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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로드리고의 '달콤한 복수'

by spiral 2023. 10. 29.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는 현재 미국 메인스트림 팝 씬에서 가장 잘 나가는 가수 중 하나다. 배우이기도 하다. 이제 겨우 20살이다. 곡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10대와 20대가 흥분할 만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잘 나가는 혹은 잘 노는 언니, 누나 이미지, 혹은 '나쁜년' 이미지가 기본이다. 그런데 동시에 바람기 있는 남자 혹은 '나쁜남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도 있다. 혹은, 전남친을 다시 볼까 말까 엉망진창 망설이다 다시 그의 침대로 들어가는 내용 등 약한 모습 또한 있다. 다시 말해, 전혀 완벽한 여성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평범한 10대 및 20대가 올리비아 로드리고에게서 '따라하고픈 멋진 여성'의 모습과 '별볼일 없는 자기 자신의 모습' 둘 모두를 발견하는 것이 가능하다. 아마 이게 그가 미국의 '영 어덜트'들, 특히 10대 후반 및 20대 초반 여성들의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 방식일 것이다.* 공연 영상을 보면 여성들이 곡을 합창하듯 따라부르는데 아주 장관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지극히 주류적인 정서를 지니고 있으면서 1990년대 얼트록의 요소를 가져다쓰고 있기도 하다는 데 있다. 아래 곡을 기준으로 말해보자면 첫번째로 떠오르는 가수는 단연 앨라니스 모리셋(Alanis Morissette)이다. 아래 비디오는 "아이러닉"(Ironic)이라는 곡의 뮤직비디오의 오마주와 같은 요소가 없지 않다. 여러 명의 올리비아가 등장해 차를 타고 떠나는 이미지 등을 보라. 곡의 록적인 분위기도 거의 비슷하다. 1990년대 20대 초반의 앨라니스 모리셋이 '비치'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올리비아 로드리고도 비슷한 이미지를 가져다쓴다.** 그러나 여성의 남성에 대한 무시무시한 복수심이 느껴지던 1990년대와는 다르다. 아래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로드리고가 말하는 '복수'는 '달콤한 복수'(sweet revenge)다. '네 엄마 만나서 니 아들 구려라고 말해주고 싶어'(I want to meet his mom just to tell her her son sucks)라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좋게 말하면 귀엽고, 나쁘게 말하면 '거기서 엄마가 왜 나와!'다. 사실 아빠도 나온다. '내가 우리 아빠 딸인데, 그 자식 버릇을 고쳐놓을 수 있지 않겠어?'(I am my father's daughter, so maybe I could fix him)라는 대목을 보라. 

10대 및 20대 초반이라면 열광할 것이라 본다. 내가 그 나이라면 아마도 그렇게 느끼지 싶다. 그러나 지금 내 입장에서는 조금 이상하게 느껴진다. 21세기에 록은 주류가 사용하는 하나의 스타일이고, 반항은 귀여움을 표출하는 한 가지 방식에 가깝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너무도 프로페셔널하게 편집된 아래 비디오를 보면 오늘날 음악은 역시나 산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참 잘 만든 곡이고 영상이다. 랩적인 요소와 록적인 요소가 최고의 손길로 프로듀싱되어있다. 비유하자면, 디즈니랜드 가서 최고의 '어트랙션'을 탔을 때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디즈니랜드는 갈만한 곳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멋진 음악이 디즈니랜드인 것은 아니다. 앨라니스 모리셋도 [재기드 리틀 필](Jagged Little Pill)로 1,600만장을 팔았었다. 상업적으로 대단한 성공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음악 자체는 날것이었다. 물론 올리비아 로드리고에게도 날것의 정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The Grudge" 같은 곡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로드리고의 경우는 프로페셔널하게 훈련된 가창력이 정제되지 않은 정서를 완전히 먹어삼키는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이 친구기 보여주는 록은 내가 생각하는 록음악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자생적 록음악가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내 기준에서 볼때 로드리고는 록적인 감수성을 지닌 친구가 아니다. 그보다는 '나는 가수다'풍 가수가 록의 문법을 완벽하게 배워서 장르로서 구현하는 경우에 가깝다.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동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로드리고가 주류 음악가인 것은 이 때문이다.

* 로드리고가 들려주는 정서는 지극히 미국적이다. 미국 고등학교 여학생의 정서 말이다. 그녀의 노래하는 자아는 영어덜트 TV드라마나 소설에서 나올 만한 '캐릭터'를 보여준다. 상당히 교과서적이다. 엉망진창 잘 굴러가지 않지만 단지 우울하게 주눅들어 있기보다 좌충우돌이면서 결국 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그러다 한방 먹기도 하지만 발칙하게 혹은 자생적으로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꼭 들어가는 로맨틱 및 섹슈얼한 맥락, 거기에 덧붙여진 사회적 젠더 통념에 대한 비판 (예컨대, "Pretty is Not Pretty"라는 곡을 보라.) 등, 전형적인 2020년대 미국 고등학생풍이다. 한국식 고등학생 정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예컨대, 뉴진스의 곡이 가사의 차원에서 남녀관계를 센 척하면서 이야기하는 요소가 있더라도 멤버들 인터뷰를 보면 '아기' 같이 느껴지는 것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발칙한 자기 목소리가 없으면 미국인이 아니다. 반면 한국에서 그러한 요소는 그다지 사회적 미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 이 전통의 특징은 남성이 대상으로 언급은 되지만 실제로 인격화된 모습이 등장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아래 비디오도 마찬가지다. 노래는 '그 자식'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지만 정작 등장하는 것은 노래하는 여성 뿐이다. '그 자식'은 시쳇말로 '블러처리'되어있을 뿐이다. 반면 여성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세계를 자기 자신으로 복제해내는 복수의 여신과 같은 모습이다. 차량의 운전석에 있는 것으로 블러처리되어 등장했던 '그 자식'은 곡의 말미에 사라지고 없다. 운전석에 있는 것은 올리비아다. '그 자식'은 더 이상 세계를 운전하고 있지 않다. '그 자식'은 살해 당한 것일까? 이제 세계의 운전사는 올리비아다. 동일한 접근법이 영화 [메트릭스] 2편 몇 3편에서 등장한다. 모든 이가 스미스 요원으로 변화하는 세계를 기억해보라. 스미스 요원은 1편에서 네오에게 살해당했던 터였다. 그러나 그는 되살아나고, 메트릭스의 질서를 어지럽히면서까지 네오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가게 된다. 스미스는 네오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를 자기 자신으로 만들어 가지고 싶었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저 남자, 갖고 싶다, 나로 만들어버리고 말겠어!'

*** 로드리고의 가창력을 보고 싶다면 'Driver's License"라는 곡을 들어보라: https://www.youtube.com/watch?v=f_rYWBle1_4. 이 친구의 특징은 곡을 이끄는 감정선이 상당히 '연극적'이라는 데 있다. 이 친구가 배우이기도 하다는 점과 이어지는 지점이라고 본다. 애당초 배우로 데뷔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친구의 곡을 즐기려면 가사의 감정선을 따라가야한다. 비슷한 요소가 "Get Him Back"의 라이브 버전에서도 드러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NXqU4J3RXU. 가사가 전달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핵심적이다. 솔직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진행되는 연극적인 라이브 버전이 원곡보다 낫다. 근본적 정서에 있어 이 친구의 음악은 록풍이 아니라 뮤지컬풍이다. 이 둘을 합치면 대강 나오는 장르가 '록발라드'다. 내 생각에 이 친구는, 만약 록을 계속하고자 한다면, 록 자체가 아니라 '록발라드'의 여왕과 같이 발전할 여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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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ts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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