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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ne Inch Nails, "Hurt"

by spiral 2024. 4. 5.

2012년 이후 처음이다,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란 것에 투표를 한 것이. 속된 말로 해보자면, '역대급 빌런'에 대한 '시적 정의'를 구현하는 선거 정도되지 싶다. 영화의 언어로 하자면, 빌런 대 히어로의 대결에 기반한 장르물에 가깝다. 구도의 변화가 있기 위해서는 단순 무식한 장르물이 필요하다. 사실 오늘날과 같이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웬만한 빌런이 등장하지 않고서 그러한 구도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그게 이번 선거의 놀라운 점이다. 지난 2년 동안 너무도 무식하고 무도한 악당이 등장해서 선량한 마을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런 자에 대한 대처는 마찬가지로 아주 단순해야한다. '응징'이라는 고대적 영웅서사시의 언어 정도면 족하다. (세상에 '응징'이라니 입에 담는 것 자체가 낯선 언어다.) 히어로 장르물에서 햄릿식 고민은 꼴사나운 풍경을 만들 뿐이다. 마찬가지로, 리얼리즘 소설의 언어, 근대 개인의 내적 감수성을 그려내는 것은 택도 없는 일이다. 고대적 악당, 예컨대, 베어울프에 등장하는 괴수 그렌델과 같은 자가 등장해서 마을을 다 불태우고 있는데 리얼리즘의 근대 개인의 내면 그리기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다. 리얼리즘은 기본적으로 자연과학에 기반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리얼리즘 소설의 언어에 기반한 사회가 아니다. 괴수들과 드래곤이 등장하는 고대적 세계로 퇴행했다. 무속과 주술의 언어를 구사하는 마법사, 도사, 법사들이 등장하는 고대적 장르물의 배경이 되어버렸다는 게 2024년 한국이 처한 위기의 본질이다. (고대적 세계로 퇴행한 사회의 경제지표가 수백억 달러 무역 적자로 곤두박칠치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괴수들과 마법사들이 경제학이라는 학문을 알리가 있는가? 소가죽이나 벗기며 마법사가 말해준 '2000'이라는 무속적 숫자를 중얼중얼 주문과 같이 외우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 믿는 자들이지 않겠는가?) 요즘 영화의 언어로 하자면 지금 한국은 고질라나 콩 같은 괴수물의 배경이 되어버렸다. 그렇기에 2024년 한국에서 정치는 개인 내면의 고통을 그려내는 아래와 같은 음악일 수 없다. 물론, 난 아래 나인인치네일즈의 곡을 좋아한다. 그러나 정치는 아래 음악 같이 해서는 안된다. 특히 2024년 한국에서는 택도 없는 소리다. 아래와 같은 음악은 근대적 개인이나 들을 수 있는 음악이다. 괴수물 영화의 배경 음악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정치의 지표와 같다. 2024년 한국은 투표 행위를 통해 아래와 같은 음악을 들을 자격을 다시 얻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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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wnward Spiral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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