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에 인디 록이 하나의 씬으로서 주목할 만한 모습을 보여준 시기는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중반이다. 1990년대 얼트 록이 열어놓은 록 음악의 가능성 위에서 독립적이고 실험적이면서도 그 어떤 주류 록 음악보다도 더 매력적인 스타일과 귀를 잡아채는 힘을 지닌 앨범들이 많이 나온 시기다. 이미 오래전부터 활동해온 욜라탱고(Yo La Tengo)나 가이디드 바이 보이시즈 (Guided by Voices) 그리고 플래이밍 립스 (The Flaming Lips)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이크로폰즈 (The Microphones), 브로큰소셜씬 (Broken Social Scene), 멈 (Múm), 북스 (the Books), 노트위스트 (The Notwist), 시규어로스 (Sigur Rós), 도브즈 (Doves) 등 많은 밴드들이 있었다. 아래 디스멤버먼트 플랜도 그 시절의 다양성에 기여한 밴드 중 하나다.
흥미로운 사실은 록 음악이 이 시절 거의 모든 가능한 형식 실험을 마친 후 퇴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음악 장르에 탄생이 있다면 성장기가 있고 퇴행기도 있는 셈이다. 사실 오늘날 록 음악은 거의 소멸했다. 지금 록 음악에서 시대를 이끄는 매력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록 음악 내부에서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양식이 이미 지난 20-30년 동안 다 나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1999년작인 아래 디스멤버먼트 플랜의 앨범만 해도 이미 비록음악적 요소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다. 블루지한 요소나 하드록적 요소가 전혀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사실 거꾸로 말하는 편이 더 낫다. 아래 음악은 기타와 베이스 드럼의 구성을 갖추고 록음악적 요소를 차용한 비록음악이다. 이러한 퓨전의 시대가 지나면서 록 음악의 가능성은 거의 고갈되기에 이른다. 그 결과 새로움을 찾고자 록 음악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그러한 경향이 2000년대 중후반부터 강해지며 2010년대가 되면 록 음악은 시대의 최전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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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ergency and I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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