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오더, 혹은 새질서. 가장 위대한 밴드 이름을 하나 꼽으라면 주저없이 이들을 꼽지싶다. 아래 앨범의 이름도 거창하다. 실체, 혹은 본질, 혹은 요점. 1981년에서 1987년 사이에 발매된 싱글만 모은 앨범이라 그렇게 이름 붙여졌지 싶다. 요즘 기준에서 처음 곡을 들으면 한편으론 만들다 만 데모 곡들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의외로 지금 듣기에 참신한 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언뜻 어딘지 요점에 맞지 않는 평면적인 괴상함을 실험적으로 늘어놓고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당시 사람들이 듣기에는 대단히 힙하고 혁명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밴드였을 것이다. (아마도 1970년대에서 1980년대로 이어지는 시기가 영국의 대중음악이 가장 참신했던 시절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무엇보다 깊은 인간성이 납작하게 펴진 음악이란 점에서 그렇게 여겨지지 않았을까 싶다. 뭔가 노래를 하고 있기는 한데 인간미는 없다. 종이로 만들어진 인간이 노래를 부른다면 이런 노래가 나오지 싶다. 소멸되어가는 신체로부터 발현되는 인간적 감정이 없다. 이미 죽은 것이거나 아니면 다시 태어났거나 둘 중 하나다. 영국의 전통적 관점, 예컨대, 19세기 빅토리아조의 감수성을 가지고 보자면, '말세'라고 여겨질 만한 음악이 아니었을까 추정해본다. 오페라에서 가수가 부르는 노래와 비교해보라. 오페라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깊이, 즉, 인간의 정신 세계다. 반면 신스팝에 오게 되면 인간은 납작해진다. 어떤 면에서 이러한 노선의 음악에서 조금 더 과격하게 나가면 '인더스트리얼 록'이란 장르가 파생되어나올 것임을 예상할 수 있기도 하다. 인더스트리얼 록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신체가 기계에 갈리게 될 때 나는 비명 소리에 가깝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면 인간의 목소리는 기계에 먹혀 아예 사라지게 된다. 전자 음악을 떠올려볼 수 있다. 뉴오더가 처음이라면 조금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보길 권한다. 앨범의 뒤로 갈수록 듣는 이의 인내심에 보답을 하는 경향이 있다. 기존의 팬이라면,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기를 바란다.
* 사실 첫번째 곡 "Ceremony"는 조이 디비전의 이언 커티스가 23살의 나이에 자살하기 전 마지막으로 작업한 곡이라 뉴오더의 팬들 사이에서는 특별하게 여겨진다. 말하자면, 조이 디비전과 뉴오더를 잇는 연결고리와 같은 곡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 말해보자면, 이 곡은 1990년대 얼트록를 예견케 하는 측면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많은 1990년대 얼트록 밴드들이 조이 디비전과 뉴오더를 듣고 자란 세대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라디오헤드나 스매싱펌킨스 등이 대표적이다. 빌리 코건은 뉴오더의 2001년작 [겟레디](Get Ready)에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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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stance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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