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

허클베리핀, [18일의 수요일]

by spiral 2022. 3. 27.

유튜브에서 허클베리핀의 최근 공연 영상과 마주쳤다. 언제적 허클베리핀인지, 이들이 아직 활동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생각이 난 김에 검색을 해보니 [18일의 수요일]이란 앨범이 나왔다. 너무도 익숙한 앨범 커버 이미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사실 당시 난 이들의 앨범을 구매하진 않았다. [서브]라는 잡지에서 매달 주던 샘플러 시디에 실린 트랙을 한두 개 들었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서브]라는 잡지가 깨나 기특한 일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매달 시디 하나씩 인디록 밴드들의 신곡을 가득 담아 주었으니 말이다. 지금 같이 쉽게 이름 없는 자들의 음악을 구해 듣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잡지 구독에 동기부여가 충분히 되는 일이었다. 허클베리핀의 [18일의 수요일], 당시 이 앨범이 기억에 남았던 것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앨범 제목 때문이었다. (아직도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18일의 수요일이 일 년에 몇번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뜻일까?) 밴드의 작명 방식이나 곡의 제목을 짓는 방식 등이 당시 주류 대중 가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감수성이라 매력을 느꼈다. 예컨대, "불을 지르는 아이"라던가, "갈가마귀" "죽이다"라는 제목이 그러하다. 당시는 새로운 스타일을 찾으려면 인디 록을 들어야했던 시절이었다. (아직도 그러한가?) 그리고 그 스타일은 따뜻하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날카롭고, 차갑고, 냉소적인 동시에 때때로 전복적인 느낌이 나는 그런 것이었다. 1990년대 말 감수성의 특징이 여기서 발견된다. 그 시절은 억압에 대한 울분에 찬 감정의 분출이 젊은이들의 기본 정서였다. (물론, 그런고로 기타도 함께 절규해야했다. "보도블럭"의 후렴구 기타 리프가 좋은 예다.) 주류 음악에 대놓고 '너랑 내가 얼마나 다른지 한번 봐주지 안을래?'라고 도발을 하는 것과 같았다. 최근 인디록의 정서는 좀 다른 것 같다. 대사회적 도발이라기보다는 각자 알아서 자기만의 상상을, 때로는 예쁘고 사소하게, 때로는 발칙하게, 때로는 외계인처럼, 때로는 도인처럼 추구하는 느낌이 강하다. 김마리, 향니, 쿠인, 나의 노랑말들, 정우 등과 같은 친구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영화로 치자면, 최근의 인디록 분위기를 김초희 감독의 2020년작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18일의 수요일] (199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