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연구자의 관점에서 볼 때 강형욱은 고대 영웅 서사의 주인공과 같다. 악당들, 특히 초현실적 괴물들, 예컨대, 그렌들과 그의 어미를 때려잡는 베어울프가 떠오른다. 물론 강형욱의 나라에서 개들은 여러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때때로 그들은 사랑스럽기도 하고, 순종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가 통치하는 나라에서 개들이 가장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은 따로 있다. 그들이 숨기고 있는 짐승과 같은 공격성이 드러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인정컨대, 강형욱은 정의롭고 인자한 통치자다. 신민을 사랑하는 군자와 같은 임금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국가를 최초로 바로 세워야하는 순간 등장하는 건국 초기의 영웅적 통치자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는 선과 악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약육강식의 짐승적 자연 세계에 인간의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문명과 국가를 세우는 영웅 서사시의 왕과 같다. 그렇기에 강형욱은 단순히 문자에 의한 통치를 뜻하지 않는다. 그의 세계는 물리력에 의한 통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덤비는 개를 몸으로 받아내고,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는 개의 목줄을 잡아 깨갱하게 만드는 그의 듬직하고 우람한 모습을 보라. 그에게서 장군의 상이 보이지 않는가? 강형욱에게서 영화 [300]에 등장하는 스파르타의 영웅을 본다고 말한다면 과장일 것인가? 강형욱은 문무를 동시에 겸한 영웅적 통치자다. 잠시 그의 별명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는 '개통령'이라 불린다. 개들 세계의 최고 통치자라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완성된 인간 문명 속에서 태어나 얌전하게 선출된 권력이 아니다. 그에게는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 세계와 다투는 자가 내놓는 날것의 느낌이 있다. 그는 한낱 선출되지 않았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일어난 자다. 실제로 그는 자수성가한 인물이다. 그가 등장하는 티비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오늘날 대단히 매혹적인 일인 이유가 여기 있다.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을 압도적인 힘으로 통치하는 서사시적 영웅의 세계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가 통치하는 세계는 절차와 다수결의 문제 때문에 불의를 용납해야하는 민주주의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민주적 답답함을 한번에 해소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영웅의 세계다. 그래서 사실 [개는 훌륭하다]의 숨겨진 전제는 '개는 악당이다'다. '악당 개'(혹은 이른바 '개새끼')가 영웅적 통치자에 의해 감화 및 개화되어 '훌륭'해지는 결말보다 더 '시적 정의'(poetic justice)를 선사하는 이야기 구조도 없지 않은가? 미국에 '마블 코믹스'와 '슈퍼파워'가 있다면 한국에는 '개는 훌륭하다'와 '강형욱'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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