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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별, "빛으로 만들어진 도시"

by spiral 2011. 12. 20.

[월간 뱀파이어 6권: 빛으로 만들어진 도시]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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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음악적 취향과는 별개로 난 이 곡이 실린 앨범을 즐겨 듣는데 한국어가 소리와 뒤섞여 이렇게 많은 말을 뱉어대는 앨범을 그냥 듣고 있게 되는 경우는 이 앨범 외에는 잘 없다. 사실 음악이 말을 끌어들인다는 것은 몹시 위험한 일이다. 말의 필요가 결여된 혹은 말로 할 수 없는 장소에 들어서는 것이 음악이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음악 내에서 말은 쓸데없는 헛소리이거나 아니면 그 자체 하나의 음향적 장식물이 된다. 이 앨범에 들어찬 한국어가 성공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음향적 장식으로 생각하기에는 헛소리에 가까운 것에 비해 헛소리라고 치부하고 말기에는 너무 말이 많아 이것을 빼놓고는 이 앨범이 기대고 있는 무언의 장소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평소 모임 별의 노랫말이라고 할 만한 것이 가사를 알아듣기 어려웠다는 점과도 대비되는 특징이다. 말하자면 여기서 마치 이야기처럼 명확하게 서술되는 한국어는 역설적이게도 모임 별이 최초로 제공하는 노래 가사라 할 만하다. 요컨대 대부분의 노래 안에서 목구멍의 웅얼거림이던 것들은 노래의 형태를 완전히 벗어던지고서야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비로소 청취된 노랫말이, 청취되지 않는 가사가 오히려 모호하게 의미를 암시했던 것에 비해, 반대로 그나마 있던 의미마저 소거시켜버린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앞서 '헛소리'라고 묘사했던 지점이다. 반면 이 '헛소리'는 1969년 패티김의 "서울 찬가"와 1988년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과 비교됨으로써만 정확히 이해될 수 있다. 한 예로 '빛으로 만들어진 도시'는 그 말이 이미 포함하듯 스스로 발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밤을 등 뒤에 붙이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앨범에서 서술되는 그 긴 한국어는 그 어떤 한국적인 뜻도 지니지 않는다. 무의식의 형식으로서 한국어가 묘사하는 광경은 빛과 어둠이라는 이진법 그 자체에 불과하다. 비유컨대 이것이 전지구적 비밀인 영어가 한국어라는 옷을 입고 유창하게 말을 하는 방식이다. 이제 서울은 'Seoul'이라 씌어지고 발음되며 이것이 한국인이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을 이룬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어딘지 불쾌하고 소위 '퇴폐적'인 느낌이 있다면 이 앨범은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내가 살아본 서울과 일치하는 음악적 청취다. 내가 아는 서울은 헛소리의 도시다. 물론 내가 헛소리를 갈구하고 헛소리에 취하면서도 헛소리를 증오한다는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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