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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우스꽝스러운 것들, 우울해하기에는 너무 신나는 것들, 신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론적이고 말이 많은 것들, 이것이 21세기 이 땅의 대학원을 정리해내는 말 같지 않은 말이다. 한 예로 불교의 경지를 말로 내뱉는 사례들은 그 자체 너무 경박하거나 혹은 음험하다. 분석자에게 말을 거는 정신분석가가 아니고서 그가 하는 말을 곧이 곧대로 믿어야하는 경우 따위 단도직입적으로 없다. 기독교도가 아닌 사람이 바울과 그의 개종에 대해 포교하듯 말하고, 불교도가 아닌 사람이 불교적 공의 여러 경지에 대해 성불하듯 말을 하고, 흥청망청 멍청이 같이 노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 진지하게 카니발을 말하고, 그리고 이 서로 양립불가능한 모든 것들을 동일인이 말하고 [......],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우울한 진지함이다.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만 복잡하고 잡다하여 무겁게만 보인다. 알고 보면 이로부터 온갖 종류의 맹목적 '미신'이 싹트며 또한 반대로 그 어느 것보다 더 강력한 '불신'이 싹튼다. 이렇게 권위에 망령든 자들은 그들 자신의 아귀다툼을 자유주의적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하여 거대하게 드러내놓는다. 그러나 정통론자의 눈에 모든 것은 그저 단순하고 소박하여 명백하다. 여기에는 말이 필요 없는 즐거움이 있거나 말을 하는 행위에 대한 두려운 말만이 있다.
피곤하여 모두 때려치우고 서울에서 동쪽으로 200Km 가량 떨어진 산골 높다란 현대식 건물 속에서 우스꽝스럽고도 멍청하게 하루밤을 지내다가 왔다. (그곳에는 MT를 온 대학생들이 잔뜩 있었고, 나 또한 그들의 일원이 된 듯 관계도 없이 같은 건물을 이용하였다.) 원칙이라는 놈이 그들을 감금하는 우리를 깨부수고 몽땅 도망을 쳐 한동안 지옥에 떨어진 듯 동요하며 떨었다. 이 점에 있어 워즈워스의 시도는 널리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에 비하면 인용문헌 정도야 삼류 멜로드라마의 사랑에 빠진 주인공처럼 세상이 멸망하는 순간까지 늘어놓을 수도, 진지한 사람들의 눈에 신성을 모독하듯 흔적도 없이 모두 불태워버릴 수도 있는, 순간적으로 반짝이는 모래알에 불과하다. 그것은 그렇게 행복하고도 우울한 것들이며, 아이들의 까르르거리는 장난이 지닌 감각적 재미와 같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놀랍도록 즐거운 것은 그 모든 잡다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하는 일이다. 그러나 원칙이 없는 사람이 다른이의 원칙을 알아보지 못하기란 물이 중력에 의해 땅으로 떨어지는 일과 다르지 않다. 뿐만 아니라 우울과 원한에 가득찬 그들은 쾌활하고도 굳건한 원칙 속에서조차 혼란스럽고 잡다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늘어놓은 죄 그리고 훔쳐온 것들을 두고 내려진 사형 선고를 욕심 가득 적발해내고야 만다. 이 우울한 진지함에 몹시도 화가 나서 분개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끓어오름이야말로 원칙의 부재 속에서 미친듯 춤을 춘다. 여기가 나의 현주소, 나의 멍청함, 나의 즐거운 한계다. 어제 새벽 내가 듣고자 한 유일한 노래는 "멍청이들"이었다. 그리하여 이 멍청한 움직임의 마지막 종착지는 서쪽 바다가 작정을 하고 봄을 맞은 육지 위의 사람들을 골탕 먹이기 위해 폐부 깊은 곳에서부터 10년 묵은 가래라도 뱉어내려는 듯 불어보내어 체온을 한순간 빼앗아 가는 바람이 휘몰아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한 끼 식사를 더 해결하기까지 길게 늘어선 줄에 소속되어 각지에서 온 낯선 이들과 목적 의식을 나누는 환희를 겪기도 했으나 우리 '대의'의 동료들은 서로 오가는 말 하나 없이 식사를 마쳤고 작별 인사도 없이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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