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

[슬기로운 의사생활] 혹은 "넌 따뜻해"

by spiral 2020. 10. 21.

아래 곡은 2020년에 발표된 신곡이지만, 들을 때면, 새로움이 아니라, 지나간 추억이 생각난다. 곡의 구성과 진행 그리고 정서가 전형적으로 1990년대적이라 그렇다. 그럴 때면 마치 내가 '오래된 것'(the old)이라도 된 듯이 느낀다. 사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라는 드라마의 구성 자체가 그렇다. 마흔의 나이에 이른, 낡아빠진, 5명의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해당 드라마는 오래된 것에 관한 이야기이지 않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마흔의 나이를 먹은, 중년의 초입에 이른,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기 시작한 인물들을 닳을대로 닳은 사회 속에서 구태의연하게 승진이나 금품수수나 권력을 둘러싼 암투 등에 빠지지 않은 채 살아가도록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해당 질문을 중심으로 드라마의 세계관이 조직된다.

알고 보면 마흔은 적지 않은 나이다. 그러나 오늘날 마흔은, 예전과 달리, 여전히 가능성을 지닌 나이이기도 하다. 의학의 발전이 그 첫번째 배경이다. 예컨대, 관리하기에 따라 마흔이 되어도 이제는 크게 늙어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 나이에도 신체 기능을 여전히 잘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한 이유로 마흔살의 인물은 마음가짐에 있어서도 청춘의 흔적을 이전보다 좀더 쉽게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이미 마흔 살이나 먹은 5명의 주인공은, 한때 결혼생활을 한 것으로 그려지는 인물도 있지만, 모두 현재 미혼 상태에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드라마는 그들이 그 나이에 어떻게 다시 사랑을 찾을 수 있을지를 두고 내러티브를 전개한다. 그들의 인생은 마흔 살에도 전혀 안정되어있지 않다. 여전히 모험이 필요한 나이란 뜻이다.

마흔의 나이에 사랑을 찾아떠나는 여정은 사실 이례적인 설정이다. 저 나이에 주인공 모두를 미혼으로 그려내다니, 그러고도 전혀 낯설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가능하다니, 2-30년 전 만해도 상상할 수 없는 설정이었지 않은가? 예컨대, [전원일기]에서 마흔살이 어떻게 그려지는지 보라. 그들은 이미 구시대적 꼰대다. 위로는 어른들 모시느라, 아래로는 아이들 뒷치닥거리하느라 바쁘다. 사랑이나 연애는 20년 전의 모두 잊혀진 이야기다. 그러나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5명의 주인공은 마흔살이지만 20대에 그랬던 것 같이 친구 집에 함께 모여 밴드 합주를 한다. 그리고 마치 학창 시절 학교에서 매일 만나며 티격태격하듯, 매일 같은 직장에서 만나며 늘 티격태격한다. 타락 이전의 이상적 전원 생활을 보는 것만 같아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사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5명의 주인공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결혼' 혹은 '가족'의 자리를 '추억'이 대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꾸로 추억 덕분에 마흔 살에 함께 모여 이상향을 구현하는 것이 가능해진 셈이기도 하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가장 잘 드러나듯, 사실 추억 혹은 기억은 신원호가 만들어내는 동화적 세계관의 중추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는 '어떻게 하면 (타락한) 어른이 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드라마를 만드는 감독이다.

관련하여 신원호의 드라마 세계에서 '의사'가 차지하는 지위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응답하라 1994]에서 의대생으로 설정된 쓰레기를 인물을 떠올려보라. 그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그려내는 5명의 주인공을 모두 담아내는 원형적 인물, 즉, 5명의 인물로 발현될 배아 상태에 있는 (embryonic) 인물이지 않은가? 쓰레기의 특성은 다른 인물들을 품을 그릇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다른 모든 하숙생들을 품는 리더다. 가장 인간적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읽어낸다. 환자들이 들끓는 병원에서도 그는 환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의사로 그려진다. 그의 곁에는 늘 사람이 붐빈다. 요점은, 그가 다양한 인물을 엮어내는 구심점 혹은 보호처로서 작동한다는 것이다.

신원호의 드라마에서 '병원'이라는 설정이 지니는 특성을 생각해보자. 병원은 온갖 인간 군상이 다 모일 수 있는 공간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와 더불어, 무엇보다, 그곳에 모인 온갖 인간 군상이 생과 사를 오가며 가장 나약해지는 순간과 맞닿아있다든 것이 병원이라는 공간의 핵심이다. 여기서 '의사'는 이들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인 자들을 다시 생의 길 위에 올려놓는 역할을 하는 자와 같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 놓일 때 사람들은 동시대적 권력 투쟁을 모두 놓아둔 채 과거의 기억으로 되돌아간다. 권력투쟁이 유혹과 같이 그려내는 미래가 사라지는 순간 남겨지는 것은 추억이다. 그러나 과거가 추억으로 보존되려면 다시 생의 길 위에 올라서야만 한다. 여기서 의사가 과거와 사투를 벌이는 이들을 구하여 과거를 추억으로 보존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신원호적 세계에서 의사는 추억의 형태로 인간의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 역할을 한다. 기억을 인간성의 중추로 삼는 신원호에게 있어 의사보다 더 완벽한 인물군도 없는 셈이다. 다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의사가 생명을 구하지 못하게 될 때 기억은 추억이라는 동화적 세계에 머물지 못한다. 신원호적 세계 속에서 의사는 생명의 수호자로서 타락한 죽음의 세계가 추억의 세계로 침투해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해야한다.' 그리고 생명을 살리는 데 있어 반드시 성공해야만 한다. 그들이 무너질 때 추억의 세계는, 마치 천사들이 지옥문을 닫는 데 실패하듯, 인간성을 잃고 무너지게 된다. 타락한 어른 세계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문이 닫혀있는 한에서 그의 인물들은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 결혼 따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다. 각자 가정으로 돌아가지 않고도, 20년 전처럼 계속해서 매일 한 곳에서 얼굴을 보며 정답게 티격태격할 수 있다.

햄릿이 몇살까지 살았는지 기억하는가? 그는 30살에 죽었다. 프랑코 모레티(Franco Moretti)가 지적하듯, 르네상스 시대에 30살이면 이미 중년이다. '청년'이 아니라 '어른'이다. 그러나 햄릿은, 알려졌다시피, 금품수수 혐의로 인해 조여오는 수사망 속에서 그 유명한 대사를 왼 것이 아니다. 그렇게 타락한 어른으로서 죽음에 이른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근대적, 영원한 젊음을 사는 청년으로 기억된다. 그의 대사는, 금품수수적이 아니라, 실존적이라 여겨진다. 그것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라는 대사가 뜻하는 바다. 신원호의 세계 속에 있는 마흔 살 인물들이 그렇듯, 햄릿 또한 쉽사리 어른이 되지 않는다. 만약 그가 어른이 되었다면 우린 '햄릿 왕'이라는 제목의 극을 하나 더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흔히 핸리어드(Henriad)라 불리는 핸리왕 연작을 썼듯 말이다. 그러나 햄릿은, '왕'이 아니라, '왕자'로 죽는다.

하지만 햄릿과 [슬기로운 의사생활] 5인방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무엇일까? 만약 오필리어 앞에서 내보인 햄릿의 광기에 찬 언행을 봤다면 그들 5인방은 '어이구, 지금 빨리 병원 입원하셔서 MRI 찍고 조직검사해야합니다, 결과에 따라 수술만 하면 다 낫게 될 것이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제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따뜻한' 말을 전해들을 수 있지 않았겠는가? 햄릿의 답변이 바로 아래 곡의 제목이다: "넌 따뜻해.' 혹은, 피가 난자하게 된 칼부림 씬 이후에도 햄릿은 생명을 구했을 것이다. 그에게 [슬기로운 의사생활] 5인방만 있었다면 말이다. 바로 수술실로 옮겨졌을 것이고, VIP 병동에서 깨어나며 극은 해피엔딩으로 끝났을 것이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내러티브 자체가 VIP 병동에 모셔지는 햄릿의 삶에 기초하고 있다. 예컨대, 푸코(Michel Foucault)가 즐겨 논한 의학과 생명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시대에 대한 고찰에 다름 아니다. 오늘날 죽음은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다. 오늘날은, 죽음과도 같은 실존의 시대가 아니라, 생명의 시대다. 이 때문에 마흔이 되어도, 지지치도 않은 채, 혹은 이미 지친 줄도 인지하지 못한 채, 여전히 사랑을 찾아 떠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인구론으로 유명한 멜서스(Thomas Malthus)였다면 사람 학대하는, 출산율을 떨어트리는, 잘못된 시대라 말했을 것이다. 그가 우려했던 것은 사실 생물학적 신체에 복무하지 않는 자기반영적 욕망의 작동 자체가 아니었던가?)

--

[슬기로운 의사생활 OST] (20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