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라면 융합될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이 서로 만나고 있다. 한 예로, 탄핵집회에서 K-팝이 불리워지고 있다. 여기서 던질 질문은 다음과 같다: 탄핵은 그저 '정치적 이슈'인가? K-팝은 다만 문화와 산업의 문제일 뿐인가? 누군가는 아직도 탄핵 이야기는 서로에게 분란을 가져올 뿐인 한낱 정치 이슈이니 서로 언급하지 말자고 할 것이다. 평소라면 그 말에도 일리가 있을 것이다. 서로 간에 웬만하면 정치와 종교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 삶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민주적 질서와 제도가 운영되는 한에서 나눌 수 있는 조건부 지혜일 뿐이다.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은 티비에서 패널들이 나와 떠드는 한낱 정치 이슈가 아니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민주적 국가 자체의 존립이 위기에 빠져 모든 것이 정지될 위기 상황이다. 우리는 지금 기존의 국가가 정지된 예외 상태, 혹은 비상 사태 속에 놓여있다. 기존의 삶을 되찾기 위해 취해져야할 하나 남은 조치의 이름이 '탄핵'이다. 이는 정치 이슈의 문제가 아니라 삶 자체의 문제다. 이를 두고 '정치 이슈' 운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민주정이 아니라 독재정을 옹호하는 사람이라는 뜻 이외에 다른 게 아닐 것이다.
K-팝은 흔히 문화 혹은 산업의 문제로만 여겨졌다. 평소라면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삶 자체의 표현으로서의 K-팝이다. 국가 시스템이 무너져 정지된 상태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 K-팝이 불리워질 때 K-팝은 더 이상 한낱 문화 혹은 산업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거리에 나온 20-30대가 되찾고자 하는 삶은 K-팝을 가능하게 한 정치 제도, K-팝을 문화적으로 누릴 수 있게 만든 정치 제도다. 민주주의 없이 K-팝이 가능했을리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1988년 지금의 정치 제도를 갖춘 후 투쟁적 민중가요는 유흥적 대중가요에게 길을 내주게 된다. 좋은 일이든 아니든,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정비되자 민중가요를 대체하게 된 것이 대중가요, 즉 팝음악이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민주적 제도의 결실로서 얻게 된 것이 대중가요라는 뜻이다. 계엄령과 함께 20-30대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고 느낀 것은 기본적으로 민주적 제도이다. 그러나 민주적 제도의 상실이 그들에게 몸소 느껴지게 되는 것은 민주적 제도의 문화적 결실인 K-팝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통해서다. K-팝 안에는, 예컨대, 가사의 층위에, 그 어떤 명시적인 정치적 메세지도 없다. 그러나 K-팝은 사실 그 자체로 민주주의 제도가 낳은 형식이다. 민주주의가 정착되었기에 명시적으로 더 이상 투쟁적 언어를 내놓지 않아도 얼마든 원하는대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이 K- 팝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문화는 정치제도의 산물이다. 그렇기에 탄핵집회에서 K-팝이 불리워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탄핵집회에서 K-팝은 아주 먼 길을 돌아와 그 자신의 존재조건과 만나고 있다.
작금의 탄핵집회는 많은 것을 융합한다. 정치, 문화, 경제 등. 사실 모든 것이 융합된다. 가장 고무적인 융합은 세대간 융합이다. 독재에 맞서 직접적으로 투쟁해본 정치적 경험을 지닌 50-60대와 그러한 일을 알지 못해 다만 문화적 경제적으로만 살아온 새로운 세대가 융합되고 있다. 마음이 나누어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일상 속에서라면 서로 반목하고 갈등하던 세대들이다. 그러나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그러한 차이는 사소한 것이 되어 사라진다. 혁명적 상황은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열망이 모여 사회를 하나로 통합할 때 가장 빛이 난다. 지금 그러한 순간이 찾아오고 있다. 8년 전 그랬던 것처럼, 사실은, 가장 멋진 순간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세속적 생존투쟁에 찌들어 사소해져만 가던 개개인의 삶이 다시 빛이 나며 하나로 모이고 있다.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평생에 한번 경험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한국이기 때문에 불과 8년만에 또 다시 기회를 얻고 있다고 말해보고 싶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정들이 우리 앞에 버티고 있다. 그러나 늘 그랬듯 다시 한번 이겨낼 것이다. 이겨낼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를 세속적 생존투쟁에서 벗어나 하나로 만들 것이다. 물론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표면에서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다시 서로 반목하는 개개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번 품은 서로간의 신뢰는 마음 깊은 곳에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어려움이 찾아올 때 다시 한번 우리의 신체를 감싸며 나타날 것이다. 결국 다시 되돌아오게 되는 그 깊은 공감을 우리는 역사의 기억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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