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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KJ3

유튜브풍, 지구인 되기, 전우주적 자본주의 프렌치 키위 주스(French Kiwi Juice)를 보고 있으면, 기존의 20세기풍 프랑스 예술가들이 그의 작업물을 두고 혀를 끌끌 차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예로 그는 음악가로서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작명했을 뿐 아니라 모든 곡의 제목을 영어로 단다. 또 가사도 영어로 만들어 부른다. 영어로 지은 이름 조차 '프랑스식 키위 주스'라는, 마치, 카페의 메뉴에서나 찾아볼 법한, 인간이 아닌, 사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는 미국식 상업주의에 대항하여 프랑스식 지적 삶의 가치를 주창했던 기존의 전통적 프랑스 예술가-지식인들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예컨대, 사르트르나 카뮈가 이런 식으로 가볍게 영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실제로 프렌치 키위 주스의 음악을 들어.. 2020. 1. 17.
FKJ Live at Salar de Uyuni in Bolivia 프렌치 키위 주스의 음악은 그가 행하는 연주 장면을 보지 않고 이미지와 함께 음악만 들을 때 훨씬 더 만족스럽다. 한 예로, 아래 라이브 영상을 보며 저 뒤의 아름다운 풍경만 보고 싶다고 느낀다. 그의 연주 장면을 보고 있으면 저 많은 기계 장치 및 악기를 다루다 혹시 실수를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에 풍경과 음악을 충분히 즐길 수가 없다. 이는 새 집에 들어가 살기 위해 건축가가 집을 짓는 모습을 꼭 보아야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유다. 내 집의 구석구석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는지 하나 하나 다 신경쓰며 옆에서 바라보다가는 신경쇠약에 걸려 쓰러지지 않겠는가? 프렌치 키위 주스는 얼굴 없는 음악가로서, 즉, 인터넷 상에 존재하는 독특한 시공간으로서, 훨씬 더 매력적이다. 그의 음악을 듣.. 2020. 1. 14.
음악의 시공간화 혹은 FKJ (French Kiwi Juice) 어째서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카리스마 가득한 이른바 '천재적 음악가'의 출현을 보기 어렵게 된 것일까?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한 시대의 음악가, 음악가 개인의 천재성이 번뜩여 아무도 모방할 수 없을 것 같은 음악을 내놓는 음악가를 오늘날 등장하는 새로운 세대에게서 찾아보기는 어렵다. 사실, 전통적 '리더쉽'의 부재라고 할 만한 현상은, 정치 뿐 아니라, 음악을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예컨대, 2000년대 이후 등장한 록 밴드 중 내 뇌리에 한 시대를 새롭게 정의내려 이끌고 갔다고 기억되는 밴드는 없다. 록 음악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중 음악 전반이 그렇다. 반대로 오늘날은 수많은 다양한 이름 없는 음악가들의 시대인 것 같다. 이제는 누가 만든 음악인지, 해당 음악의 독창성과 그.. 2020.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