 과거는 '한국의 위대함'이라는 불리는, 현단계에서 우리가 '한국의 발전사'로서 조망하고 있는, 진보의 시간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즉, 지하실로부터 파헤치기 위해서 있다.

잠시 봉준호 감독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불과 2016년까지만 해도 그는 박근혜 정권이 만든 '블랙리스트'에 올려진 인물이었다. 그가, 흔히들 생각하듯, 주류적 삶의 탁월함을 지닌 사람이라 그에 걸맞게 오스카 및 칸에서 상을 타게 된 것이라 믿는다면 오산이다. 다시 말해, 그는 오스카에서 상을 타기 전까지 '한국 주류 영화 감독의 위대함' 혹은 '한국의 위대한 문화 전통' 따위의 담론 속에서 추앙받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그가 오스카 및 칸에서 상을 타게 된 것은 오히려 그가 '검은색,' 즉, 색의 결여를 사고하고자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사실 한국의 1990년대가 흥미로운 시대인 이유가 검은색이 나타내는 바 결여의 문제와 관계가 있다. 모든 면에서 그러했지만 대중문화의 영역에 있어서도 1990년대는 '결핍'의 시대였다. 예컨대, 1990년대 대중가요는 1980년대식 민중적 정서와 단절된 결과 초래된 전통의 빈자리를 미국의 팝-록 음악을 수입-모방하여 채우면서 시작된다. 서태지를 생각해보라. 그가 1990년대 대중 문화의 아이콘인 이유는 그가 가장 세련된 외래 음악 수입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세련된 음악은 민중의 삶을 노래하지 않음으로써 가능해진 것이기도 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는 결코 '민중'일 수 없는 나이의 10대를 음악 시장의 주요 소비자로 등극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10대는 신체의 소멸에 대해 알지 못한다. 거꾸로 신체의 확장이 최대 관심사다. 서태지의 등장과 함께 '대중' 음악이, '집단적 삶의 애환과 투쟁'이 아니라, 개인의 '행복'과 '추억'--"우리들만의 추억"; "아이들의 눈으로"; "영원"; "Good-bye"와 같은 곡을 보라. 서태지는 2집부터 항상 '은퇴'를 염두에 둔 곡을 하나씩 삽입한 바 있다. 즉, '은퇴'의 다른 말이 바로 '우리들만의 추억'이다. '우리'와 '추억,' 이 두 단어보다 더 완벽하게 '행복'을 묘사하는 말도 없지 않은가?--을 노래하기 시작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10대에게 집단성이 있다면 그것은, 서태지식으로 말하자면, '매니아'로서 '취미 공유 집단'이 지니는 동일 세대 내부의 '팬덤'의 문제이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이어지는 통시적 집단성, 즉, 한국적 삶이 지니는 전통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전통이 사라진 자리에서 자라나는 것은 행복만이 아니다. '중2병'이라는 말이 있듯, 전통의 결여 속에서는 '주관성'이라는 것이 또한 자라난다. 1990년대 주관성을 다루는 대표적인 장르는 록이었다. 주관성은 경험과 구체를 상실하고 있다. 만지고 볼 수 있는 형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비슷한 방식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은 '댄스'와 '록'이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진 바 있었다. 전자가 '행복한 경험'의 문제라면 후자는 '경험의 부정'으로서의 '주관성'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더듬고자 하는 이러한 태도는 일견 '행복한 댄스 음악'으로 가득한듯 보였던 1990년대가 다른 한편 지니고 있었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이렇게 말해볼 수 있다: 1990년대는 아무 의지할 곳 없었던 대중음악가들이 검은색을,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했던 시대이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1990년대는 음악가가 스스로 자신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과 같았다. '검은색'에 대한 그 어떤 두려움도 없이 말이다. 예컨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이란 곡을 생각해보라. 해당 곡은 '사진심의제도'를 폐지시키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하며 유명해졌다. '공연윤리위원회'는 "시대유감"에서 무엇인가 '검은 것'을 보았고 그것을 '희게'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거꾸로 해당 곡과 함께 '검은색'은 그 자체로 승인되어야하는 것으로서 새롭게 자리매김된다. "시대유감"이 사회에 대한 새로운 주관적 관점을 보여준 경우라면, 1990년대에 록 음악의 형태로 주관성 그 자체를 추구한 보다 검은 음악가는 지하에, 즉, 인디씬에, 따로 있었다. 노이즈가든을 소환해야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 노이즈가든이야말로 1990년대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한, 혹은, 만질 수 없는 것을 만지고자 한, 대표적 음악가다. 댄스나, 행복한 추억에 대한 이야기나, 유머 따위가 그들에게 있을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노이즈가든의 1999년작 [. . . But Not Least]로 가보자. 외외로 아래 노이즈가든의 두번째 앨범에 개인적으로 크게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시작해보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이들의 2집은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있기에 지루하다. 음악 자체가 굉장히 느릿하다. 무엇인가가 계속해서 지연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연되고 있는 것인지 물어야한다. 끊임없이 지연되는 것은 이들이 1집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음악이다. 여기서 1집 발매 이후 노이즈가든이 대단한 찬사를 받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이들의 2집에 대한 기대로 이어졌다. 그러나 사람들의 기대는 2집에 실린 음악이 끝날 때까지 거의 채워지지 않는다. 내가 이들의 2집을 즐겨듣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이는 한 개인의 독특한 반응인 것만은 아니다. 기대되었던 것이 지연되는 느낌 자체가 2집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의 2집은 청자를 향해 '넌 날 좋아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혹은 더 나아가 '날 좋아하지 않도록 만들어주겠어' 내지 '난 네 사랑을 원하지 않아'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다. "더 이상 원하지 않아"라는 첫번째 곡의 가사를 보라: "난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라고 말한다. 여기서 해당 구절을 이해하는 것이 곧 이들의 2집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고 말해볼 수 있다. 즉, '난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난 네가 원하는 것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가 요점이다.

일화에 따르면 아래 2집 작업을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윤병주는 밴드를 탈퇴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1집이 가져다준 명성과 인기에 구속되는 게 싫었기 때문이라 한다.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다. 특히, 한국 록 음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그가 노이즈가든으로 좀더 활동을 해주었더라면 하는 바람들이 있었던 당시 맥락에서는 특히나 그렇다. 윤병주 없이 노이즈가든이 작동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했기에 그의 결정은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다시 말해, 윤병주의 탈퇴는 그 자체로 노이즈가든의 해산을 의미한다. 사실 노이즈가든은 여러 밴드 구성원의 공동체적 참여로 이루어진 유기적 구성체-밴드라고 볼 수 없다. 오히려 노이즈가든은 기계에 가깝다. 즉, 윤병주라는 독특한 영혼 없이 노이즈가든이라는 기계는 작동하지 않는다. 윤병주가 한 개인으로서 어떤 생각을 하고 또 어떤 감정을 가지느냐가 곧 노이즈가든이라는 밴드의 음악적 형태가 되고 심지어는 밴드의 해체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하나 더 떠올려야할 윤병주에 관한 일화가 있다. 1집에 대한 평가로 사람들이 '기타톤이 좋다'는 이야기만 해대는 것이 듣기 싫어서 그가 2집에서는 의도적으로 거친 톤을 사용하고 곡의 구성에 비중을 더 두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여기서 2집의 느릿한 진행 방식이 윤병주가 곡의 새로운 구성으로서 정확히 의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요점은 2집의 새로운 구성이 정확히 대중의 지지와 열광에 대한 반발로서 의도되었다는 데 있다.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어째서 그는 보통의 사람들이 그토록 받고자 하는 '칭찬'을 참아내지 못하는 것인가?

사실 대중과의 유기적 결합으로부터 거리를 취하는 윤병주의 사례는 크게 독특한 경우가 아니다. 여기서 그가 일반 대중의 칭찬을 자신의 창조성을 얽매는 구속으로서 받아들이는 비주류적인 기질을 지닌 예술가형 인간이라는 아주 간단한 사실을 볼 수 있어야한다. 봉준호로 돌아가자.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 세계를 만들어내는 바탕이 무엇이냐는 식의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관객들을 놀라게 할 거야 라는 식으로 매순간 시나리오를 쓰지는 안는데, 이게 좀, 제 성격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진심이고요"이라 답한다. 아울러, 그가 진술하듯, 영화 작업을 하지 않을 때,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나지도 않는다. 흔히 예술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지닌 '창조성' 혹은 '독특성'은 바로 이 단절로부터 온다. 강유정 교수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세계가 화려한 도시 밑에 은밀히 돌아다니는 쥐떼의 움직임을 잡아내는 것과 같다고 말한 맥락이 여기 있을 것이다. [기생충]에서 화려한 부자집의 지하실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빈곤한, 그리하여 그 어떤 주목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기생충'적 지위를 생각해보라. [기생충]은 지상의 화려한 주류적 삶이 보고자 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지하의, 비주류적-두더쥐적 층위를 극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이 분자적인 것의 층위는 몰적 유기성에 대한 거절과 함께 시작된다. 흔히 '창의성'이라 불리는 것의 역설이 여기 있다. 즉, 창의성은 주류적 인정과 환호로부터 바로 이 '지하실'이라 불리는 곳으로 퇴거할 때에만 달성된다.

사실 이 지하실적인 것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은 많은 문학가와 철학자들이 예부터 지적해온 바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좋은 예다. 햄릿이 아버지의 유령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보라. 아버지의 유령과 만난 이야기를 호레이쇼 등에게 하기 전, 지금 듣게 될 이야기를 그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말 것을 맹세하라고 햄릿이 그들에게 요구할 때, 유령의 목소리가 무대 뒤에서 들려온다: "그의 칼에 대고 맹세하라" (Swear by his sword).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목소리로 밖에는 등장하지 못하는 두더쥐와 같은 지위를 지닌 유령에게 햄릿은 이렇게 대꾸한다: "말 잘했군, 늙은 두더쥐! 땅을 그렇게 잘 판다지? (Well, said, Old Mole! Canst work i' th' earth so fast?") 화려한 무대 뒤에 숨겨져 있는 두더쥐와 교감을 하는 자들이 예술가다. 그러나 이 두더쥐는 카프카적 의미의 끔찍한 짐승-해충 (ungeheures Ungeziefer)이기만 하지 않다. 왜냐하면 두더쥐 혹은 지하실 자체가 동시에 '유령' 혹은 '영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셰익스피어의 전통을 따라, 헤겔은 '세계 정신'(Weltgeist)을 '두더쥐'에 비유한다. 헤겔을 뒤집고자 한 맑스에 이르러 동일한 두더쥐의 은유가 혁명의 원동력을 지시하게 되기까지는 그리 먼 걸음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소위 본격 예술이라 여겨지는 것을 다룬다는 화려한 주류 문화가 사실은 '하위문화'라는 두더쥐와 같은 영혼 없이 그 어떤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는 뜻과 같다. 두더쥐적 영혼을 상실할 때 우리에게 남겨지는 것은 피노키오 인형 하나를 미술관 바닥에 던져놓고서 예술이라 부르며 엄청난 가격을 매겨서 파는 포스트모던 장사질이다.

다시 윤병주로 돌아가자. 윤병주는 어째서 그토록 1집에서 보여준 것을, 즉, 사람들이 그토록 상찬해마지 않았던 형태의 음악을, 2집에서 반복하지 않고자 했던 것인가? 사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윤병주가 노이즈가든의 첫번째 음반에 어느 정도나 거대한 의미를 부여했는지를 보는 데 있다. 실제로 노이즈가든의 1집은 1990년대 기준으로 영미권의 그 어떤 록밴드의 결과물보다도 훌륭한 결과물이었다. 1990년대 척박했던 한국의 록음악적 맥락을 생각해보면 믿겨지지 않는 일이었다. 사실 노이즈가든의 1집은 그 자체로 한국적 상황에 대한 '일탈'에 다름 아니었다. 여기서 윤병주의 특성이 드러난다. 그는 아무것도 산출해내지 못하는 황무지, 예컨대, 1990년대 한국의 척박한 록음악적 현실, 그 어떤 모범이 되는 전통도 지니지 못한 록음악의 불모와 같은 현실 자체를 스스로 개간함으로써 그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자다. 거꾸로 말하면, 그는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가며 기회를 노리는 장사치가 아니다. 이것이 그의 비주류적 기질이 의미하는 바다. 그는 타협의 공간이라 불리는 '현실'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는 '무'(nothing)를 직접 상대하는 자다. 노이즈가든의 데뷔 음반은 바로 이 '무'의 물질적 구현과 같다. 문제는 무의 음악이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의 굳어진 모범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만큼 견딜 수 없는 경우도 없다는 데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무'의 음악이 대중이 원하는 하나의 '모범'으로 물화될 때 노이즈가든이라는 틀은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고서는 그 최초의 의미를 유지할 수가 없게 된다. 즉, 다시 '무'로 환원되어 물화를 거부함으로써만 애초 그들이 구현하고자 했던 음악적 이상을 유지할 수 있다. 노이즈가든 탈퇴 이후, 윤병주가 로다운30이라는 밴드를 운영하는 방식을 보라. 로다운30은 거의 아무 주목도 받지 못한다. 혹은 보다 정확히 말해서, 그 어떤 주목도 받고자 하지 않는다. 이것이 로다운30의 요점이다. 로다운30은 그 누구의 모범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의 비모범적 음악이 기본적으로 들을 만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역설적이게도 '무'관심이야말로 그에게는 최고의 절대적 찬사인 것이다. 바로 이 최고의 찬사를 받기 위해 그는 거의 아무 관심도 받지 않고자 한다. 

이제 노이즈가든의 두번째 앨범이 지닌 제목('. . . but not least')을 한번 살펴보자. 직역하자면, "하지만 최소한의 것은 아닌"(but not least)이다. 이 구절은 역설을 담아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이라는 접속사가 전제하는, 접속사의 앞뒤에 위치하게 되는, 비교 대상 간의 관계를 살필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요점은, 접속사가 일반적으로 암시하는 방식과 달리, 이들의 앨범 제목이 '하지만'이란 접속사 앞에 '아무 것도' 내세우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그저 생략을 나타내는 점이 세 개 있을 뿐이다. 이 생략의 수사학에서 윤병주식 '무'가 작동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상식을 이용해서 생략된 구절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자. 질문은 다음과 같다: '. . . but not least'는 대체 어디서 온 표현인가? 이는 영어의 관용적 표현인 'last but not least'에서 'last'를 제거한 형태다. 이 관용어구는 '마지막으로 언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아서 마지막에 말하는 것은 아닌'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 '지금 마지막으로 말하는 것이 앞서 언급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첫째로, 노이즈가든의 두번째 앨범이 이들의 마지막 앨범이될 것이라는 사실이 이미 앨범 제목에 암시되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의미는 '마지막 앨범'이라는 데 있지 않다. 즉, '지금 주어진 앨범이 마지막 앨범인 동시에 찬사를 받은 데뷔 앨범 못지 않게 훌륭한 앨범'이라는 것이 최종 메세지다. 여기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윤병주가 품은 무한대의 자부심을 보게 되지 않는가? 노이즈가든은 '무'의 밴드라 할 만하다. 그러나 '무'(nothing)는 동시에 '모든 것'(everything), 보다 정확히는, '무한'(infinitude)을 의미한다. 사실 '무한'의 추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노이즈가든의 도통한 형이상학적 가사에서도 드러난다. 예컨대, "더 이상 원하지 않아"라는 노이즈가든의 가사는 "모든 것을 원해"라는 뜻으로 읽혀야한다. 여기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마침내 들려지게 되고, 만져지게 된다. 바로 이 '무'라 불리는 광기를 빼놓을 때 1990년대는 결코 흥미로운 시절이지 않다. 달리 말하면, '무'의 문제를 빼놓을 때 1990년대는, 30-40대에게는 그저 추억의 문제일 뿐이고, 10-20대에게는 그저 시간여행이라 불리는 체험의 문제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포스트-봉준호'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질문은 다음과 같다: 한국 사회는 어떻게 '봉준호들'을 키워낼 수 있을 것인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두더쥐적 사고가 화려한 서울 거리를 근저에서부터 파고들며 공간을 침식할 여지를 마련해야한다. 지하 생태계라는 이름을 붙여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위문화'라 불리는 것이 그 한 양태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하위문화'를 그 자체로 두둔하고자 함이 아니다. 두더쥐적인 것은 동시에 '무'를 '사고'할 수 있어야한다. 이는 '예술'이라 불리는 '신체'가 '사유'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뜻이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말해보자: 분자적인 것(the molecular)은 몰적인 것(the molar)에 대한 관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이것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란 말의 의미이지 않은가? 질량은 가장 작은 분자적인 것들의 움직임과 함께 발생한다. 그에 비해 예술적 형식은 질량이 몰적 층위와 조우할 때 발생하는 사건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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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But Not Least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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