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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 Hopkins, "Immunity"

by spiral 2018. 5. 28.

아래 존 홉킨스의 "Immunity"란 곡은 전자 음악이 종교적 감수성을 담아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앨범의 타이틀 곡으로서 앨범의 마지막에 위치해있으며 10분 가까이 한결 같이 명상적 태도를 유지한다는 점이 첫째로 눈에 들어온다. 이는 세속적 삶이 겪어내어야 하는 그 모든 부침이 지나간 후 올리는 기도와 같다. 만약 이 곡의 정서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일반 정서였다면 큰 감흥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여기서 명상은 사후적으로, 즉, 전사를 배경으로, 찾아온다. 해당 앨범 안에 깨나 강렬한 비트의 곡들이 또한 있다는 점을 기억하라. 예컨대, 그들은 우리가 익히 아는 유흥적 의미의 클럽 음악 정서를 환기시키는 요소로 복무한다. 아래 곡은 바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청취되어야한다. 달리 말해보자. 전자 음악의 본질은 클럽 음악도 댄스 음악도 아니다. 전자 음악은 21세기 디지털화된 인간의 삶을 새롭게 시화하려는 시도다. 그것이 아래 곡이 담고 있는 명상적 혹은 종교적 특징이 기반한 바탕이지 않은가? 그렇다. 21세기 인간의 삶은 시적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시로서가 아니라 전자적-원자적-물리학적 시로서이다. 예컨대, 아래 곡에서 우리는 과연 특정 인간의 흔해 빠진 '감동 스토리' 때문에 위안을 얻는가? 그렇지 않다. 아래 곡에는 그 어떤 화자도 없다. 오히려 우리는 누가 노래를 부르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아래 곡에서 우리가 여전히 어떤 '노래'를 듣는다고 느낀다는 점이 중요하다. 심지어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고까지 느낀다. 알 수 없는 것의 노래를 들으며 고향에 온 듯 느낀다. 그렇다면 대체 이는 무슨 노래란 말인가?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존재가, '강요된 침묵'과 '감동 스토리'라는 클리셰로 이루어진 언어-감옥의 규정을 어기며, 스스로 내는 소리이지 않은가? 그 옛날 하이데거가 '다자인'(Dasein)이라는 말을 사용해가며 지시하고자 했던 것을 떠올려보라. 그것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방식의 '인간'을 칭하기 위한 용어가 아니었다. '현존재'라는 말은 오히려 '인간 이전' 혹은 '인간 이후'에 위치하는 무엇을 포착하기 위함이다. 난 여기서 하이데거의 전망과 달리 다시 과학으로 가고 싶다. 21세기적 삶의 종교적 측면이 물질 자신의 비물리성으로부터 나온다는 점이 요점이다. 오늘날 양자물리학 등의 '과학'이 묘사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존재의 층위이지 않은가? 물론, 이것이 과학 기술로 사제 폭탄 제조하는 과학 덕후 아이들의 과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명확하다. 무슨 소리인가? 이공계 대학원 박사 과정 공장에서 과학 기술자를 찍어내는 일이야말로 '강요된 침묵'과 '감동 스토리'라는 한 쌍의 '부부사기단'으로 이루어진 과학적 언어-감옥 수감자를 양산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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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unit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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