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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penheimer: The Decision to Drop the Bomb"

by spiral 2023. 9. 4.

아래는 영화 [오펜하이머]로 유명해진 오페하이머의 "이제 나는 죽음, 세계의 파괴자가 되었다"는 인터뷰 장면이 담긴 NBC의 다큐멘터리 "원자폭탄을 떨어트리기로 한 결정"의 전체 영상이다. 1965년 1월5일 방영된 영상이다. 오펜하이머의 인터뷰 장면은 1시간 4분 경에 나온다.

영화 [오펜하이머]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자. 개인적으로 [오펜하이머]를 크게 재미있게 보지는 못했다. 역사적 사건에 기반한 영화인만큼 사전에 내용을 알고 있어 극중 일어날 일에 대해 서스펜스를 느낄 수 없었다는 게 한 이유였지 싶다. 그러나 동시에 말이 너무 많아서 영화를 보고 있기가 피곤하기도 했다. [오펜하이머]는 인물들 사이에 파지는 감정의 골을 따라가지 않으면 큰 재미를 느껴기 어려운 영화다. 그러나 많은 중요한 영화적 묘사가 인물들간의 대사에 의존하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과학기술 및 군사 작전 그리고 당대에 정치적인 이유로 벌어진 청문회 등에 관한 전문적 상황과 언어가 많이 나오는 이유로 실시간으로 주어지는 언어를 모두 소화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상황을 정리하느라 영화를 보는 중에 논리적으로 사고를 하다보면 영화적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 식이었다. 원자폭탄 실험을 하는 장면에서 폭발 장면의 스펙터클, 즉 소음과 광선을 통해 보여주는 것을 뒤로 미루고 침묵 속에서 등장인물의 긴장된 호흡소리만 보여주는 연출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딱히 참신한 느낌은 아니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연출했을 법한 방식으로 연출을 했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 장면은 영화 초반 나온 장면의 진실을 추리 스릴러물의 언어로 보여준다. 재미있기 힘든 과학자에 관한 영화를 드라마적으로 만들기 위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세속적 성공의 관점에서 평생을 살아온 루이스 스트로스는 프린스턴 대학 고등연구소에 오펜하이머를 초대한다. 그리고는 오펜하이머를 그곳에 이미 연구원으로 와있었던 아인슈티인에게 소개시켜준다. 스트로스는 멀리서 둘이 만나는 장면을 본다. 스트로스가 둘에게 접근할 때 둘은 대화를 끝낸 후였고 아인슈타인이 뒤돌아 걸어나오다 스트로스를 만나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어딘지 심기가 불편한 모습이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스트로스를 반쯤 무시하며 지나친다. 스트로스는 그 일을 회상하며 오만한 오펜하이머가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아인슈타인에게 했기에 아인슈타인이 자신을 무시한 것이라 믿는다. 밑바닥에서부터 일어서 자수성가한 사람으로서 스트로스는 남들이 자신을 무시할지 모른다는 자격지심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오펜하이머가 천한 배경을 지닌 자신을 무시하고 있으며 그의 성공을 가로막고자 술수를 부린다고 여긴다. 그러한 관점에서 영화의 모든 드라마적 전개가 나오게 된다. 오펜하이머의 이적 행위 여부에 대한 청문회는 모두 그러한 맥락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영화는 드라마적 요소를 모조리 철회하며 과학적 진리의 손을 들어주며 끝난다. 이게 이 영화에서 볼 만한 지점이다.

마지막 장면의 요점은 과학이 인간 주관성으로부터 개진되는 드라마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비인간적일 뿐이라는 데 있다.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처음부터 스트로스라는 인간에 대해 한치의 관심도 없었던 것이다. 그 둘은 오직 물리학 이야기만 했던 터였다. 다만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사이에는 물리학에 대한 이해를 둘러싼 긴장이 있었다. 평소 안그래도 양자역학을 승인할 수 없었던 아인슈타인이었다. 오펜하이머는 상대성이론으로 대변되는 아인슈타인의 시대가 지나고 양자역학으로 무장한 새로운 물리학 세대가 등장했음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프린스턴에 초대되어 기세등등하게 아인슈타인을 찾아온 오펜하이머에게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으로 대변되는 물리학이 원자폭탄을 만드는 데 사용되게 되는 것에 대해 경고하며 앞으로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란 식으로 이야기한다. 양자역학은 단순히 새로운 시대의 물리학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의 개입으로 우주의 질서가 깨지게 되는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의 고민은 전우주적이다. 인간적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최소 인류 전체의 미래가 달린 사안이 그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다. 반면 스트로스는 그저 한낱 인간으로서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 앞에서 자신을 모함했다고 믿는다. 그는 모욕에 대해 보복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청문회 일정을 뒤에서 지휘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는 인간 개인의 소시민적인 욕망을 표상하는 인물이다. 스트로스에 비하면 오펜하이머는 전우주적 인물이다. 그러나 소시민적 복수 행위에 의해 오펜하이머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된다. 말하자면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암시한 대가가 오펜하이머에게 찾아오는 한 가지 방식이다.

[오펜하이머]는 인간의 왜소함과 과학이 담아내는 우주적 크기를 대조시키면서 그러나 그 둘이 어떻게 또한 서로 얽히게 되는지를 여러 장르의 문법을 동원해 풀어내는 영화다. 우주적 진리와 함께 하는 거인과 같은 물리학자들도 한편으로는 한낱 인간에 불과한 인물에 의해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설정은 기본적으로 그리스 비극의 구조를 닮아있다. 가히 물리학자들은 현대의 영웅이라 할 만한다. 기본적으로 여러 요소들을 잘 엮어낸 영화다. 다만 말이 많은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별로 좋아하지 않지 싶다. 머리 식히면서 쉬는 시간에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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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cision to Drop the Bomb"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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